서로 화목하라(9월 4일 주일 오후 예배)
성 경 : 마가복음 9:38-50(신약 70)
 
올해는 추석이 조금 빠르게 찾아왔습니다. 한참 무덥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금방 가을이 되었습니다. 뭔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계절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행복한 추석을 보내게 되길 기도합니다. 6일에 힌남노라는 태풍이 경남에 상륙할 것 같다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는데 63년 전에 한반도를 강타했던 사라 태풍 정도의 위력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아 이 땅에 태풍의 피해가 없이 추석을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기습적인 폭우로 어려움을 겪은지 얼마 안 됐는데 또 다시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서로 화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근래에 우리나라는 정치적 성향이 극심한 분열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이 일상생활에서 갈등으로 나타나지 않고 서로 다르지만 하나 되도록 우리가 서로 함께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너무 극단적으로 내 주장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면서 서로 다름이 조화를 이루어서 아름다운 대한민국으로 세워져 가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모든 것이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한 청년이 노랗게 염색을 하고 교회에 왔습니다. 노란 머리를 본 점잖은 장로님이 그 청년을 조용히 불러서 타일렀습니다.
 
교회에 올 때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오는 건 좀 그렇지 않니? 이렇게 점잖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이 장로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장로님도 염색하신거 아닌가요? 장로님이 그래 난 머리가 너무 하얗기 때문에 까맣게 염색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청년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장로님도 염색을 하셨고 저도 염색을 했는데 왜 문제가 되지요? 성경에 까맣게 염색은 해도 되고 노랗게나 빨갛게 염색하면 안 된다고는 구절이라도 있나요?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생각하고 하는 모든 것은 옳은 것이고 나와 다른 모든 것은 잘못된 것이란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서로 다르지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면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다르지만 하나로 세워가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같은 의미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너희는 다른 것을 인정하고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서로 화목하라고 하신 말씀을 제목으로 해서 말씀은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오늘 말씀을 나누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순서를 바꾸어서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앞에 하신 말씀들을 이해하는데 있어 뒤에서 하신 말씀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고 하셨는데
 
소금은 좋은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0절을 보면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소금은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소금의 효능은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맛을 내는 것입니다. 음식을 만들 때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제 맛이 나질 않습니다. 음식의 맛을 내는데 있어서 소금은 꼭 필요한 재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래에는 소금을 많이 먹는 것이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해서 염분을 최대한 적게 사용하는 요리법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적당한 소금이 들어가야 음식이 제맛이 나고 적당량을 사용하면 건강이 나쁜 영향을 주기보다는 좋은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소금이 좋은 것인데 맛을 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맛을 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맛을 내는 소금과 같아야 합니다.

소금이 좋은 것이라고 하신 말씀에서 소금에 대한 좋은 점을 찾는다면 부패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냉장고가 생기기 전에 음식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소금을 뿌려서 보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소금으로 저려놓은 염장이라고 하는데 그런 식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중동지역은 우리처럼 습하지는 않지만 무덥기 때문에 음식이 상하기 쉬운데 소금은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물론 소금이 완전히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상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에서 맛을 내는 역할과 함께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부패한 사람처럼 보이고 교회가 부정과 부패에 앞장서는 곳으로 보여진다면 교회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역사를 보면 교회가 부흥을 해서 어느 지역의 주류가 되면 그 다음에 머지 않아 쇠락의 길을 가는데 그 원인은 교회가 세상의 주류가 되면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 지고 스스로 자정 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소금과 같이 좋은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이 볼 때 교회는 세상을 맛깔나게 하는 소금이고, 부패하지 않게 하는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지만 맛을 잃으면 버려집니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이 말은 너무나 상식적인 말입니다. 소금을 음식에 넣었는데 맛이 나지 않는다면 소금의 짠맛이 없어 맹탕 같은 맛을 낸다면 당연히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소금의 맛을 잃으면 버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의 피 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교회로서의 역할 즉 소금의 맛을 내지 못하면 결국은 버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지나치면 모든 것을 망치게 됩니다. 50절을 다시 보면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소금을 두로 서로 화목하라고 하신 것은 소금을 적당하게 쳐야 맛을 내는 것처럼 화목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소금을 너무 많이 넣으면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식재료를 사용했다고 해도 소금을 많이 넣으면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어서 소금만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적당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적당하게 할 줄 알아야 화목할 수 있습니다. 지나치지 않고 적당하게 할 때 진정한 화목이 이루어지고 하나된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2. 금하지 말라(다름을 인정하라)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고 하신 예수님께서 앞에서 하신 말씀을 다름을 인정하라는 의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 사도께서 예수님에게 한 말씀에 대한 대답으로 시작하게 되는데 예수님은 요한 사도가 한 말은 어떤 사람이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38절을 보면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요한이 어떤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닌데 놀랍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축귀사역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가 생각하기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면서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고 독자적으로 사역을 하는 것을 보고 요한 사도는 그 사람에게 더 이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께서 생각할 때 예수님을 따르지도 않으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처럼 예수님의 제자가 되거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모르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와 상관도 없는 것 같은데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즉 나와 다르기 때문에 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때는 장로교회가 아니면 다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 사도에게 그런 사람을 금하지 말라 즉 다름을 인정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9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요한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요한 사도에게 그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이 사건 앞에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시기 전에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왔지만 제자들이 고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자들도 못하는 일을 그 사람이 했다는 것은 그 사람 안에 예수님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내 이름을 의지해서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들이 그 사역을 못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이 나를 따르던 따르지 않던 상관없이 내 이름을 의지해서 그런 능력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부인하고 비방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사역의 방법은 조금 다르지만 그 사람이 내 이름을 믿고 의지한다면 우리는 같은 믿음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내 이름을 부인하고 내 이름을 비방한다면 그 사람을 멀리하고 내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금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0절을 보면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예수님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이고, 우리의 편이 된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해서 진실하게 기도하는 사람은 우리와 다른 교회에 다닌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예수님을 반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지금 우리와 다른 입장이긴 해도 우리를 위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와 다름을 인정하고 우리와 다른 신앙적인 모습이 있더라고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면 서로 인정하고 복음을 위해서 화목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화목하기 위해서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만 옳고 내가 하는 것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면 서로 화목할 수 없습니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그 사람들 속에서도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성령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인정할 때 화목할 수 있습니다.
 
3.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 화목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신 것을 보면
 
같은 믿음의 사람을 인정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41절을 보면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예수님은 요한 사도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곧 바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결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앞의 말씀과 연결된 것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물을 주는 것은 그 사람의 신앙을 인정하는 것으로 서로 인정하면 결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린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우회적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을 인정하게 그들을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해서 물 한 그릇이라도 준다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인정하고 상을 주십니다. 반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상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일은 실족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42절을 보면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이 말씀은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 중에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비난하고 상처를 주어서 결국은 교회를 떠나게 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작은 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직 믿음이 연약한 상태이거나 이제 막 예수님을 믿을까 말까 하는 상태인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믿음이 좋은 성도들이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비판하고 책망해서 교회를 떠나게 만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화목하라는 말씀과 우리를 따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같이 나와 다른 점이 있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잘못됐다고 말하면서 상처를 주면 그 사람은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서 몸이 원하는대로 살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3-49절까지를 보면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9:44 (없음)
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46 (없음)
9: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9: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이 구절들에서 예수님은 너의 몸의 어느 한 지체가 너로 죄를 범하게 하거든 차라리 그 지체를 찍어버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몸의 한 지체를 포기하더라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네 몸이 원하는 것을 따르지 말고 절제하고 인내하면서 믿음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고 믿음 안에 살아가는 것이 복된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서로 화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것을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화목하고 언제나 믿음으로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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