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분간하자(8월 14일)
누가복음 12:49-59(신약 117)
 
내일은 제77주년 광복절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억압해서 해방되었고 그날을 기념하여 광복절이라고 부릅니다. 광복이란 말의 의미는 빛을 회복했다는 의미로 나라의 주권을 되찾았다는 의미로 광복절로 정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일본의 압제해서 해방된지 77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일본의 흔적들이 남아 있고 친일이니 반일이니 하는 논쟁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일본은 여전히 군국주의적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지난 역사 속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진정으로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일제 치하에서 교회와 성도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가졌던 독립선언문 낭독시 33인의 애국지사들을 종교별로 분류하면 기독교 16명, 천도교 15명, 불교 2명이었다고 합니다.
 
1919년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1,600만 명 정도였고 기독교인은 20만 명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전체 인구의 1.5%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기독교인들은 독립운동에 참여한 비율을 보면 20-25%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는 그 어떤 종교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기도했고 독립을 위해 싸웠습니다. 2022년 77주년 광복절을 맞이해서 과거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이 했던 나라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지금 우리시대에 맞는 나라 사랑 운동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2022년 광복절 기념 주일에 함께 나눌 말씀은 시대를 분별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분쟁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살아가는 시대를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스스로 판단해서 화해하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언제나 다툼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시대를 분간할 줄 알아야 하고 사람들과 화해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시대를 분간하자”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1. 핍박으로 인한 분쟁
예수님께서 예수님으로 인해서 일어나게 될 종교적 갈등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공생애를 사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데 예수님의 이런 사역을 통해서 세상에는 종교적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종교적 갈등이 생길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심판의 불은 아직 붙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9절을 보면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예수님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실 일 중에 불을 땅에 던지는 일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 그 불을 땅에 던지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불을 던진다는 것은 심판의 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목적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다른 측면은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요3:17-18절을 보면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심판을 맡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므로 구원받은 성도의 자리에 서지 않는 사람들은 이미 믿지 않음으로 심판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나 아직 심판이 완전하게 세상에 임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그 자체가 심판이라고 하셨지만 아직 심판의 불이 땅에 던져지지 않았기 때문에 회개할 기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실 최종적인 일은 심판의 불을 땅에 던지는 것인데 그것은 종말의 때에 하실 일이고 아직은 이 불이 붙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할 마지막 사역은 심판의 불을 던지는 것인데 아직 불이 붙지 않았다. 즉 심판의 불을 아직 던지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심판의 불을 아직 땅에 던지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내가 받을 침례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0절을 보면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내 앞에는 무서운 세례가 가로놓여 있다.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어려움을 당할는지 모른다. 그러니 내 마음이 오죽 답답하겠느냐?”
 
예수님은 불을 던지러 왔지만 아직 심판의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고 예수님께서 겪으실 시련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받을 세례가 있다는 것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실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지실 십자가를 지실 것을 생각하니 답답하다 즉 답답하고 두렵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완전한 인간을 입으셨기 때문에 예수님도 답답하시고 또한 두려움을 느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의 주님으로 오셨기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셔야 했고, 인류를 심판하러 오셨기에 심판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느끼셔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신 것이기에 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심판을 받으셨고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날을 알고 있기에 그 시간들이 답답한 시간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후부터 분쟁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1-53절 까지를 보면
12: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12:52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12:53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예수님께서 분쟁을 일으키게 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핍박을 받게 되고 심지어 가정에서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핍박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현상은 종교적 갈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역사를 보면 복음이 들어가서 복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을 때 극심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고, 가정에서 가족 간에도 종교적인 갈등 즉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해서 가족 구성원들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가정 안에서 서로 분쟁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 분쟁은 핍박이 있는 분쟁입니다. 기독교는 이런 핍박의 분쟁을 겪으면서 오늘이 이르게 된 것입니다.
 
2. 시대를 분간하자
예수님은 심판의 불을 아직 던지지 않으셨고 오히려 고난의 세례를 받으실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서 가정에서도 핍박을 받을 것이고 믿음으로 인해서 종교적 핍박과 갈등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시대를 분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대를 분간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천지의 기상은 분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4-55절을 보면
12:54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12:55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소나기가 오리라고 말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팔레스타인의 지리적 조건에서 비롯되는 기후의 상태를 알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팔레스타인에서의 비는 지중해의 습도 높은 바람으로 인한 것이기에 서쪽 다시 말해서 지중해쪽에서 구름이 일어나는 것은 곧 비가 올 것이라고 예측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풍이 불면 더우리라 하는 것도 일반적인 현상으로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곧 아라비아 광야 방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뜻하며 따라서 이 열풍은 더운 날씨를 예고해 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 비가 올 것인지 무더위가 올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은 이렇게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이가 들고 경륜이 쌓이고 지역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 기상의 변화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상의 변화에 대해서 인간이 완전하게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현대에는 슈퍼 컴퓨터와 같은 장비를 동원해서 기후와 기온과 기상의 모든 변화를 최대한 예측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비해서 현대에는 훨씬 더 정확하게 예측이 가능해 졌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6절을 보면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예수님은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향해서 너희는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현상들을 통해서 기상의 변화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데 이 시대를 분간하지 못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위선자들아! 너희가 하늘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너희 앞에 닥쳐올 위기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일들은 외면하고 있구나!” 라고 번역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 즉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오셨지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와 기득권을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침례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당신이 오실 그분이십니까? 라고 물었을 때 눅 7: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 사람들이 아직 그리스도의 오심을 깨닫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와서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고 있는데 지금의 상황을 너희는 분간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의 상황과 예루살렘의 상황에 대해서 분간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몰두하고 있고, 예수님을 그리스도 영접하지 못하고, 오히려 제거의 대상으로 여기는 유대 지도자들은 결과적으로 시대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상황에 대한 영적인 분별이 필요합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귀와 눈을 멀게 해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들어야 할 진리를 성령으로부터 듣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이 시대를 분간하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려고 하는 일은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지금 이곳에 내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왜 지금 내가 있게 하신 걸까? 이것을 아는 것이 이 시대를 분간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를 통해서 하실 일이 무엇이고, 지금 우리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이 시대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은 외식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56절을 다시 보면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하면서도 시대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은 너희가 외식하는 자, 즉 위선자들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삶을 산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명예와 권력을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겉으로는 신령한 척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누구보다 열심을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들이 목적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를 이용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외식 즉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대단한 것 같지만 그 내면에는 욕심이 가득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열심 있는 성도가 아니라 우리의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신실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대를 분간하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신실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3. 스스로 판단하라
결정장애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결정을 해야 하는데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망설이면서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의 특징은 부모님들이 모든 것을 다 결정해 주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렇게 자란 자녀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일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타인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캥거루 족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오늘 이곳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기고 결정한 것입니다. 물론 마지 못해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우리 스스로의 의지로 교회에 와서 예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대를 분간하라고 하시면서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옳고 그름에 대해서 판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7절을 보면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어찌하여 너희는 무엇이 옳은지를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우리 문화 중에 하나로 팬덤문화라는 것이 있습니다. 팬덤문화는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 현상을 가리킨다.’ 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팬덤 문화가 형성되었다면 지금은 정치인들에 대한 팬덤 문화가 강해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팬덤 문화의 장점들도 있겠지만 단점을 든다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내가 지지하는 사람에 대해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유익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팬덤 문화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기독교는 무슨 일을 해도 지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아니라 그들이 정말 옳은 것이지 잘못된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영적 안목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저는 자주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도 실수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것이 다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하는 일들도 완벽하게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 제직회를 하고, 운영위원회를 하고, 공동의회를 하고, 감사를 하고 이런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과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이 성경적으로 옳은 것인가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데 가능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라고 하시면서 화해하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8절을 보면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예수님은 어떤 사람과 대립 관계에 있을 때 그 문제를 재판으로 가지 말고 화해하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전체적인 맥락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누군가와 계속 대립하고 맞서고 하기 보다는 화해하고 평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교회는 독선적인 면이 있습니다. 내가 믿는 것은 그리고 내가 하는 것은 진리이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은 다 잘못된 것이고 비 진리이다. 이런 생각이 내재되어 있어서 때론 작고 사소한 것으로 싸우고 대립하고 갈등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성도가 해야 할 일은 재판이 아니라 화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형제가 하나 되는 것이고, 성령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교회가 화해하기를 힘쓰고 가정에서 형제자매와 가족이 화해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여기서 화해하라는 말씀은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과 화해하라는 의미입니다. 재판은 마지막 때 심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고 마지막 때 심판대 앞에 서기전에 먼저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가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기회를 잃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9절을 보면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재판정에 가기 전에 먼저 화해하지 않으면 결국 재판을 받게 되고 재판을 받게 되면 아주 작은 것이라고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재판정에 가기 전에 너에게 기회가 왔을 때 화해하면 네가 갚아야 할 것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해도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서면 우리가 한 모든 일에 대해서 아주 작고 소소한 일까지도 다 판결을 받게 되지만 하나님과 화목하면 심판을 면하기 때문에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에게 준 기회를 잃지 말고 주어진 기회를 잘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고후 6: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시대를 분간하고,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해서 은혜받을 때 은혜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참빛 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