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짐을 지라(7월 3일)
갈라디아서 6:1-18(신약 309)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죄와 수고의 짐을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내려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의 짐을 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와 수고와 고달픈 인생의 무거운 짐은 다 주님 앞에 내려놓으라고 하신 반면에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짐을 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서 우리가 져야 할 짐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예수님께서 마 11:29-30절에서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와 관련해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에게 배우면 마음이 쉼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속해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과 우리가 져야 할 짐을 지는 것은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와 짐은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쉽고 가벼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이미 주님의 십자가 아래 내려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지게 되는 짐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아니라 쉽고 가벼운 것입니다.
 
여기서 전제 조건은 우리가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아 살아갈 때 우리가 져야 할 짐이 쉽고 가볍다는 것입니다. 온유한 심령이 되지 않고 늘 굳어있고 완악한 마음이라면 우리의 짐은 무거운 짐이 되고, 우리의 마음에 겸손이 없다면 모든 것이 힘들게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자기 신분에 맞는 짐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는 부모의 짐을 지고, 자녀는 자녀의 짐을 지고, 선생님은 선생님의 짐을 지고, 학생은 학생의 짐을 지고, 경영주는 경영주의 짐을 직장인은 직장인의 짐을 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믿음 안에서도 우리에게 맡겨진 직분에 맞는 짐을 지게 됩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성도로 우리에게 맡겨진 직분에 따라서 성도로서의 짐을 져야 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성도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각자 자기의 짐을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오늘 바울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중심으로 “자기의 짐을 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자기의 짐을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1. 자기의 일을 살피라
4절을 보면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라고 말씀했습니다. 자기의 일을 살피라는 말은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믿음 안에서 살아왔는지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말과 행실에 있어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왔는가? 나는 진정한 예배자로 살아왔는가?
 
자신을 먼저 돌아볼 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자기 짐을 지라고 말씀하시면서 짐을 지기 위해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살피라고 말씀 하는데
 
다른 사람을 보면서 너 자신을 살려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이 구절을 공동번역으로 보면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성령의 지도를 따라 사는 사람이니,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십시오.”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할 때가 언제인가 하면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한 것을 볼 때 그 사람을 통해서 나를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다른 형제가 잘못한 것을 보거든 정죄하지 말고 온유한 마음으로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부드럽게 조언해 주고 기도해 주라는 것입니다. 마치 판사가 판결을 하듯이 죄를 지적하지 말고 온유한 마음 즉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면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은 잘 찾아내면서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구성원들이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너무 지나친 흑백논리로 살아가는 경향입니다. 우리 편은 무엇을 해도 이유가 있지만 상대편은 무엇이든 다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도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을 보고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사람이 잘못한 것처럼 나도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잘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온유하게 대하고 나 자신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고 살펴보면서 항상 신앙적으로 나를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짐을 서로 져야 합니다. 2절을 보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고 말씀했습니다.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서로 남의 어려움과 짐을 함께 나누어지고 주님의 명령에 복종하십시오.” 라고 번역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고 나를 돌아보라고 말씀하시고 계속해서 서로 짐을 지라고 하셨는데 서로 짐을 지라는 말은 남의 어려움을 보고 함께 짐을 나누어지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성도가 힘들어하거나 말거나 나만 아니면 되라는 생각으로 힘들어하는 성도를 모른 척하지 말고 힘들어하는 성도의 짐을 함께 나누어지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공동체뿐만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 모른 척하지 말고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사랑과 나눔의 손을 펼쳐야 합니다.
 
지금 내 옆에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는 성도가 있다면 다가가서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기도해 주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손잡아 주고, 함께 짐을 져 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한다는 것은 사랑의 짐을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율법에 갇힌 자가 아니라 사랑의 빚 진자의 심정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나는 늘 부족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3절에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1,2절의 말씀과 연결해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보고 나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보면서 그 사람의 짐을 함께 져 주되 내가 마치 특별한 일을 한 사람처럼 생각하지 말고 나는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겸손하게 신앙생활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과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6절을 보면
6: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우리는 서로의 짐을 져 주어야 하고 또한 자기의 짐을 져야 합니다. 자기의 짐을 진다는 것은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남의 일에 간섭하고 남의 일을 판단하지 말고 너에게 맡겨진 너의 일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 안에서 가르침을 받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들로서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말은 좋은 것을 함께 나누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짐을 져 주고 자기의 책임을 성실하게 다하면서 서로 좋은 것을 나누고 함께 누리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각자의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모두가 함께 나누는 공동체였습니다. 우리가 초대교회처럼 살지는 못하지만 우리에게 주신 것을 서로에게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나누고 은혜를 나누고 물질적인 것을 나누는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 선을 행하라
자기의 짐을 지라고 말씀하시면서 자기의 일을 살피라고 하셨고 두 번째로는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8절을 보면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7-8절에서 사람은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둔다고 말씀하면서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선을 행하면 선을 거두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육체를 위해서 심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어 영생을 거두게 된 성도라면 선을 행하고 선을 거두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영생을 받은 성도는 선을 행해야 하는데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9절을 보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라는 말은 선을 심으라는 말로 선을 행할 때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다 보면 실망하고 낙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선을 행하는데 선을 행하는 것은 결국 자기가 뭔가를 얻기 위한 것이다. 즉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오해들도 있고, 선을 행했는데 더 힘들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올 때 낙심하게 됩니다. 여기서 낙심한다는 말은 용기를 잃는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힘을 내서 남을 돕고, 좋은 일을 하고, 선을 행하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도 하고 하는데 힘이 빠지게하고, 힘들게 하는 일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낙심하게 되고 선을 행하거나 헌신할 용기를 잃게 되고 손이 축 쳐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오게 되면 그 다음에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고 용기를 잃고 포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낙심하지 말고, 용기를 잃지 말고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되면 거두게 됩니다. 심은 것을 거두듯이 우리가 선을 행하면 선을 심은 것이고 그 결과를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되, 헌신하고, 봉사하되 어떤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말고, 용기를 잃지 말고, 포기하지 맙시다. 그래서 행한 것을 거둡시다. 하나님께서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과 연결해서 기회 있는 대로 착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선을 행하는 것은 곧 착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로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착하고, 선한 일을 하며 살아 가야 하는데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구분해서 어떤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악한 일을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착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착한 일을 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 겔18:2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악인이 죽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서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악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 중에 하나가 믿는 성도들이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되 특별히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절을 다시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더욱이란 말은 ‘무엇보다도’, ‘최고로’, ‘특히’ 등의 뜻을 가진 최상급의 표현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되 특별히 믿음의 가정들에게 최고로 착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최고의 섬김으로 섬기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같은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을 최상으로 섬기고 나누라는 말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전도하기 위해서 착한 일을 하지만 믿는 사람들에게까지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요?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가정에게 더 착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서로 믿음 안에서 공동체이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겪는 초대교회의 시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교회가 아니더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착한 일을 하고 같은 교회 공동체에서는 더 큰 섬김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3. 십자가를 자랑하자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무겁고 힘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짐을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성도로서 십자가를 자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자랑할 것은 십자가 밖에 없다고 선포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자랑하기 위해서
 
율법이 아닌 십자가로 구원을 받는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12-13절을 보면
6: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6: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이 두 구절이 의미하는 것을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12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그 교사들이 여러분을 설득해서 할례를 받게 하려는 이유는 단 하나, 인기를 얻고 박해를 면하려는 심사에서 그러는 겁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했다가 박해를 받을까봐 겁이 난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십자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사함을 받았고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데 율법주의자들은 그럼 할례도 필요 없고 율법도 의미가 없다는 말이냐 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구원을 이야기했다가 율법주의자들에게 박해를 받을까봐 십자가를 전하는 것을 꺼려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을 다르게 보면 우리는 율법이 아닌 십자가로 구원 받았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고 십자가 구원을 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 사함과 구원을 받았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14절을 보면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 구절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그러나 내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십자가 때문에 나는 오래전에 이 세상의 온갖 일에 흥미를 잃어버렸고 이 세상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율법 주의자들은 십자가를 이야기 했다가 핍박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만 나는 십자가 외에는 자랑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십자가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일에 흥미를 잃어버렸고 세상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젊었을 때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율법주의자로 출세를 위해서 살던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나니 십자가 외에는 세상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의미 없는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내게 주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짐을 지는 것은 십자가를 자랑스럽게 여길 때 가능한 것입니다. 십자가가 부끄럽게 생각되거나 십자가 때문에 내가 고난을 당할까봐 두려운 생각이 든다면 내 짐을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자랑하며 살아갑시다. 내게 주신 짐을 감사함으로 지고 주님을 따라갑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새로 지음을 받아야 합니다. 15-18절까지를 보면
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6: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6: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우리의 짐을 지고,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새로 지음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로 지음을 받지 않으면 즉 거듭나지 않으면 율법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옛 습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 결과 율법과 구습에 얽매이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은 다르게 말하면 거듭난 성도로 살아가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이미 지나갔고 우리에게 새로운 삶이 열렸습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율법과 과거에 매이지 않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신앙으로 자기의 짐을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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