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참빛교회 / 2022.06.30 2022.06.30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6월 26일)갈라디아서 5:13-26(신약 309)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역사 중에 군사정권 시절을 거치면서 자유와 민주라는 단어가 젊은이들에게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 단어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2022년을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2년의 시간 동안 코로나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했습니다. 완전하게 자유로운 생활로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일정부분의 자유로운 생활을 회복했고 머지않아 완전하게 자유로운 생활을 하게 될 때가 오리라고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자유를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같은 구절을 우리말 성경으로 보면 형제들이여, 하나님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육체의 만족을 위한 기회로 삼지 말고 도리어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자유를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즉 우리를 부르셔서 자유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신 다음에 다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는 자유롭지 못했다는 말이고 자유를 잃어버리고 무엇인가에 묶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다는 것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하게 하셨다는 대 전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해서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고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함으로 죄로부터 자유 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고백함으로 구원 받은 성도로 죽음에서 자유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은 죄 사함을 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죽음의 얽매인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에 법에서 해방되었기에 이제는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성도 답게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성도로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면에서 자유를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얽매여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하시기 위함 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신 말씀에서 우리가 자유를 얻게 된 것은 무엇인지? 자유를 얻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1. 육체의 욕심에서 자유 하게 하신다.하나님께서 자유를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으로 우리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리게 된 자유는 육체의 욕심에서의 자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끊임없이 욕심을 부립니다. 우리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다 보면 즉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다 보면 결과는 멸망입니다.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곧 육체에 얽매인 삶을 사는 것이고 육체의 끊임없는 욕심을 따르다가 결국은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육체의 욕심에서 자유 함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살아갈 때 진정한 자유와 복을 누리게 됩니다. 몸이 원하는 대로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병들고 죄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육체의 욕심에서 자유 하게 될 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육체의 욕심에서 자유 하게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아야 합니다. 13절에 다시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는 말을 우리말 성경은 육체의 만족을 위한 기회 공동 번역은 육정을 만족시키는 기회 쉬운 성경은 육체의 욕망을 채우는 기회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 구절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유를 위해 부르셨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가지고 육체의 정욕과 육체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5:1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보혈의 공로로 우리를 자유를 주셨는데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종의 멍에를 멘다는 것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육체의 기회를 삼는 것이라고 묘사했는데 다르게 표현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자유 하게 하셨기에 다시는 육체의 욕심이란 것에 종이 되지 말고 육체의 정욕을 이겨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체의 욕망은 한이 없고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은 행복한 것이 아니라 멸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내 몸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내 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몸을 망가뜨리고 결과적으로 다시 욕망의 종이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가지고 육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을 보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현대어 성경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만 따르십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이 어디로 가야 할지, 또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만 따라 살면 여러분은 육체의 욕망에 끌려 다니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가지고 육체의 기회를 삼게 되면 결과적으로 육체의 욕망에 끌려 다니는 짓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육체의 욕망에 끌려 다니는 욕망의 노예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가지고 육체가 원하는 것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자유를 가지고 오히려 육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육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 바울 사도 께서는 우리 육체의 욕망들(육체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19-21절 까지를 보면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육체가 원하는 것을 포기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육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육체의 일에는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 것과 하나님 이외에 우상을 숭배하고 무속적인 것을 따르는 것, 또한 편 가르기를 하고 하나 되지 못하는 것, 술 취하는 것과 같이 육체적으로 방탕하게 살아가는 것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열거된 것들은 크게 영적인 것과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것, 자신을 높이려는 교만에서 오는 편 가르기 이런 것들이 육체가 원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자유함을 얻은 사람들은 이런 것을 초월해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자유하게 하신 주님께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메지 말아야 할 멍에 중에 첫 번째는 육체의 욕심의 멍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체의 멍에를 벗어버리지 못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2. 사랑으로 종 노릇 하라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부르심을 받았으니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메야 할 멍에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으로 종이 되는 멍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으로 종 노릇 하라고 하신 말씀과 관련에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4절을 보면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율법의 핵심적인 내용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 22:37-4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22: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을 이루는 것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오늘 말씀에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웃을 사랑하는데 네 자신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네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종종 너무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어떤 면에서 보면 자신을 학대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를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나를 학대하거나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사랑합시다.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믿고 언제나 믿음 안에서 나를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신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교회가 이웃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고, 성도가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신 하나님과 우리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이 전해질 수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참빛 공동체가 됩시다. 우리가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는 것입니다. 15절을 보면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여러분이 서로 사랑하지 않고 언제나 헐뜯고 비난이나 하고 있다면 피차 파멸을 당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조심하십시오.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면 서로 헐뜯고 비난하게 되고 그렇게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다 보면 그 결말은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특별히 율법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조항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하면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상대를 비난하게 됩니다. 당신은 율법의 이 조항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비난을 하면 상대는 다른 율법 조항을 말하면서 당신은 이 조항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비난하고 되고 계속해서 율법 조항으로 상대가 잘못한 것을 지적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둘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난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는 것이고, 내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면 피차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같이 망합니다. 사랑으로 종 노릇하는 사람은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습니다. 26절을 보면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투기하지 말라는 말은 사랑의 종으로 서로를 섬기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서로를 섬기게 되고, 자기의 영광이나 이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분쟁하고 다투지 않게 되고 그 결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공동체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기 보다는 겸손하는 섬기는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높아지려는 자는 낮아질 것이고 낮아지려는 자는 높아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의 섬김으로 하나가 될 때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는 복된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3. 성령으로 행해야 합니다.우리를 자유 하게 하신 것은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육체의 욕심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에 사랑의 종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성령으로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의지와 노력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 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므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를 얻은 성도들은 성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행함으로 육체의 욕심이 이루어지지 않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16절을 다시 보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욕심을 포기하고 살아 갈 수 있는 힘은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우리의 자유의지는 죄를 따라가는 습성과 육체의 욕심을 따르는 습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습성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위대한 사도이신 바울 사도께서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롬 7:21-24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7: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 사도께서 인간은 끊임없이 갈등하는 존재라고 말한 것입니다.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려고 하지만 내 지체는 다른 법을 따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속 사람은 하나님을, 내 지체 속은 죄의 법을 따르려고 하기 때문에 갈등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갈등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살아가면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율법으로부터 자유) 18절을 보면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으면 율법에 메여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여전히 율법 아래 있는 율법의 종이 된 상태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사는 사람들이 아니고 복음으로 영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율법이 아닌 복음 안에 살아가기 위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율법은 정죄하는 기능을 합니다. 복음은 용서와 영생의 기능을 합니다. 율법에 매인 삶이 아닌 용서와 영생에 이르는 삶을 위해서 성령으로 행하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22-25절을 보면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우리는 통상 성령의 열매를 아홉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는 육체의 욕심을 포기한 성도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은혜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열매입니다. 이 아홉 가지의 열매를 한 마디로 이야기 하면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성령의 열매를 맺고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자유 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내가 먼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결과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자유를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므로 죄와 사망과 율법의 종에서 벗어나 자유 하게 되었기에 육체의 욕심을 버리고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셔서 성령의 열매가 축복의 열매로 나타나는 복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