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6월 12일)
로마서 5:1-11(신약 244)

오늘은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교회력은 대림절로 시작을 해서 성령강림절까지 한 해의 절반이 끝나고, 다음 주일을 삼위일체주일로 지키면서 남은 한 해의 절반을 살아가게 되는데 남은 반년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 아래서 신앙생활을 해나가게 되는 첫날임을 기억하기 위함이며, 그런 맥락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주일을 지키게 된 것은 A.D.10세기 전후부터로 여겨집니다. 오늘 우리가 삼위일체 주일을 지키고 대림절이 될 때까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덧입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에 근거한 진정한 믿음은 삼위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이시다. 라고 주장을 합니다. 이분들은 오직 예수를 강조하면서 삼위 하나님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라고 주장을 하는데 그들이 주장하는 것을 보면

‘예수는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이시다. 예수는 한 분 참 하나님이시다. 예수는 그의 전체로서 하나님이시며,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은 한 신격이 임시로 떠맡은 단지 다른 역할들일 뿐이다.’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이들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이 구약에는 하나님으로 묘사되었고, 공생애에서는 예수님으로 부활하신 이후에 성령님으로 묘사되는 것이기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오직 한 분 예수님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성부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성자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귀신론을 주장하는 베뢰아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오늘부터 대림절과 성탄절에 이르기까지 남은 2022년 절반도 우리의 길을 준비해 주시는 성부 하나님의 이끄심과 우리와 늘 함께 동행 하시는 성자 예수님의 동행하심과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 속에 살아가는 참빛 가족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바울 사도가 기록한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사랑과 성자 예수님이 베풀어 주시는 사랑, 성령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사랑을 덧입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하면서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 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화평하게 하시는 예수님(성자)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화평하게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모든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죄로 인해서 인간과 하나님은 화평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자 예수님의 사랑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하게 하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1-2절을 보면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성자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시고 죽으신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원래 죄인입니다. 시 14: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롬 3:10-12절까지에서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3: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의인은 없습니다. 또한 선을 행하는 자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이에는 죄라는 담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대신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을 가로막고 있던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의로워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1절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선포했습니다.

우리가 원래 의롭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의롭다고 말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와 하나님과 가로막고 있던 담을 헐어버리심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죽으셨습니다. 6-8절까지를 보면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5: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가 연약할 때 즉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상태일 때 예수님은 경건하지 않은 우리들 즉 의롭지 않은 죄인 된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의인을 위해서 죽는 것도 쉽지 않고 어쩌다 선한 사람들을 위해서 의로운 일을 위해서 죽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죄인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없는데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이었을 때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성자 예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우리를 위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결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9-11절까지를 보면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5: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우리는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살아가는 존재였지만 예수님의 사랑의 죽으심으로 인해서 구원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죽으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죄 사함을 받아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고,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가 되었기에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즐거워하다는 단어에는 자랑하며 즐거워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죄인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구원 받은 성도가 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복을 자랑하며 즐거워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2. 사랑을 확증하신 하나님(성부)
성자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죄의 문제를 십자가로 해결하셔서 하나님과 우리와 화평을 이루게 하심으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어서 성부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표현했습니다. 현대어 성경은 이 표현을 “하나님의 그 깊은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사랑을 확증하셨는데

우리가 은혜가 들어감을 얻게 하셨습니다. 2절을 보면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즉 의롭다 하심을 얻으므로 말미암아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계획하시고 실행하시는 사랑입니다.

은혜에 들어갈 수 없었던 우리들을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게 하시고, 그 결과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이 은혜로 들어갈 수 있도록 계획하시고 역사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과 인도하심 속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에 들어감으로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시기 위해서 우리 안에 성령을 보내주셨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셨습니다. 5절을 보면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그렇게 되면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모든 일이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극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고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가슴속에 채워 주시는 까닭에 우리는 이 따뜻한 사랑을 어디서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사랑하는건가? 하고 의심하는 것은 성령님이 내 중심에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깨닫고 되고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바울 사도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증명되었습니다. 8절을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성자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으신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는 그 고통 속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외면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고 바울 사도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증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주제입니다.

성경 많은 이야기들을 기록되어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확증하셨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환난 중에 즐거워하게 하십니다.(성령)
성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심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보여주셨고,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알고 느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우리 안에 내주 하시는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 즐거워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와 믿음을 주십니다. 이것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환난 중에 즐거워하게 하십니다. 3절을 보면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1-2절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에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가 되었고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의롭다고 인정을 받고 은혜에 들어감을 받은 성도들은 항상 즐겁고 감사할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형통하고 날마다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겪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들을 겪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환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환난이라고 표현된 단어의 의미는 포도즙 틀에서 포도즙을 짜내듯이 피와 땀과 눈물과 고통을 ‘짜낸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해서 교회 나오기 시작했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는데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포도즙을 짜내는 것 같은 환난을 당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도우실 때 그런 환난 속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환난 속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힘을 주시고, 환난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환난 속에서도 즐겁게 믿음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사랑입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가 이길 힘을 주십니다. 피할 길을 주십니다. 능히 감당할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시련 속에서도 소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4절을 보면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공동번역으로 보면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인내는 강인함을 길러 주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희망과 믿음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것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은혜에 들어간 성도들에게 임하신 성령으로 인해서 환난 속에서도 즐겁게 이겨낼 수 있고, 또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강한 인내를 가지고 믿음을 지키게 되고, 또한 마음에는 항상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 즉 희망과 비전이 있고 그것이 마침내 이루어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의 예언처럼 자녀들은 예언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노인들을 꿈을 꾸는데 이것은 성령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나타나고 증거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십니다. 5절을 다시 보면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현대어 성경으로 다시 보면 “그렇게 되면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모든 일이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극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고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가슴속에 채워 주시는 까닭에 우리는 이 따뜻한 사랑을 어디서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고 깨닫고 느끼면서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느끼면 살아감으로 어떤 시련속에서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환난을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됩니다. 2022년 삼위일체 주일 우리가 살펴본 이 말씀이 올해 남은 시간들을 살아가는 힘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자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었고, 성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은혜로 들어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성령 하나님의 사랑으로 환난 속에서도 즐거워하고 마침내 소망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지는 말씀이 되고 이 말씀의 능력을 누리는 참빛 가족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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