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족에게 알리라(5월 22일 주일 오후 예배)
성 경 : 마가복음 5:1-20(신약 60)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해서 갈릴리 주변에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가버나움을 잠시 떠나서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가셔서 사역하신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에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마태복음에는 ‘가다라’ 라고 기록을 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가다라 지역이라고 한 것은 거라사인의 땅을 포괄적으로 말하면 가다라 지역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에 기록된 이야기와 마가복음에 기록된 이야기는 같은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에 이 지역을 “가라사인의 지방” 이라고 기록한 것은 그 도시에서 갈릴리 호수까지 미치는 전지역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볼 수 있고 그렇게 보면 가다라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또한 “거라사” 라는 지명이 갈릴리 동쪽 해변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 즉 “케르사”와 동일 지역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40km 높이 정도의 절벽과 옛 무덤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 지방은 로마인들에 의해 10개의 도시가 세워진 “데가볼리”(20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뿐 아니라 많은 이방인들이 함께 살았던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돼지를 키운다는 것은 전통 유대인들보다는 이방인들이 더 많이 거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돼지를 거의 사육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갑자기 가버나움을 벗어나서 거라사인의 지역으로 가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목적을 가지고 가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역에 가셨을 때 그곳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셨고, 그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19절을 보면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귀신에서 고침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건을 중심으로 해서 “네 가족에게 알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버려진 인생
저는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요즘은 의료보험이 잘 되어 있어서 귀신 들린 사람들을 보기 쉽지 않습니다. 의료보험이 발달하기 전에는 귀신 들린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고 그 때는 귀신 들린 사람들을 교회로 데리고 와서 교회에서 축귀 사역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귀신 들림 현상이 나타나면 일단은 정신병원으로 보내서 정신치료를 받게 합니다. 귀신 들림 현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병원에서는 신경 안정제와 수면제를 처방해서 말썽을 부리지 못하게 격리를 해 놓고 있습니다.
 
귀신 들린 것과 정 신질환은 비슷한 점이 많아서 귀신 들린 것인지 정신질환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들의 공통적인 모습은 버려진 인생과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2절을 보면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거라사인의 지방에 가셨는데 배에서 내리셔서 육지로 올라오셨을 때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은 무덤 사이에서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귀신 들린 사람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귀신 들린 사람은 이상한 행동을 하고 때로 난폭하기도 하고 모든 면에서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 머물면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집을 떠나서 마을을 떠나서 무덤 사이에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덤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굴을 의미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 사람도 무덤과 무덤 사이에 있는 굴에서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무덤 사이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은 버려진 인생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5절까지를 보면
5: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5: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5: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귀신 들린 사람들은 귀신이 영혼을 지배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귀신이 하는 소리를 들어서 환청을 듣거나 귀신이 보여주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하소연을 하고 이상한 환상들이 보여서 낭떠러지로 따라가기도 하고 3층에서 뛰어내리려고 하고 가족들이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이 하는 이상한 행동을 보고 제어하려고 하면 힘으로 상대방을 밀치고 도망을 가고 사람들에게 상해를 입히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쇠사슬로 묶고 놓기도 하는데 귀신 들린 사람은 사람들은 귀신들에게 힘을 받아서 쇠사슬을 끊어버리기도 합니다. 축귀 사역을 할 때 체력적으로 약한 사람들은 귀신 들린 사람들에게 힘으로 제압을 당하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가정에서 사는 것도 힘들고 직장생활을 한다든지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것도 어렵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결국에는 마을 공동체에서 쫓겨나서 마을 밖에 있는 무덤 사이에서 거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정신 병원에 감금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현대 사회의 무덤 같은 곳에서 혼자서 긴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덤 사이에 사는 귀신 들린 사람들을 생각할 때 오늘날 은둔형 외톨이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은둔형 외톨이들은 사회성이 없고 사람들과 어울려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서 그 안에 스스로 갇혀서 살게 됩니다.
 
좁은 공간에서 어둠 속에서 길고 긴 시간을 생각을 하면서 점점 더 깊은 외로움과 고독 속에 갇히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무덤 사이에 있는 귀신 들린 사람과 혼자만의 공간에서 외롭게 지내는 은둔형 외톨이는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귀신 들린 것은 아니지만 현대인들 중에는 은둔형 외톨이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골방에서 혼자 외롭게 긴긴 시간을 보내면서 영과 혼과 몸이 점점 쇠약해 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무덤 사이에 거주하는 귀신 들린 사람처럼 혼자만의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그 감옥과 무덤에서 끄집어 내서 밝은 빛의 세상에서 살아가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귀신 들린 사람은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들도 고통을 받습니다. 이 사람에 대한 정보가 성경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사람은 건장한 남자였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한 가정의 가장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할 가정이었는데 귀신이 그 사람에게 들어가서 전인격을 파괴했습니다.
 
따라서 무덤 사이에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 사람이 가장이 아니었다고 해도 한 가정에 귀신 들려 무덤에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가정은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축복하시고 가정이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이 땅의 작은 천국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 가신 것은 귀신이 사로잡혀서 고통당하는 불쌍한 영혼을 위해서 였을 것입니다.
 
귀신에 사로잡혀 고통당하는 그 사람만이 아니라 예수님은 그 가정을 불쌍히 여기셔서 모든 일정을 멈추시고 거라사인의 지방에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과 그 사람의 가정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2. 풀어 자유케 하셨습니다.
귀신에게 사로잡혀 인격이 삶이 망가진 사람과 그의 가정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께서 귀신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에게서 자유하게 하시는 과정에서
 
몸부림치는 귀신들을 볼 수 있습니다. 5-7절까지를 보면
5: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5: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5: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은 귀신이 조정하기 때문에 자기 몸을 상해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서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한 사람을 완전히 망가뜨렸습니다. 귀신은 그 사람을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 사람 안에서 몸부림 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 오시자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에게 와서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실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귀신은 자기를 이 사람에게서 나오게 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귀신은 자기가 잡은 사람을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8절을 보면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예수님은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했지만 예수님은 이미 귀신을 향해서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으로 인해서 버려진 인생이 되어버린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셨고 그 가정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 사람을 만나는 즉시 귀신을 향해서 나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귀신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손해가 있었습니다. 9-13 을 보면
5: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5:10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5: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5:12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5: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예수님께서 그 사람 속에 들어와 있던 귀신을 향해서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귀신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내 이름은 군대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사람 속에 들어가 있는 귀신은 하나가 아니라 많은 귀신이 들어가 있었고 그 규모가 군대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여기서 사용된 군대라는 단어는 레기온인데 이 단어는 원래 6천명으로 구성된 군단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여기서는 많은 수의 귀신이 들어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나오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나와야 하는데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오면 어딘가에 들어가야 하는데 귀신들은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말고 그 지방에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고 예수님은 돼지떼에게 들어가라고 명령하시자 귀신들이 돼지에게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바다를 향해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돼지들이 몰사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셨지만 2천 마리의 돼지가 한꺼번에 죽었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어서 물질적으로는 큰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물질적인 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혼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 물질적으로는 오히려 손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구원을 받아 영원한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준비된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가족에게 돌아가라
귀신에 매여서 버려진 삶을 살았던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감으로 인해서 이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가자 정신이 온전해졌습니다. 14-15절을 보면
5: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5: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귀신이 나가자 그 사람은 정신이 온전해졌습니다. 정신이 온전해지니까 옷을 입었습니다. 귀신 들려 있을 때에는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살았는데 정신이 멀쩡해지니까 제일 먼저 옷을 챙겨입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멀쩡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귀신은 여러 가지 형태로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데 때론 육체적 질병으로 어렵고 하고 때론 정신적인 고통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물질적인 고통을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귀신이 떠나가면 가장 먼저 정신이 온전해 지고 몸이 건강해지고 삶이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망가져 버린 인생이었던 사람이 귀신에게 해방되어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예수님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16-19절까지를 보면
5:16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5:17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5: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5: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귀신에게서 자유를 얻은 사람은 정신이 온전해지자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알고 주님을 따라가겠다고 고백했습니다. 함께 있기를 간구했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귀신 들려 고통당하고 가족들도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서 너의 가족을 돌보므로 너의 가족의 아픔이 치유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파괴하시는 분이 아니라 가정을 세우시는 분이시고 망하게 하시지 않고 하늘의 복을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참빛 가족을 세워시고 가정마다 굳건한 믿음 위에 서게 하실 줄 믿습니다.
 
집으로 보내시면서 예수님은 한 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 전하라는 것입니다. 19-20절을 보면
5: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5: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예수님께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시면서 너는 가서 내 가족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전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집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셨다는 것을 전하라는 것이고 그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서 자기 가정 뿐만 아니라 데가볼리에 전파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큰일이 있습니다. 큰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큰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큰일을 증거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