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하고 고요하라(5월 15일 주일 오후 예배)
성 경 : 마가복음 4:35-41(신약 59)
 
사랑의 기도
 
말없이 사랑하여라
내가 한 것처럼
아무 말 말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사랑하여라
깊고 참된 사랑이 되도록
말없이 사랑하여라
 
남몰래 숨어서 봉사하고
눈에 드러나지 않게
좋은 일을 하여라
그리고 침묵하는 법을 배워라
 
말없이 사랑하여라
꾸지람을 듣더라도 변명하지 말고
마음 상하는 이야기에도
말대꾸하지 말고
말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네 마음을
사랑이 다스리는
왕국이 되게 하여라
그 왕국을
타인 향한 마음으로
자상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말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사람들이 너를 가까이 않고
오히려 멀리 떼어버려
홀로 따돌림을 받을 때
말없이 사랑하여라
 
도움을 주고 싶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여라
오해를 받을 때도
말없이 사랑하여라
 
네 사랑이 무시당한다 하더라도
끝까지 참으면서
 
슬플 때
말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주위에 기쁨을 나누어주고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도록 마음을 베풀어라
타인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초조해지거든
말없이 사랑하여라
 
가슴 저 밑바닥에 스며드는 괴로움을
인내하여라
 
네 침묵 속에
원한이나
인내롭지 못한 마음, 어떤 비난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여라
 
언제나 타인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도록 마음을 써라
 
– J.갈로 –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루 종일 말씀을 가르치시고 사역을 하시면서 육체적으로 피곤하신 상황에서 날이 저물자 바다 건너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신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무리들은 해변가에 둘러앉게 하시고 예수님은 배에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배에서 내리지 않으신 상태에서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시매 제자들이 배에 올라와서 예수님을 모시고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서 노를 저었습니다.
 
제자들이 노를 저어서 건너편으로 가는 도중에 광풍이 일었습니다. 큰 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파도가 일고 물결이 배에 부딪치고 물이 배 안으로 들어와서 배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피곤하셨기 때문에 배가 출발하자마자 배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피곤하셨던지 풍랑이 일고 물결에 배에 들어와서 배에 가득하게 되었음에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갑작스럽게 바람이 불고 풍랑으로 인해서 배에 물이 차고 있는 상황에서 풍랑이는 바다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주무시던 예수님은 제자들이 깨우자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를 향해서 잠잠하고 고요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물결이 잔잔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서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상황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면서 예수님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면서 예수님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잠잠하고 고요하라” 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배에서 주무시는 예수님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건너편 마을로 가시는 중에 주무시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풍랑을 만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곤히 주무셨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배에서 주무신 것은
 
피곤하고 지치셨기 때문입니다. 35-36절을 보면
4: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4: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예수님께서 연일 계속되는 사역으로 인해서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지치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이신데 피곤하고 지치실 수 있나요?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성육신하셨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 나타난 이단들 중에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을 때는 완전한 사람과 완전한 하나님이셨습니다. 따라서 배고픔을 느끼시기도 하셨고, 울기도 하셨고, 육체적으로 피곤해서 쉬는 시간을 갖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피곤하고 지치셨다는 것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셨기 때문에 모든 인간을 위한 속죄와 화목의 제물이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고 능력이 나타난다고 해도 육체적으로 지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피곤하셔서 배에 주무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면서 지칠 수 있고 피곤할 수 있기에 적당한 휴식이 필요하고 적당한 안식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깊이 잠드셨습니다. 37-38절을 보면
4: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오늘 본문의 장면을 해석함에 있어서 예수님께서 주무시고 계셨지만 큰 광풍이 이는 것을 아시면서 제자들이 깨울 때까지 기다리신 것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깨울 때까지 주무시는 것처럼 하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진짜로 깊이 잠드셨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큰 광풍이 불어오고 배에 들어 들어차는 상황이지만 예수님은 아주 편안하게 주무셨습니다.
 
시 127: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깊은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은 걱정과 근심과 염려가 없는 사람입니다. 걱정이 많은 사람과 불안과 염려가 많은 사람들은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작은 소리에도 잠을 깹니다.
 
그러나 걱정과 근심과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 안에 안겨 있는 것처럼 평안히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광풍이 부는 바다에서 흔들리는 배 위에 그리고 물이 들어차는 배 위에서 마치 어머니의 품 안에 안긴 아이처럼 깊은 잠을 주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광풍이 불어와도 물결이 일어나는 것 같은 인생 길에서도 너의 짐을 나에게 다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라 그러면 너희가 깊은 잠을 잘 수 있고, 평안한 잠을 잘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참빛교회 가족들이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심을 믿고 평안한 잠을 잘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품 안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한 잠을 잠으로 몸이 건강해지고 마음이 평안해지고 그로 인해서 삶이 행복한 참빛 가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큰 광풍에 시달리는 제자들
예수님은 평안히 주무시고 계실 때 제자들은 큰 광풍으로 인해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대체로 고요하고 음산한 기후를 이루고 있는데, 때때로 무서운 풍랑이 일어납니다.
 
지중해 수면보다 약 200m 아래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헤르몬 산에서 요단 계곡 쪽으로 이상 기류가 흐를 때 그 기류가 깊은 웅덩이와 같은 갈릴리 바다로 급하게 내려와 회오리 같은 바람을 일으키며 이때 물이 요동하여 무서운 풍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무시지만 제자들은 광풍으로 인해서 두려워했습니다. 37절을 보면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감히 풍랑이 불어서 예수님이 타고 계신 배가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어려움도 없이 모든 것이 형통하고 잘 되고 복된 결과를 얻게 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계신 배에서 큰 시련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 중에 이런 상황으로 인해서 떠나게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시련도 없고, 어려움도 없고, 형통할 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을 믿으면 복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왜 큰 광풍이 몰려오는 걸까?
 
그런 생각이 점차 하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성령님을 부인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데 왜 나에게 이런 광풍이 불어오는 걸까? 그런 의심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교회를 떠나게 만듭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오늘 본문은 이렇게 대답해 줍니다. 예수님이 계신 배도 큰 광풍을 만났다.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하고 예수님께서 일하시지 못하게 큰 광풍의 시련을 주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중심이 함께 하시고, 예수님이 우리 가정과 사업체와 직장에 함께 하셔도 광풍은 불어올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 상황을 우리가 죽게 되었다고 표현했습니다. 38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분명히 그 배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지금 죽을 것 같다고 느끼면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여기에 함께 하시는데 우리의 배가 뒤집히거나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제자들 중에는 본래 직업이 어부였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지금의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고 그저 절망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을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망할 것 같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3. 광풍이 잔잔해졌습니다.
광풍으로 인해서 배가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싸여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잠에서 깨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매 광풍이 잔잔해지고 바다는 평온해졌습니다. 광풍이 잔잔해지는 상황을 보면
 
제자들이 주님을 깨웠습니다. 38절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제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급하게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다급하게 예수님을 깨우므로 광풍이 잔잔해지게 됐습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을 깨운 것은 제자들이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제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깨우며 도움을 간구한 것입니다.
 
그들 중에 어부도 있었습니다. 갈릴리 바다가 그들에게 생업의 현장이었고, 광풍이 부는 상황을 경험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광풍 앞에 제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될 때 우리가 그 일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전문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나름대로 전문가는 자신감을 갖고 문제 해결을 시도해 보지만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일은 예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깨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일하시고 역사하실 수 있게 깨우면서 간구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안 돌아보십니까?
 
주님의 도움을 구하고 주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길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거친 풍랑도 잔잔해지고 우리가 할 수 없던 일들이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무시던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39절을 보면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주무시던 예수님을 제자들이 깨우자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바다를 향해서 잠잠하고 고요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순간 바람이 멈추고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매 거친 파도가 잔잔해 집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시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의 환경을 향해서 명령하시면 광풍이 부는 것 같은 환경이 잔잔해 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시면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문제들이 복이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주님께서 명령하시도록 주님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주님 손에 맡겨드립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두려움을 이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40-41절을 보면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을 우리가 잘못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풍랑과 바다가 일어서 배가 뒤집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예수님을 깨운 그 행위가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잘못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신 믿음이 없느냐라고 하신 것은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고 무서워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이것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의 핵심입니다.
 
이 말씀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셨다. ‘왜 그렇게도 겁이 많으냐? 아직도 나를 믿지 못하느냐?’”
 
예수님은 제자들이 광풍을 보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서 책망하신 것이고, 또한 이 구절의 원래 의미는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바람과 바다가 잔잔해졌는데 아직도 너희는 어찌하여 아직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느냐?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었음에도 여전히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있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우리 앞에 어떤 상황이 온다고 해도 우리는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지 말고 주님의 도움을 간구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코로나 상황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도움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앞에 광풍은 잠잠하고 고요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서 잠잠하고 고요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는 참빛 교회 모든 가족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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