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참빛교회 / 2022.05.27 2022.05.27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5월 22일)사도행전 16:6-15(신약 215)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내 의지를 내려놓고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무시하시면서 우리를 하나님의 마음대로 이끄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따라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내 뜻과 의지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끄심대로 살아가야 하지만 하나님의 전적으로 하나님의 이끄심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기록된 분들 중에서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나님의 이끄심을 받은 분을 찾는다면 에녹과 엘리야 선지자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분은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께서 데려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완벽하게 하나님의 이끄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지만 언제나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이끄시는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마음과 영을 열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뜻을 따르려는 의지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야기는 바울 사도께서 2차 선교 여행을 하시는 중에 있었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선교여행을 마친 후에 2차 선교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준비하던 중에 마가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가자는 바나바와 1차 선교여행 중에 밤빌리아에서 선교여행을 포기하고 돌아간 마가를 데리고 갈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바울이 서로 의견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2차 선교 여행을 떠났고 바울 사도는 실라를 선택해서 함께 2차 선교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2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바울은 나름대로 자신이 원하는 선교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울이 가려고 하던 곳으로 가지 못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서 선교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바울 사도께서 자신이 원하던 지역으로 가지 않고 하나님의 이끄심대로 선교지를 바꾸어서 떠나게 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교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가 원하는 길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일과 하나님께서 하기 원하는 일이 다를 때도 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대로 간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길을 막으시는 하나님1차 선교여행을 동행했던 바나바와 갈라서서 실라를 데리고 출발한 바울은 2차 선교여행 초기에는 디모데라는 젊은 동역자를 만나게 되고 순조롭게 출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2차 선교여행을 떠나면서 나름대로 선교에 대한 계획을 세워가지고 출발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계획한 대로 선교를 하기 위해서 가려고 했던 지역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울이 원래 가려고 했던 곳으로 가지 못하게 막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6절을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여기서 아시아는 일반적으로 에베소에 근거를 둔 소아시아에 있는 지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라와 함께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나는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제자로 삼은 후 에베소(아시아)로 직행하고 싶었습니다. 그 당시 에베소는 아시아 최대의 무역 항구였으며 아시아의 모든 물건이 수집되어 유럽으로 건너가고 유럽의 물건들이 아시아로 들어오는 국제 상업 도시였습니다. 이런 곳에서 전도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아시아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울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 길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바울이 에베소를 비롯한 소아시아 지역으로 가지 못하게 막으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에베소를 비롯한 소아시아에 전혀 가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바울 선교팀은 에베소를 비롯해서 소아시아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시작하면서 아시아로 가려고 한 것을 막으신 것은 절대로 그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지 말하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순서대로 사역을 하게 하시기 위해서 아시아로 가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바울이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지만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7절을 보면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바울 사도께서 성령님께서 아시아로 가지 못하게 하심으로 기도하면서 자신이 계획했던 다른 도시를 향해서 가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가려고 했던 도시는 비두니아였습니다. 비두니아는 소아시아의 북서부 지방. 흑해와 마르마라해의 남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바울은 비두니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비두니아로 가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영이 즉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비두니아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6절과 7절에서 성령님과 예수님이 영이 바울이 가려는 것을 막으셨다고 기록하는데 이것은 바울은 출발하기 전에 먼저 마음으로 준비하고 계획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생각하고 생각나는대로 즉시 도시를 향해서 떠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새로운 도시로 가기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 사도께서 기도하실 때 성령님을 통해서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가길 원했지만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바울 사도의 길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우선순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생각한 우선순위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우선 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의 길을 막으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도시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바울 사도는 나중에 아시아라고 할 수 있는 에베소에 가서 3년을 머물면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가 처음 가려고 할 때는 막으셨을까요? 당시의 영적 상황에서 아시아보다 유럽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럽 전도의 시급함을 아시는 성령님께서 바울의 발걸음을 먼저 유럽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보다 먼저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그리고 아덴, 고린도 같은 유럽의 중심지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유럽 지역에 복음을 증거됨으로 인해서 복음은 더 많은 지역으로 전파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유럽에 복음을 급히 전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정하신 우선순위에 따라서 바울 일행이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가는 것을 막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길을 막으실 때가 있습니다. 발람이 발락에게 가려고 할 때 나귀의 길을 막으신 것처럼 내가 가려고 하는 길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막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2. 환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바울이 가려고 했던 지역으로 가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께서 새롭게 가야 할 도시로 이끄시기 위해서 환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에 따라서 새로운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게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에게 밤에 환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9절을 보면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여기서 밤에 환상을 봤다는 것은 바울이 잠자는 중에 꿈에 환상을 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이 기도하는 중에 환상으로 계시하시거나 성령님을 통해서 직접 계시하기도 하시지만 잠자는 중에 꿈에 환상을 보게 하시고 계시하시는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가 아시아로 가려는 것을 막으셨고 비두니아로 가는 것도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바울에게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 선교팀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환상을 통해서 알게 하셨는 마게도냐로 가라는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마게도냐는 ‘넓은 땅’이란 뜻으로 아드리아 해와 에게 해 사이에 있는 그리스 반도 북쪽 발칸 반도로서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마게도냐는 유럽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시아에서 선교하려던 바울 사도를 마게도냐 즉 유럽에서 먼저 선교하도록 이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환상을 통해 본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습니다. 10절을 보면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환상을 보고 난 다음에 그 환상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마게도냐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있는 선교팀원들에게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마게도냐로 가기를 힘썼습니다. 여기서 힘썼다는 단어는 ‘찾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게 하셨는데 바울과 선교팀은 그럼 우리가 어떻게 마게도냐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을 서로 의논하고 가기 위한 방법들을 찾고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과 그의 일행들은 바울이 본 환상은 하나님께서 마게도냐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신 것이라고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가려고 준비하고 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 마게도냐로 떠난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인정하다는 단어는 증명하다는 뜻으로 바울과 선교팀은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계시 된 것임을 인정하고 믿고 새로운 선교지를 향해서 출발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셨다고 인정했습니다. 10절을 다시 보면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자신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일단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나를 마게도냐로 이끄시는데 그 이유는 복음을 전하라고 이끄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실 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우리는 복음을 전하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을 복음의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이 우선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부르심과 이끄심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아시아보다 유럽쪽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유럽이 더 시급하다고 하셨는지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 시대에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유럽을 복음화하는 것은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유럽으로 보내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종종 내 생각과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실망하거나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과 내가 원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끄심을 순종할 때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서 살아가는 참빛 가족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이끄심대로바울 선교팀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대로 순종하고 떠났습니다. 바울 일행은 하나님의 이끄심에 따라 빌립보에 도착했습니다. 11-12절을 보면16: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16: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바울 일행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서 사모드라게로 직행하고 네압볼리로 가서 빌립보에 도착하게 됩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빌립보가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라고 할 것은 마게도냐로 들어가는 첫 번째 성이란 의미라기 보다 마게도냐 선교가 시작된 첫 번째 도시라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빌립보라는 도시는 B.C.360년경 마게도냐의 필립 2세에 의해 이름이 크레니데스(‘샘 ’이라는 뜻)에서 빌립보로 바뀌었습니다. 이곳은 줄리어스 시이저를 살해했던 부루투스와 캐시우스가 B.C.42년 안토니아 옥타비안(나중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됨)에 의해 패퇴당한 장소로 유명합니다. 이 지역은 바로 그때 이후 승리의 기념으로 로마의 식민지로 지정되어 황제에게 직접 배속됨으로써 주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를 누렸으며 공물과 세금을 면제받기도 하였습니다. 또 이탈리아 도시의 시민들이 누렸던 것과 동일한 권리를 누렸고 이곳은 바다와 육지 양쪽 통로상의 전략적인 위치에 있어서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특히 금광과 비옥한 평야로 유명하하고, 이곳에는 의학을 가르치는 유명한 학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마게도냐 복음화를 위한 첫 번째 도시로 빌립보를 정하고 그곳에 도착을 했습니다. 바울이 마게도냐에 도착함으로 유럽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13-14절을 보면16: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16: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은 선교를 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적당한 곳을 물색하던 중에 안식일에 기도하는 곳이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바울이 기도할 곳을 찾았다는 것은 빌립보 도시에는 아직 유대인의 회당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은 어느 도시를 가든지 먼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었습니다. 유대인의 법에 따르면 하나의 회당에는 최소한 10명의 남자가 있어야만 합니다. 본문에서 여자들만 언급되는 점으로 보아 이곳의 ‘기도할 곳’은 여자들이 관습적으로 모여 기도하던 곳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기도의 장소로는 주로 강변, 바다 근처 등이 선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는 유대의 정화 의식에 필요한 물을 구하기 위한 조치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직 회당이 없는 빌립보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찾아보았고 마침 강가에 모여서 기도하는 것을 발견하고 갔는데 그곳에서 루디아라는 분을 만나게 되고 루디아 바울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아서 바울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루디아’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단지 고대 루디아 왕국의 영토였던 지방에 살던 사람 즉 ‘루디아(출신의) 여인’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루아디라는 도시는 직조와 자색 염료 사용 기술로 유명했는데 루디아가 빌립보에 온 것은 계속 그 사업을 확장하기 위함 것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두아디라에 있을 때 이미 회당에서 유대교의 가르침을 받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나님은 유럽 선교의 첫 번째 도시인 빌립보에 루디아라는 분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마게도냐 지역에 첫 번째 교회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15절을 보면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루디아는 바울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세례를 받았고 그 온 집이 다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 선교팀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머물게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루디아의 집은 빌립보 지역의 첫 번째 교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해서 마게도냐 첫 성인 빌립보로 갔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기도하는 사람들을 준비해 놓으셨고 루디아를 만나게 하셨고 루디아를 통해서 바울의 사역을 돕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루디아의 집에 첫 번째 교회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가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 기다립니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면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지만 결국에 어려움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대로 가면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끄심대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을 누리게 되는 참빛교회 모든 가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