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라(5월 8일)
시편 23:1-6(계7:9-17)
 
오늘은 어버이날이자 어버이 주일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지난 2년 동안 어버이날 뿐만 아니라 명절이나 중요한 날들을 제대로 지킬 수 없었습니다. 금년에는 제한이 풀려서 조심스럽지만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곳에 있는 것은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서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들이 예수님을 믿는 구원 받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고 건강하게 장수하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참빛 가족의 모든 부모님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언제나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부모님들이 되어서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족으로 세워져 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고향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고, 부모님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동물들도 회귀 본능이 있어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연어는 자라면서 먼 곳으로 떠나갔다가 자기들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두 분의 아버지가 계십니다. 우리를 이 땅에 있게 하시는 육신의 아버지가 계시고 우리를 창조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늘 아버지가 계십니다. 2022년 어버이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늘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 중에 본향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본향이란 단어는 본래 살던 고장, ‘아버지의 나라’, 곧 조상이 난 땅이라는 뜻으로 성경에서는 성도의 이 세상 삶을 나그네의 삶이라 하며, 성도의 소망은 영원한 하늘의 본향에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도 나이가 들면 본향을 그리워하게 되고 영적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영적 본향을 그리워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두 곳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먼저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의 노래인 시편 23편과 요한 계시록 7장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시편 23편에서는 여호와의 집 즉 하늘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하는 다윗이 노래가 담겨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7장은 모든 성도들이 그리워하는 본향인 하늘나라에서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두 본문은 서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두 본문이 말하는 것은 여호와의 집 즉 하늘 아버지의 집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오늘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라” 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목자이신 여호와(이 땅에서)
다윗은 어린 시절 목동으로 지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목동으로 지내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를 했습니다.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양인 우리들을 돌보실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위대한 왕입니다. 강대한 이스라엘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볼 때 아픔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자신이 잘못을 해서 고통의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만 했습니다.
 
그런 아픔의 세월을 보낸 다윗은 시편 곳곳에서 여호와의 집에 머물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고백의 기도와 찬양을 했습니다. 다윗은 나는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고 싶다고 노래했습니다.
 
다윗이 노래한 여호와의 집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양으로 목자이신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실 때 내가 살아가는 삶은
 
부족함이 없습니다. 1-2절을 보면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신다면 나의 삶에는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좋은 목자가 양을 인도하면 양은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목자는 양들을 푸른 풀밭에 눕게 할 것입니다.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신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양은 초식동물이기 때문에 푸른 풀밭은 먹을 것이 풍성하다는 의미입니다.
 
양들은 산과 들로 다니면서 풀을 뜯어 먹고 사는데 목자를 잘못 만나면 풀이 없는 곳으로만 다닐 수 있습니다. 하루종일 목자를 따라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풀이 없다면 양은 허기진 채로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목자는 사전에 풀이 많은 곳을 답사하고 양들을 그리로 이끌어 갑니다. 양들은 목자가 자신들을 이끄는대로만 가면 그곳은 푸른 풀밭이 있습니다. 마음껏 풀을 뜯어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푸른 풀밭은 뜨거운 태양을 피해서 쉴 수 있는 그늘을 의미합니다.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신다는 말은 양들이 풀을 실컷 뜯어 먹고 나서 그늘이 있는 풀밭에 누워서 태양 빛을 피하고 태양열에 뜨거워진 사막의 모래땅이 아닌 땅의 열기를 식혀주는 풀밭에 누워서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목자는 풍성한 먹거리와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합니다. 여기서 ‘쉴 만한’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누호트’는 세찬 물결과는 대조적인 개념으로 ‘잔잔한’이란 의미입니다.
 
만일 목자가 급류로 인도하였다면 그 양 떼들은 물을 마시기에 불편할 뿐만 아니라 해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목자는 양들을 잔잔한 물가로 인도함으로써 안전히 쉴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급하게 흐르는 물이 아닌 아주 잔잔하게 흐르는 물로 인도해서 편히 물을 마시고 또한 물로 무더위를 식힐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양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과 안식을 주십니다. 또한 생명의 샘물을 마시게 함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 거한다는 것은 이 땅에서 부족함이 없이 평안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은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3-4절을 보면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목자는 양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항상 의의 길로 인도합니다. 3절을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 길이요”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라는 말은 영적으로 우리의 영을 다시 회복시켜주신다는 의미가 있고 육적으로는 지친 몸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목자는 지친 양들을 푸른 초장에 눕게 하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서 힘을 얻게 하고 나서 이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지친 우리들을 다시 생기가 넘치게 하시고 또한 바른길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른길 또는 곧은 길이란 의미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야 할 올바른 길이기도 하지만 삐뚤어지지 않은 곧은 길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의의 길은 형통한 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목자는 양들을 데리고 돌고 돌아 목적지로 가지 않고 곧은 길로 양들을 인도해서 조금이라도 덜 지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가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이시라면 돌고 돌아가는 길이 아닌 곧은 길 즉 형통한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양들은 목자가 자신들을 곧은 길 즉 형통한 길로 인도할 것을 알기 때문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데리고 갈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처럼 우리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그 길이 목적지까지 빨리 갈 수 있는 길임을 알기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양들은 목자가 함께 있기만 하면 어떤 어려움에서도 건져준다는 것을 알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바라보며 따라가듯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자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보면서 따라가기만 하면 그곳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일지라도 반드시 형통하고 복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면 그 결과는 행복합니다. 5-6절을 보면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23:5 “원수들 두 눈 뜨고 쳐다보는데 보란듯 이것 앞에 잔칫상 차려 주시고 귀한 손님 대접하듯 기름 발라주시며 잔이 흘러 넘치라 하고 부어 주시네”
23:6 “아, 그 누가 이렇듯 행복하리오. 이처럼 포근하리오. 주님의 손길 살아 생전 끊이지 않으리니 이 목숨 살아 숨쉴 동안에 주님의 전에 오래도록 살으리이다.”
 
공동번역으로 보면
23:5 “원수들 보라는 듯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 부어 내 머리에 발라주시니, 내 잔이 넘치옵니다.”
23:6 “한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사는 이 몸, 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신다면 나는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것인데 그 집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맛있는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부어 주시기에 한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즉 행복하게 살게 된다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신다면 우리를 하나님의 집에서 행복하게 영원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목자이신 어린 양(천국에서)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여호와께서 목자가 되셔서 내가 사는 동안 여호와의 집에서 행복하게 살겠다고 노래했다면 계시록 7장에서는 저 천국에서는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양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저 천국에서는 다시는 ∼아니하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7:16-17절을 보면
7: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17절에서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그들의 목자가 되신다고 말씀하고 있고 16절에서는 그들이 즉 목자의 양들은 하늘에 있는 성도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고 오늘 본문에서 하늘 보좌 가운데 앉으신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에 우리는 천국에서 다시는 주리지도 않고, 목마름도 없고, 그 어떤 것에도 상하지 않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저 천국에서 우리의 좋은 목자요 선한 목자요 참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게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어떤 것에도 상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목자이신 어린양은 우리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십니다. 17절을 다시 보면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계시록 22:1-2절까지를 보면
22: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우리가 천국에 가면 어린양이시고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셔서 영원히 죽지 않고 질병과 고통이 없는 영생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 세상에는 죽음도 있고 질병도 있고 고통도 있지만 우리가 살아갈 본향인 천국 즉 여호와의 집에는 질병도 고통도 아픔도 죽음도 없습니다. 생명수 샘과 생명 나무의 열매가 있어 영생을 얻게 됩니다.
 
모든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십니다. 17절을 다시 보면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시고 다시는 눈물 흘릴 일이나 애통하거나 곡하거나 아픈 것이 다시는 있지 않고 그곳에는 영원한 행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서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눈물을 씻어 주시고 눈물과 슬픔 대신에 찬송의 옷을 입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 땅에서 여호와가 목자가 되시기에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행복한 삶을 의미하고 저 천국에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목자가 되시니 그 품 안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기를 원한다면 여호와의 집에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3. 여호와의 집에서 할 일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사는 성도들은 흰옷을 입게 됩니다. 13-14절을 보면
7: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7: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우리가 장차 저 천국에서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게 될 때 흰옷을 입게 됩니다. 흰옷을 입는 것에 대해서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흰옷을 입는 것인데 흰옷을 입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먼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그리고 우리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십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사함을 받는 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살던 인생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된 것이고 이렇게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칭의가 이루어짐으로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게 될 자격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우리들은 저 천국에서 어린 양이며 목자이신 주님과 함께 영원한 삶 즉 영생을 얻고 그 은혜 안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 흰옷을 입어야 하고 여호와의 집에서 우리가 영원토록 할 일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시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계시록 7:7-12절을 보면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7: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7: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7: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다윗이 시편에서 여호와의 집에 또는 성전에 머문다는 표현을 한 것은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다윗이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겠다고 한 것은 예배와 경배를 영원토록 드리겠다는 의미입니다.
 
계시록에서 우리가 영원토록 해야 할 이에 대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어린양에게 찬송과 경배를 올려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여호와의 집에 머무는 성도로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언제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의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 천국에서도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예배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자이신 하나님의 품 안에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고, 몸과 마음이 진정한 평안을 누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참빛 가족이 되고, 모두가 저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는 참빛 교회 모든 가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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