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서 먹으라(5월 1일)
요한복음 21:1-20(신약 184)
 
금년이 어린이날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합니다. 100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날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 시대의 문화적 상황에서 매우 획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57년 2월에 한국동화작가협회의 마해송·방기환·강소천·이종항·김요백·임인수·홍인순 등 7명이 어린이 헌장이란 것을 성문화하여 발표한 것을, 보건사회부가 아동 및 모자관계 단체,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심의, 보완, 수정한 뒤 같은 해 5월 5일 제35회 어린이날을 기하여 당시 내무부·법무부·문교부·보건사회부 등 4부의 장관 명의로 발표했습니다.
 
전문 및 본문 9개항으로 제정되었는데, 전문은 “어린이는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 나갈 새사람이므로 그들의 몸과 마음을 귀히 여겨 옳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힘써야 한다.” 로 되어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어린이날을 만들고 어린이 헌장을 만들고 했는데 지금 우리 주변에 어린이들을 보면 사회로부터 존중받고 미래를 위해서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바쁘게 살아갑니다. 해야 할 학습도 많고, 해야 할 과제들과 다녀야 할 학원들도 너무 많아서 아이들이 아이들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래서 출산률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아이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부모들에게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이 너무 큰 짐처럼 버겁게 보여 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난하다고 생각했던 과거에 지금 중년 이상의 어른들이 살아왔던 어린 시절은 많은 추억과 즐거움들이 있었습니다. 오은영 박사가 진행하는 프로를 자주 보게 되는데 한 번은 자녀교육에 대한 문제를 상담해 주는 이야기가 방송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외교관으로 유럽의 어느 나라에 가서 살게 되었는데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갔는데 그 학교 선생님이 외교관 부모에게 한 가지 꼭 약속하셔야 할 일이 있다고 하더니 아이에게 선행학습을 절대로 시키지 말라고 하더랍니다.
 
많은 나라 선생님들이 우리나라의 교육 열풍에 대해서 알고 있는데 우리 부모들은 학원을 보내서 학교 수업의 진도보다 빠르게 선행학습을 시키는데 그렇게 할 경우에 아이들이 학교 수업의 흥미를 잃고 다른 아이들은 아직 모르는데 선행학습을 한 아이는 이미 아는 내용이기 때문에 수업의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학습에 대한 부담감 없이 누구나 맘 편하게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공부와 관련된 것들 때문에 찌들어 살지 않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에 어린이와 관련된 말씀이 아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신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여드레 후에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 물고기잡이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두 가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물고기 잡으러 간 이야기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신 이야기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다른 의미가 담긴 이야기이지만 하나의 공통적 주제가 있는데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물고기 잡이하느라 밤새 고생한 제자들을 위해서 먹을 것을 준비해 주셔서 와서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과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것은 결과적으로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늘 조금은 긴 본문의 두 가지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와서 먹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1. 너희에게 먹을 것이 있느냐?
본문 첫 번째 이야기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만나시고 어디론가 가셨다가 며칠 지나서 다시 찾아오시고 하는 상황에서 제자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중에서 우리는
 
고기잡이에 실패한 제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1-3절까지를 보면
21: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1: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21: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처럼 제자들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에도 제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시는 것도 아니고, 제자들 스스로 무엇을 해야겠다고 계획하고 실천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던 제자들이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실 때 먹는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사는 것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는데 예수님이 안 계신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에게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에서 어부 생활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자신의 원래 직업인 어부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께서는 내가 예전에 했던 어부 생활로 돌아가야겠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는 고기나 잡으로 가야겠다고 말하니까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다고 말하고 베드로를 따라서 물고기 잡이 하러 갈릴리로 갔습니다.
 
여기서는 디베랴 호수라 기록하고 있는데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바다’(6:1), ‘긴네렛 해변’(민 34:11), ‘긴네롯 바다’(수 12:3), ‘게네사렛 호수’(눅 5:1)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지기도 했는데, ‘디베랴 호수’로 불리어진 까닭은 ‘디베랴’가 갈릴리 지방의 수도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같은 곳을 여러 이름을 불렀습니다. 어쨌든 베드로가 물고기 잡이하러 가겠다고 하자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 사도를 따라서 물고기 집이 하러 디베랴 호수 즉 갈릴리 바다로 갔습니다.
 
그들이 밤새 고기잡이를 하고 날이 새어갈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4-5절을 보면
21: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2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지난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르면서 과거에 했던 일들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3년 동안 어부 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물고기 잡이에 자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해온 일이기 때문에 지금 물고기 잡으러 가도 많이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제자들은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어부 생활을 안 한지 3년이 지난 것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 있게 고기 잡으로 간다고 했던 베드로는 밤새워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베드로가 실력이 없어서 고기를 못 잡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가 자기 방법대로 고기 잡이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도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할 사람들인데 자기들 맘대로 고기 잡으러 갔는데 대박을 쳤다면 그들은 사도가 아닌 물고기 잡는 어부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기잡이를 허락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고 물으신 것은 고기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고기가 없다고 대답을 하자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절을 보면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고 물으셨을 때 이미 고기가 없다는 것을 아셨고 제자들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지금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던 것이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조금도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물고기들이 엄청나게 많이 그물에 잡혔습니다.
 
제자들이 그물을 끌어 올리는데 고기가 많아서 끌어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물을 배로 끌어 올리지 못하고 배를 몰아 육지까지 가서 여럿이 힘을 합해서 그물을 끌어올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시매 그물에 가득 물고기가 잡혔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는 말씀이고,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나고 불가능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 예수님께서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지 말고 내 말을 듣기 위해 마음을 열고 내 말을 따라서 네 인생의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실패했습니까. 하던 일을 잠시 멈춥시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마음을 열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집시다. 그물에 고기가 가득 잡힐 것입니다.
 
2. 와서 조반을 먹으라
밤새 물고기 잡이를 했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셔서 던졌더니 많은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제자들이 물고기를 잡은 것은 것으로 인해서 밤새 헛수고한 것을 만회했지만 지칠대로 지쳐 있었고 허기진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상황인 제자들을 위해서 먹을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7-9절까지를 보면
21: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21: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21: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해 주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친 제자들을 위해서 친히 음식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해 주신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우리의 일용한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갈릴리 호수가에서 예수님께서 준비해 주신 음식은 최고의 밥상은 아닙니다. 단촐한 식탁이고 풍성한 것도 아닌듯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하게 주시는 분이시지만 항상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것이 아니라 때론 배고픔을 해결할 정도의 분량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음식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음식을 준비하고 우리의 삶에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서 영적이고 육적인 밥상을 준비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다윗은 시편 23:5절에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고 노래했습니다.
 
음식을 준비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10-11절을 보면
21: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21: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얼마 전에 모나미 창업주가 소천을 했는데 모나미 창업주가 밝힌 모나미 153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1963년 5월 1일에 탄생했는데 볼펜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도 기술도 없었던 상황에서 탄생한 153 볼펜은 송삼석 회장님이 직접 이름을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153 볼펜은 세 가지 뜻이 있는데
 
첫 번째 뜻은‘베드로가 하나님이 지시한 곳에서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요한복음 21장에서 영감을 얻어 지은 153 볼펜은 하나님의 뜻, 즉 순리에 따르면 그만큼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뜻을 말합니다.
 
두 번째 뜻은 153이 우리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갑오’ 즉 ‘아홉’을 만드는 숫자라는 뜻입니다.
 
세 번째 뜻은 153에서 앞의 15는 15원이라는 뜻이고 3은 모나미가 만든 세 번째 제품이라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송삼석 회장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진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 숫자를 모나미 153에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고기를 잡은 그물을 육지로 끌어올리는 제자들에게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워서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미리 준비한 생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날 그곳에서 직접 잡은 생선을 가져오라고 하셨고 그것을 제자들이 먹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두어 들인 것을 사용하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시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하나님은 우리의 손으로 거두어들인 것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손으로 물고기를 잡게 하시고, 우리의 손으로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하시고 그것을 먹게 하십니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고 우리가 손으로 거두어들인 것을 먹게 하시고 나누게 하십니다. 풍성하게 거두고 넉넉하게 나누는 참빛 가족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허기진 제자들에게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14절까지를 보면
2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21: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21: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예수님은 밤새 고기잡이를 한 제자들이 지쳐 있고 허기져 있다는 것을 아시고 또한 물에서 밤새 고기잡이를 했기 때문에 물에 젖어 있는 것을 아시고 숯불을 피워서 생선을 굽고 떡도 아마도 따뜻하게 해서 제자들에게 주셨을 것입니다.
 
지치고 배고팠고 물에 젖어서 한기를 느끼고 있는 제자들은 숯불 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예수님께서 준비해 주시는 떡과 물고기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세밀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아주 작은 것까지도 세밀하게 보시고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음소리도 들으시고 마음으로 고백하는 소리도 들으시는 세밀하신 분이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작은 것까지 기억하시고, 우리의 작은 필요도 놓치지 않고 채워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세심한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행복한 5월 가정의 달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내 양을 먹이라
오늘 본문에서 첫 번째 상황은 고기잡이에 실패한 제자들에게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셔서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먹을 것을 준비해서 와서 먹으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준비해 주신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상황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조반을 먹은 후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시몬 베드로에게만 질문을 하시고 말씀하셨는데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표현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15-17절까지를 보면
 
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21: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세 번의 질문에서 처음에는 네가 이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셨고, 두 번째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째에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이 세 번의 질문에는 각기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정말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인데 이렇게 질문하신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 부활 이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헷갈려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다른 제자들을 데리고 물고기 잡으로 온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네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제자로서의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나를 사랑하는 제자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서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15-17절까지를 다시 보면
 
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21: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세 번의 질문에 세 번 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예수님께서 세 번 질문하신 것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세 번 부인한 것을 염두에 두시고 베드로에게 세 번 질문함으로 그 때의 잘못을 극복하게 하시려는 의도라고 해석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의도로 세 번 질문하셨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세 번의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주님께서 내 마음을 다 아십니다. 즉 내가 비록 실수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 마음 중심에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이런 의미로 고백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실 때 우리도 진심을 담아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내 중심에는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17절까지를 다시 보면
 
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21: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양을 먹인다는 것과 양을 친다는 것은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는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속식을 거행하실 때도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고 하셨듯이 갈릴리 호수에서 제자들이 먹을 것을 준비해서 허기지고 지쳐 있던 제자들에게 아침을 차려 주신 것처럼 세상이라는 바닷가에서 밤새 고생하고 지쳐 있는 제자들과 같은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주는 생명의 전달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위로의 양식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신 것처럼 우리도 삶에 있어 필요한 양식을 먹이는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의 달 5월에 주님께서 참빛 가족들에게 와서 먹으라고 말씀하시고 가서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전에서 생명의 양식과 은혜를 먹고 세상에 나가서 생명의 양식과 위로와 은혜를 먹이는 참빛교회 모든 가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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