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배의 결실(5월 1일 주일 오후 예배)
성 경 : 마가복음 4:1-20(신약 58)
 
톨스토이는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10가지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01. 일을 하십시오, 성공이라는 대가를 줄 것입니다.
02. 생각을 하십시오, 생각은 능력의 근원입니다.
03. 운동을 하십시오, 그것은 젊음의 비결입니다.
04. 독서를 하십시오, 지혜의 샘이 거기에 있습니다.
05. 친절을 베푸십시오,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06. 꿈을 꾸십시오, 인생의 뜻을 품게 됩니다.
07. 사랑을 하십시오, 율법이 완성됩니다.
08. 배려하십시오, 풍성한 인생으로 가꾸어줍니다.
09. 웃으십시오, 영혼에 음악이 울려 퍼질 것입니다.
10. 기도하십시오, 인생의 영원한 투자를 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시간을 가장 가치 있게 사용하는 것에서 중요한 것은 바쁘고 힘들수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만큼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기도하는 것에 하나를 더 포함한다면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할 때 그리고 찬송할 때 하나님의 손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백배의 결실을 거두는 비결인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씨를 뿌려도 아무런 결실을 거두지 못하는 곳과 풍성한 결실을 거두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아무런 결실도 없는 믿음이 아니라 백배의 결실을 거두는 믿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고 온갖 노력을 다했음에도 열매가 없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우리가 열심히 수고한 만큼의 결실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도 허무한 신앙이 될 것입니다. 허무한 인생길에서 허무한 신앙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 한 것에 대한 결실을 거두는데 백배의 결실을 거두는 믿음의 사람들이 됩시다.
 
예수님은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결실하는 신앙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1.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예수님께서 바닷가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모인 무리들에게 말씀을 효율적으로 전하시기 위해서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닷가 육지에서 말씀을 듣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을 위해서 배에서 말씀을 선포하시는데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1-2절을 보면
4: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4:2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지금까지의 가르침은 주로 직설적인 표현 방법이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오늘 말씀에서는 우회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진리를 제시하는 비유를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본 장과 평행구절인 마태복음 13장에서는 7개의 비유가 사용되었지만 본 장에서는 등불의 비유(21절, 눅 8:16)와 자라는 씨앗의 비유(26-29절)가 더 있어 9개의 비유가 사용되었습니다.
 
더욱이 마가는 본 장 후반부인 34절에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4장에 기록된 비유 이외에도 상당수의 비유들을 계속해서 말씀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비유는 그 시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 시대의 생활과 관련된 것을 비유로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신 측면도 있지만 마가는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셔서 여러 가지를 가르치신 것은 심오한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외인에게는 비유로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11절을 보면
4:10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4: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비유로 가르치시자 비유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과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의미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에 대해서 먼저 설명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지에 대해서 비유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너희에게 즉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밀을 이해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비유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그 당시에는 비유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비유를 설명해 주시면서 비유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반면에 외인들 즉 믿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비유에 머물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비유라는 단어는 ‘파라볼레’ 라는 헬라어를 사용하셨는데 이 단어는 ‘수수께끼’로서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외인에게는 즉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나 수수께끼로 남아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나 수수께끼 같은 말씀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것은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13절을 보면
4:12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4:13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외인에게는 즉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점과 같은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6:9-10절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의 말씀을 주시지만 모두가 듣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인용하셔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 즉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말씀을 들어도 예수님의 사역을 보아도 깨닫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단지 깨닫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는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을 포함해서 말씀을 듣거나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하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깨닫고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곧 회개한다는 말입니다.
 
회개란 깨닫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과정에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열어주셔서 깨닫게 하심으로 우리가 비유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 성령의 도움을 받아 깨닫게 되고 회개하고 돌아서서 믿음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가 되게 하기 위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열매 없는 신앙
예수님께서 씨 뿌리고 열매 맺는 것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농부가 씨를 뿌렸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땅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똑같이 말씀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열매를 맺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과 신앙 상태를 땅으로 비유하시면서 우리가 어떤 땅의 신앙인지를 돌아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땅을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땅과 같은 영적 상태 즉 열매 없는 신앙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말씀을 빼앗긴 사람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4절을 보면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그리고 15절을 보면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농부가 씨를 뿌릴 때 씨앗이 길가에 떨어지게 되면 길가는 사람들이 밟고 다니기 때문에 굳은 땅이고 굳은 땅에 떨어진 씨는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씨가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새들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길가에 씨가 떨어지면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듯 우리 마음이 길가와 같이 단단하게 굳어 있다면 마음에 떨어진 씨를 사탄이 와서 빼앗아 버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길가는 농부가 갈아엎지 않는 땅입니다. 즉 씨 뿌릴 준비가 안 된 땅이고 씨가 떨어져도 자랄 수 없는 땅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받을 때 준비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말씀과 축복의 말씀을 들어도 길가와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받은 말씀을 빼앗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마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말씀에 대해 의심이 없어야 합니다.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을 때 말씀을 의심함으로 마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긴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면 실천해야 합니다. 실천하지 않는 신앙은 길가와 같은 신앙이라 언제든지 마귀가 와서 빼앗아 가게 됩니다. 기도하면 응답받는다는 것을 알고 기도하지 않으면 말씀을 빼앗깁니다.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축복의 말씀을 빼앗깁니다.
 
비록 길가라고 해도 딸을 갈아엎어서 부드럽게 만들면 씨가 떨어져 가라 열매를 맺습니다.
 
뿌리가 없으면 열매도 없습니다. 5-6절을 보면
4: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4: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16-17절을 보면
4:16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4:17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두 번째 씨앗이 떨어진 땅은 돌밭입니다. 돌밭은 흙보다 돌이 많은 지역으로 씨가 떨어지면 흙이 조금이라도 있기 때문에 싹이 납니다. 그러나 돌 틈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해가 돋아서 뜨거운 햇살이 비치면 뿌리가 햇볕에 노출되어서 뿌리가 타버리고 맙니다.
 
예수님은 돌밭과 같은 마음 상태에 대해서 말씀을 들을 때 즉시 기쁨으로 받기는 하는데 믿음의 뿌리가 없기 때문에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즉 믿음으로 살다가 환난이나 박해가 오면 곧 넘어지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견고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은 어떤 시련과 환난이 와도 견디어 내는 반면에 돌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말씀으로 은혜를 빨리 받지만 금방 식어버리는 신앙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살다가 어려운 일이 오면 어려움과 환난을 견디어 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떠나게 됩니다. 어려움이 오는 것으로 인해서 넘어집니다. 이런 사람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시험에 잘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로는 은혜를 받았다고 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려움이 오면 금방 넘어지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냄비 신앙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또 다른 신앙은 염려와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7절을 보면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18-19절을 보면
4:18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4:19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돌밭에 이어서 가시 떨기에 떨어진 씨앗은 싹이 나고 어느 정도까지는 잘 자랍니다. 그러나 가시가 햇살을 가로막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는 못합니다. 신앙적으로 가시 떨기는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도 꽤 오래 하는데 항상 마음에 염려가 많고 물질의 유혹 때문에 온전히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믿음이 먼저인 것도 아니고 믿기는 하는데 늘 염려하고 걱정하고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면서 신앙보다는 물질이 먼저인 사람이 가시 떨기와 같은 사람입니다.
 
늘 걱정하고 염려하고 유혹에 흔들리고 그런 신앙은 결과적으로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베드로 사도는 말했습니다. 모든 염려는 주님께 맡기고 물질의 문제도 주님께 맡기고 오직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성도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3. 결실하는 믿음
열매 맺는 삶에 대해서 말씀하신 예수님은 길가와 돌밭과 가시 떨기에 떨어진 씨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좋은 밭에 씨가 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8절을 보면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결실하는 신앙 즉 열매 맺는 신앙은 좋은 땅과 같아야 하는데 좋은 땅과 같은 신앙은
 
말씀을 경청합니다. 20절을 보면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여기서 듣는다는 말은 “경청하다.” “주의 깊게 듣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한 말씀, 한 말씀을 주의 깊에 경청하는 것에서부터 열매 맺는 신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말씀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말씀을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좋은 땅은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인정해야 합니다.) 20절을 다시 보면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받아’는 헬라어로 ‘파라데콘타이’ 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영접하다’, ‘승인하다’, ‘인정하다’ 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다음에 할 일은 말씀을 마음에 받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인정한다. 승인한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인정하고 진리인 말씀을 따라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소귀에 경 읽기라는 우리 속담처럼 말씀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마음에 담고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임을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말씀에 근거한 것이고 말씀이 없는 신앙은 온전한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받을 때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결실해야 합니다. 20절을 다시 보면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가만히 있으면 좋은 밭에 뿌려진 씨가 30배, 60배, 100배의 열매가 맺히는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결실하는 자 즉 열매를 맺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인정하고 말씀을 따라 살아갈 뿐만 아니라 실천하고 행동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결실한다는 것은 달란트 비유에서 받은 달란트를 남긴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달란트를 받았지만 어떤 사람은 받은 만큼 남겼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있는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드렸습니다. 결실한다는 것은 달란트 비유에서 이익을 남긴 하인과 같이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열매를 맺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앞에 어떤 역경이 온다고 해도 굴하지 않는 생명력으로 하나님 나라의 말씀으로 끝내 많은 결실을 맺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0배, 60배, 100배는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의 분량입니다. 참빛 교회 모든 성도들이 30, 60, 100 배의 열매를 맺는 축복의 사람들임을 믿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가능하면 100배를 결실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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