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력이 있어야 한다.(4월 24일 주일 오후 예배)
성 경 : 마가복음 3:20-35(신약 57)
 
[나에게 이야기 하기]

너무 잘하려 하지 말라 하네.
이미 살고 있음이 이긴 것이므로~

너무 슬퍼하지 말라 하네.
삶은 슬픔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돌려주므로~

너무 고집부리지 말라 하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늘
변하는 것이므로~

너무 욕심부리지 말라 하네.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치 않으므로~

너무 연연해 하지 말라 하네.
죽을 것 같던 사람이 간 자리에
또 소중한 사람이 오므로~

너무 미안해 하지 말라 하네.
우리 모두는 누구나 실수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너무 뒤돌아보지 말라 하네.
지나간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더 의미 있으므로~

너무 받으려 하지 말라 하네.
살다 보면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기쁘므로~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 하네.
천천히 가도 얼마든지
먼저 도착할 수 있으므로~

– 이어령 –
 
지난 번에는 12제자를 부르셔서 세우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부르시고 세우신 것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보내서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12제자를 세우신 다음 오늘 이야기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들은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보고 예수님에 대해서 귀신 들렸다든지 미쳤다든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같은 것을 보고 들었지만 전혀 다른 판단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곧 영적 분별력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고 하는 것을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고 오히려 귀신의 힘을 이용해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미쳤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보는 사람과 믿음이 없이 보는 사람의 차이는 늘 존재합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
사람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을 찾아 모여들었기 때문에 처음에 4명의 제자였는데 거기에 마태를 추가하셨고 또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자 12명의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옴으로 인해서 너무 바빠서 식사하실 시간도 없으셨습니다. 20절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침을 받고 은혜를 받기 위해서 모여들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첫 번째 사람들은 예수님의 친족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친족(척)들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21절을 보면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여기서 ‘친족들’ 이란 문자적으로 ‘그에게 속한 자들’, ‘그 곁에서 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어떻게 보면 ‘그의 친구들’ 또는 ‘그의 제자들’로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쉬운 번역본들은 친척이라고 번역을 했는데 개역 개정은 친족이라고 번역을 했는데 아마도 친족이 가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친족이라고 번역한 듯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붙잡으로 온 사람들은 친척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이 예수님을 붙들러 온 것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일단은 예수님을 가족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시는 사역에 대해서 믿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에게 인정을 받고 가족이 믿게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도 친척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미친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친척들이 생각하기에 갑자기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으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통성기도를 하고 방언기도를 하고 철야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서 미쳤구나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는 두 번째 부류는 서기관들로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습니다. 22절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예수님의 소문이 유대 온 전역에 파다하게 퍼져 급기야는 중앙에 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파견을 받아서 온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하나님의 역사라고 인정하지 못하고 귀신이 예수님에게 들어가서 저런 일을 하는 것이라고 소문을 냈습니다.
 
바알세불은 유대인들에게 귀신의 왕이란 개념으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자를 고치고 하는 것은 귀신의 왕이 예수님에게 들어가서 예수님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귀신의 왕이 예수님 안에 있고 귀신들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귀신 들린 사람들을 고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보면서 그들이 생각해 낸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영적 분별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런 정서가 있어서 무당들이 굿을 하거나 살풀이를 해서 잡귀를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귀신이 귀신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잠깐 잠잠하게 하는 것이고 그 후에는 더 많은 귀신들이 역사를 하게 됩니다.
 
마 12: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물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조금 다른 상황이기는 하지만 귀신이 귀신을 쫓아내면 이렇게 더 상황이 악화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거나 하면 점점 더 많은 귀신을 섬기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귀신에 붙잡혀 살게 되는데 그것을 모르고 계속해서 귀신을 섬기고 또 섬기고 하게 됩니다. 서기관들은 영적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시는 역사를 귀신의 왕이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분쟁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3-27절까지를 보면
3:23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3:24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3:25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3:26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3: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예수님께서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주장하는 서기관들의 주장에 대해서 사탄이 어떻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그렇게 하면 서로 분쟁하는 것이고 사탄이 서로 쫓아내면 사탄의 세력들이 망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서 세간을 강탈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의 의미는 귀신보다 강한 힘으로 귀신을 결박하고 내쫓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귀신보다 강한 힘으로 그들을 결박하고 쫓아내셨습니다.
 
우리에게 그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에게 명령하면 귀신들이 결박을 당하고 쫓겨나게 됩니다. 우리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야 하고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으로 귀신을 결박하고 쫓아내는 권세를 받아야 합니다.
 
2. 사하심을 받지 못하는 죄가 있다.
영적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 귀신의 왕을 힘입은 것이라고 하거나 미쳤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보다 자기를 위한 삶을 살아가게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죄에 빠져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분별력을 상실한 사람들은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죄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를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더라도 주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면 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죄가 다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28절을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모든 죄’는 문자적으로 ‘모든 죄악된 행위’를 뜻하며, ‘모독’은 ‘모든 죄’의 한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서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상대방의 일에 적극적인 방해를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같은 구체적이고도 적극적인 개개의 죄악 행위조차 궁극적으로는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목적으로서 예수님은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사랑과 또 모든 죄를 사하시는 능력을 지니신 인류의 유일한 구속자이십니다.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할 때 미쁘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하면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죄가 사함을 받을 수 있지만 한 가지 사함을 받지 못하는 죄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9-30절을 보면
3: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3: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해석하기 쉽지 않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신 상황을 보면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고 반복해서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비판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가는 성령을 모독한 것에 대해서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고 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사역이 성령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서기관들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귀신의 왕을 힘입은 귀신의 역사라고 계속해서 비판을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서 병이 고침을 받고 귀신이 물러가는 역사가 일어나고 표적과 기사가 나타날 때 그런 일들이 하나님의 성령이 하시는 것이 아니고 마귀가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마 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고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인정해야 하고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거나 성령의 역사를 거역하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6:4-6절까지 보면
6: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6: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지만 성령의 은사를 경험하고 타락한 길로 가거나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고 모독하는 것은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분별력을 잃고 성령을 따라 살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용서 받을 수 있는 죄 가운데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가 분별력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은 영적인 가족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가족도 중요하지만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영적 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귀신의 왕을 힘입은 것이라고 비판하는 서기관들의 말이 가족들에게 들렸을 것입니다. 따라서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31절을 보면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예수님의 친척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었지만 예수님을 붙잡아서 데리고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돕고 예수님의 사역에 참여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데리고 가려고 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였고, 앞으로 예수님께서 하실 놀라운 일들이 있을 것이라는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온전하게 믿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이 하시는 사역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 더 어려웠고, 이해하기가 힘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족이 서로를 믿고 이해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인정받고 살아가기가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특히 믿음은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다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사도들과 함께 기도하고 성령을 받고 초대교회의 중요한 지도자가 되었지만 처음부터 믿고 따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마음을 열고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처럼 가족 간에 먼저 이해하고 인정하고 수용하고 믿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안 믿어도 가족은 믿어주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도 가족에게는 위로를 받고 평안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족들이 찾아온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가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2-35절까지를 보면
3: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우리가 믿음 안에서 신앙 공동체를 세워가고 영적인 가족이 되기 위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을 따라서 내 맘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넘치는 은혜와 복을 받는 참빛교회 모든 가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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