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제자를 세우심(4월 10일 주일 오후 예배)
성 경 : 마가복음 3:7-19(신약 57)
 
지난 번에 안식일에 한편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것으로 인해서 안식일에 대한 논쟁을 하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무엇이 옳으냐? 라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하시는 질문입니다. 안식일은 우리에게 있어서 어떤 날일까요?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날입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잘하고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신 이야기와 열두 제자를 세우신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두 가지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열두 제자를 세우심”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계속되는 갈릴리 사역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사건으로 인해서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작당을 해서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사역은 계속되었는데
 
많은 무리가 하신 큰일을 듣고 나왔습니다. 7-8절을 보면
3: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3: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가버나움에서 사역을 하시던 예수님은 회당에서 병자를 고치신 사건 이후로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이 결탁을 해서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진행하게 된 것을 아시고 가버나움을 떠나서 갈릴리 바다로 가셨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바다로 물러가셨다고만 기록하고 있는데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진행하는 것을 아시고 바다로 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다로 물러가신 것을 알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나왔습니다.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두로와 시돈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나왔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나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에게 나온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신 큰일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큰일은 앞에 기록된 회당에서 병자를 고치신 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이야기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큰일을 듣고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큰일을 보고 들은 사람들의 두 가지 반응을 알 수 있는데 바리새인들은 헤롯당과 결탁을 해서 큰일을 하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반면에 많은 사람들은 큰일을 행하신 예수님에게 나아왔습니다.
 
같은 일을 하셨는데 그 일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 일 때문에 예수님에게 나와서 고침 받고 은혜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큰일을 듣고 우리는 주님께 나온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그 일이 오늘도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많은 무리가 나아옴으로 인해서 예수님께서 타실 작은 배를 대기하게 하셨습니다. 9-10절을 보면
3:9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3: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예수님께서 작은 배를 준비하게 하신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있는 상황이라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기도 하지만 예수님과 부딪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누구나 다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에게 가서 말씀을 듣고 고침을 받겠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해서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밀려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밀치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고 작은 배에 오르셔서 말씀을 전하시는데 이렇게 하신 더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는데 더러운 귀신들이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했습니다. 11-12절을 보면
3: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3: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나온 이유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병 고침과 귀신을 쫓아내신 것과 말씀을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닷가에 계신 예수님에게 나온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었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는 순간 두려움에 떨면서 소리를 지르는데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귀신들이 예수님을 향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외쳤다는 것은 귀신들이 예수님의 권세에 의해서 사람들에게서 나오게 된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귀신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외치자 예수님은 귀신들에게 예수님을 나타내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정체를 아직 구체적으로 나타내시지 않으시려고 하신 것은 아직 예수님의 사역이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육신 하신 목적을 완전하게 드러낼 때가 아직 안 되었기 때문에 그때가 될 때까지 공생애 사역을 하시는데 귀신들이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서 외치는 것에 대해서 경고하신 것입니다.
 
2. 제자들을 세우신 목적
12절까지 갈릴리 바닷가에서 가르치신 이야기를 기록했고 13절부터는 열두 제자들을 세우신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서 예수님은 4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2장에서는 세리였던 레위를 부르셨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이 전에 부름을 받았을 수도 있는데 3장에 와서 12명의 제자를 부르셔서 제자로 세우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2명의 제자를 완전하게 부르시고 세우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을 세우신 것은
 
자기가 원하시는 사람들을 부르셔서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 세우셨습니다. 13-14절을 보면
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바닷가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은 마을로 들어가시지 않고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이 산이 어느 산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갈릴리 근처에 있는 산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에 오르시기도 했고, 쉬기 위해서 오르시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셔서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선택하실 때 전적으로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들을 선택하시고 부르셔서 제자로 삼으셨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을 부르셨다는 것은 예정과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명을 받았다는 표현을 하는데 소명을 받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자신을 부르신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지 내가 원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뜻대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신 것은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기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심에 있어서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예수님을 도울 사람들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사역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나를 드리는 것이 진정한 사역입니다.
 
내가 사역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역사하시고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원하셔서 부르신 그분의 뜻을 따라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을 뿐만 아니라 보내사 전도하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14절을 다시 보면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여기서 함께 하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돕는 일을 위해서라는 의미와 함께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훈련하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훈련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훈련시키신 목적은 보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셔서 훈련 시킨 다음에 그들을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사도라는 단어는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내심을 받아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보내셔서 훈련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에 제자들을 본격적으로 보내심을 받은 사도로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과 같이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전도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권능을 가지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절을 보면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보내사 전도하게 하실 때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세우신 목적 중에는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가지게 하셨다는 것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귀신이 물러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3. 12제자
16절부터는 12제자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는 12제자를 세 부류로 구분했습니다.
 
중요한 3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의 이름이 먼저 언급되었습니다. 16-17절을 보면
3: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3: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예수님께서 12 제자들 중에서 이 세 제자를 특별히 구별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이 세 사람을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변화산에 오르실 때도 이 세 제자만 데리고 가셨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러 가실 때도 이 3 제자만 데리고 가셨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표현을 합니다. 제자들의 이름이 언급될 때 항상 처음으로 그 이름이 기록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원래의 이름은 시몬인데 예수님께서 반석이란 의미인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형제로 세베대의 아들들인데 야고보의 이름이 먼저 언급되는 것으로 볼 때 야고보가 형인 것으로 보입니다. 야고보는 초대교회 지도자였으며 사도들 중에 제일 먼저 순교했습니다. 요한(그에게 여호와는 은혜롭다.)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을 향해서 예수님은 보아네게 즉 우레의 아들이란 별명을 붙여주셨습니다. 보아너게의 어근은 분명치 않으나 히브리어 ‘브네 레게쉬’(우레처럼 쉴새 없이 시끄럽게 하는 아들들)에서 온 것 같습니다. 이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은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그들의 성급하고도 직선적인 성격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부르신 듯 합니다.
 
두 번째 그룹은 안드레를 비롯해서 8명의 제자입니다. 18절을 보면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이 제자들은 각기 다양한 계층이긴 하지만 사도들의 역할에 있어서는 3제자들과 조금은 구별되었던 것 같습니다. 안드레는(남자다움) 베드로의 형제이고 요한복음에 의하면 안드레가 먼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베드로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중요한 3 제자에는 들지 못한 것 같습니다.
 
빌립은 ‘말(馬)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이고 빌립은 갈릴리 벳새다 출신으로 안드레와 나다나엘의 친구였습니다. 그는 예수께 발견되어 제자에의 부르심을 받은 즉시로 그를 따르게 되고, 예수를 만난 후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그를 주께로 인도했습니다.
 
바돌로매는 ‘톨마이의 아들’이라는 뜻이며, 이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을 딴 것이기 때문에 아마 개인적인 다른 이름이 따로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요 1:46에 등장한 나다나엘(하나님의 선물)과 동일 인물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태는 레위와 이명동인으로 마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지만 마 10:3에서 마태는 사도들의 명단에 있는 자신의 이름 앞에 ‘세리’라고 기록했습니다. 마태는‘여호와의 선물’이라는 의미의 ‘맛다디아’의 준말로서, 헬라어로는 ‘데오도르’(Theodore)가 됩니다.
 
도마는 ‘디두모’(요 21:2)라고도 불리우는데, 디두모는 아람어로 ‘쌍둥이’를 의미합니다. 그는 그의 이름 때문에 알려지기도 했지만 그의 용기(요 11:16)나 그의 의미 깊은 고백(요 20:28)으로써 더 알려졌습니다. 그는 의심하는 자의 대명사인 동시에(요 20:25) 예수님을 가장 합리적이고 진지하게 알기를 소원했던 이성적인 신앙인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어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인도에 선교사로 가서 일하다가 그곳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기 위해 흔히 ‘작은 야고보’로도 불리어졌습니다(15:40, 마 27:56). 이는 아마도 세베대의 아들 곧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보다 그가 늦게 부름받았거나 나이가 연소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일 것입니다. 한편 야고보의 아버지 알패오는 글로바와 동일인인 것으로 추정되며, 그의 부인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사도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와 친 자매간으로 여겨집니다.
 
다대오는 아마도 누가복음의 명단에 나와 있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그의 본명이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어떤 사본에는 ‘렙바이오스’ 와 ‘다대오’가 함께 불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렙바이오스’와 ‘다대오’는 어휘상 유사성을 갖고 있는데 ‘렙바이오스’는 ‘심장 깊은 곳’, ‘다대오’는 ‘가슴’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러한 이름은 아마 그를 배신자 유다와 구별하기 위해서 붙여진 것 같습니다.
 
가나안인 시몬은 ‘열심당’이라 불리어 졌습니다. 이러한 별칭은 단지 그의 종교적인 열성을 묘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가 예수의 제자로 부름 받기 전에 광적인 국수주의자 그룹인 셀롯당(열심당)의 일원임을 밝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열심당은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던 로마에 폭력으로 대항하여 싸웠던 유대인들의 애국 집단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가 있습니다. 19절을 보면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유다의 성은 ‘가룟’(Iscariot)이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아마 ‘가룟(Karioth)이라 불리우는 지방에서 온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가룟지방은 헤브론에서 남쪽으로 약 3 km 떨어져 있는 ‘케리옷 헤즈론’ 지방(이거나 모압 땅 케리옷 지방과 동일시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12제자 중 유일하게 남쪽 출신의 제자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성경에 나타나기 이전의 생애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단지 제자들의 돈궤를 맡아 회계를 보고 베다니에서의 향유 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예수를 배반하고 자살하는 것으로만 유다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선택하셔서 부른 제자였지만 예수님을 팔고 비참한 죽음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지만 마귀의 유혹에 넘거간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양한 사람들을 부르셔서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길 원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부름 받은 주님의 제자로 귀신을 쫓아내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임 받아야 될 줄 믿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 고침을 받아서 복음을 전하는 참빛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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