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증인(4월 17일)
누가복음 24:1-12(신약 139)
 
부활절 아침의 기도
 
주여
저에게
이름을 주옵소서
당신의 부르심을 입어
저도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태어나기 전의
이 혼돈과 어둠의 세계에서
새로운 탄생의
빛을 보게 하시고
진실로 혼매한 심령에
눈동자를 베풀어 주십시오
 
‘나’라는 완고한 돌문을
열리게 하옵시고
당신의 음성이
불길이 되어
저를 태워 주십시오.
 
그리하여
바람과 동굴의
저의 입에
신앙의 신선한
열매를 물리게 하옵시고
당신의
부르심을 입어
저도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주여
간절한
새벽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에게 이름을 주옵소서
 
박 목 월
 
박목월 시인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시인인데 그의 시들 중에는 신앙적 고백을 담은 시들이 있습니다. 부활절 아침의 기도는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로 새롭게 거듭난 삶을 살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원이 담긴 기도 시입니다.
 
길고 긴 코로나의 상황이 완전하게 끝난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일상 회복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한대로 팬데믹에서 엔데믹 상황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 부활 감사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지구촌이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전화되어 모두의 일상이 회복되길 부활의 아침에 간절하게 소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누구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시대가 온다고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들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갑작스럽게 체포되고 십자가 처형 판결을 받으시고 십자가 처형이 즉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갑작스런 일이었듯이 예수님의 부활도 아무도 기대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누구도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이 말은 아무도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거나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혹시 예수님께서 부활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 중에는 누구도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2020년에 시작된 코로나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는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사람들에게는 갑작스런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이미 계획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섭리하심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같은 고난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과 같은 기적의 역사도 반드시 있습니다.
 
2022년 부활절에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첫 번째 부활의 증인이 되었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그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첫 번째로 증거 한 증인들입니다. 2022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참빛 가족들이 이 시대의 부활의 증인이 됩시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성 금요일에 십자가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여인들은 부활의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여인들은 자신들이 전혀 기대하지 못한 광경들을 보게 됩니다. 여인들은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갔습니다. 1절을 보면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서 잡하시던 밤에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면서 도망갔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두려운 나머지 십자가 처형 장소에 얼씬도 못했습니다.
 
요한은 여인들과 함께 예수님 가까이에서 죽으시는 것을 보았고 나머지 제자들은 자신들도 잡혀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한 곳에 모여서 모인 곳의 문을 걸어잠그고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신 뒤에도 떠나지 않고 예수님의 장례식을 어떻게 치루는지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어느 무덤에 장사지냈는지도 살펴보았습니다.
 
여인들이 생각할 때 당시 유대인들의 정통 장례식에 비하면 예수님의 장례식이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돌아가시고 무덤에 장사지내실 때까지는 유심히 관찰하던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갑작스럽게 잡히시고 죽으신 것도 억울한데 마지막 가시는 길은 장례도 제대로 치러드리지 못했다는 안타가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자신들이 준비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하고 안식일이 지난 다음에 예수님의 무덤에 가서 미처 다해드리지 못한 장례의 전통을 마저 해 드리고 싶어서 안식일이 지나고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인들은 급하게 향품을 준비해서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인들이 무덤에 찾아간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못해 드린 것이 죄송해서 마지막 정성을 다하기 위해서 찾아간 것입니다.
 
여인들은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서 장례를 위한 향품을 준비해서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덤에서 돌려 옮겨져 있었습니다. 2절을 보면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여인들은 무덤에 누워 계실 예수님을 보고 향품을 발라드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던 날에 예수님을 무덤에 장례 치룰 때 예수님의 무덤 입구에는 큰 돌로 가로막아 놓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에서 군인들이 지키게 했습니다. 여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돌을 굴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무덤을 지키는 군인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 것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여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길 힘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막 16: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여인들은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길 대책도 없이 무조건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서 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무덤에서 돌을 옮길 힘이 없지만 무덤을 향해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돌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상황을 알면서도 믿음으로 나아갈 때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 강이 갈라지고 무덤에서 돌이 옮겨지는 것과 같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인들을 놀라게 한 또 다른 사건은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3절을 보면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여인들이 무덤에 찾아간 목적은 향품을 바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무덤을 가로막고 있던 돌이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체가 그곳에 없었습니다.
 
여인들은 금요일 오후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처참한 모습으로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아갔는데 그곳에 예수님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이 그곳에 간 목적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발라 드리려고 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여인들은 자신들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고 기대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더 크게 역사하십니다. 바울 사도께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엡 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 부활 소식을 들었습니다.
부활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갖고 예수님의 무덤에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도착해서 여인들이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기 전에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4절을 보면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인들이 무덤에 온 목적은 예수님에게 향품을 발라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무덤에 도착을 해보니까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습니다. 여인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무덤에 계셔야 하는데 무덤에 계셔야 할 예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당황하고 근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여인들에게 근심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비슷한 상황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놓으셨는데 우리가 기대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당황하거나 걱정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지금 걱정하고 근심하고 염려하는 일들이 무덤에 계셔야 할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내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근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생각한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하면 근심이 기쁨이 되고 슬픔이 찬송이 되고 염려가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기대한 것을 바라지 말고 죽었던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계획을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갑시다.
 
근심하고 있는 여인들에게 천사들이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고 말했습니다. 5-6절을 보면
24: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24: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여인들은 근심하며 예수님의 시체를 찾았습니다. 그러자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여인들은 천사들을 보고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두 사람이라고 묘사되었는데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말했습니다.
 
천사는 계속해서 여인들에게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고 말했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너희가 왜 살아계신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으려고 하느냐고 말하고 예수님께서 여기 계시지 않고 즉 무덤에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했습니다.
 
천사들은 계속해서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6-7절을 보면
24: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24: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 대”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고 전하면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 보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은 이미 너희에게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말씀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많은 무리들에게 고난 받으실 것과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이제 너희는 예수님께서 하신 그 말씀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말씀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원하는 말씀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데 하나님의 원하시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은 듣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말씀 선포를 통해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읍시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잊고 있던 여인과 제자들처럼 말씀을 잊고 내가 듣고 싶었던 말씀만 듣지 말고 하나님의 의와 그의 나라를 위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참빛교회 모든 가족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에게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무덤에 갔던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여인들이 부활의 증인이 된 것을 보면
 
먼저 주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8절을 보면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천사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여인들은 천사들이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말씀하셨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말씀을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철저하게 말씀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말씀에 벗어난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말씀을 무시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을 기억할 때 말씀안에서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역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기억하고 생각나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기억하게 하셔서 믿음의 진리 안에 살아가게 하십니다.
 
여인들은 무덤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모든 사람에게 알렸습니다. 9-10절을 보면
24: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24: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여인들은 천사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무덤에서 경험한 모든 일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증거했다고 기록하지 않고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들에게 증거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이 빈 것과 천사들이 증거한 일에 대해서 그리고 갈릴리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일을 상기하면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인들처럼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언제든지 항상 내가 만난 예수님, 내가 경험한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고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여인들의 증언을 들은 제자들은 믿지 못했지만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가서 확인했습니다. 11-12절을 보면
24: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24: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니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기적을 보았고 말씀을 배우고 훈련을 받은 사도들은 놀랍게도 여인들의 증언을 듣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못했습니다.
 
허탄한 듯이란 단어를 현대어 성경은 “꿈같은 이야기”로 번역을 했고 공동번역은 “부질없는 헛소리”로 번역을 했습니다. 허탄한 듯하여 라는 말은 잡담이란 뜻입니다. 부활 소식을 듣고 잡담처럼 여기고 헛소리로 치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여인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가서 확인을 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와 베드로 무덤으로 갔다고 기록했습니다.
 
더 잘 믿어야 하는 사도들이 오히려 더 믿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이 사도들과 같은 것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요한처럼 예수님의 빈 무덤을 찾아가는 열정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인들의 증언처럼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고 예수님의 부활의 은총을 나누어야 합니다.
 
사망권세 이기시고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지막 때 주님 다시 오실 때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이 됩시다. 부활의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는 참빛 교회 모든 가족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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