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3월 27일)
누가복음 15:11-32(신약 122)
 
아버지의 마음
 
김 현 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 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것들이 간직한 깨끗한 피로…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은 대부분은 이런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 말 없이 가정을 돌보면서 묵묵히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근래에는 과거의 아버지들과는 다른 모습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라고 부르기 보다는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한 그런 아버지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예수님은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예수님은 아버지의 마음을 설명하시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느 집에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재산 중에서 나에게 물려줄 분깃을 미리 달라고 해서 아버지는 작은아들 분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작은아들은 자기 재산을 모두 팔아서 현금을 만들어서 아버지를 멀리 떠나 먼 나라로 가서 자기하고 싶은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작은 아들의 삶을 허랑방탕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허랑방탕하게 살던 둘째 아들은 오래가지 않아서 재산을 모두 탕진했습니다. 몇 년은 신나게 먹고 마시고 놀다가 재산을 다 낭비했는데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흉년이 들면 민심이 흉흉해지는 법이고 남에게 인색해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둘째 아들은 재산을 다 탕진했는데 흉년까지 들어서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국 남의 집에 가서 돼지를 치는 일을 하면서 돼지들이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자기 아버지의 집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서 이 모양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내 아버지의 집에는 양식이 풍족하고 일하는 사람들도 부족함이 없이 살고 있는데 나는 여기서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가기로 결단을 하고 아버지에게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탕자의 비유라고 말하는데 탕자의 비유보다는 돌아온 아들의 비유라고 하는 것이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재산을 미리 달라고 떼를 써서 자기 재산을 가지고 가서 다 탕진하고 거지꼴로 돌아온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마음과 집에서 아버지 말씀에 순종해서 열심히 일한 큰아들을 향한 마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의 마음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그 마음은 어떤 것일까를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1. 둘째 아들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아들들의 마음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얼마 전 티브에 첫째와 둘째의 갈등에 대한 주제로 진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은영 박사가 상담을 해 주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는데 첫째와 둘째는 서로 자기들만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둘째가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 둘째인 패널들은 모두 공감하고 첫째들이 힘든 이야기를 할 때는 첫째들이 모두 공감하면서 서로 힘들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오은영 박사가 상담해 주면서 첫째와 둘째가 서로 마음을 열게 하는 참 좋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첫째와 둘째는 서로 다른 측면에서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첫째와 둘째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셨습니다. 두 아들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먼저 둘째 아들의 마음을 보면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둘째 아들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1-12절을 보면
15: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5: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예수님은 어느 집에서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말씀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집에서나 둘째들이 느끼는 감정이 있는데 이렇게 사느니 집을 떠나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날 티브에서 이승기가 자기 여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비리그도 가고 석사 과정도 밟고 현재는 대기업도 다니고 있다. 그런데 여동생의 자소서 제목이 ‘Shadow of my brother(오빠의 그림자)’였다.” 고 말하면서 자기 여동생이 겪은 아픔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부분의 집안에서 둘째들이 느끼는 콤플렉스들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비유에서도 둘째 아들은 콤플렉스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늘 형만 칭찬하는 것 같고 항상 형과 비교를 하면서 너도 형만큼 해라, 형처럼만 해라, 그런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자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라면서 둘째의 마음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루빨리 아버지를 떠나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성인이 되어서 혼자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에게 자기에게 물려줄 재산을 미리 물려달라고 떼를 쓰게 되고 결국 재산을 팔아서 먼 나라로 이민을 가버렸습니다.
 
둘째 아들이 겪은 마음의 고통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둘째 아들을 비난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둘째 아들이 얼마나 마음으로 힘들었으면 아버지와 형을 멀리 떠나고 싶었을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가정에서는 다른 집안과 똑같이 하면서 하나의 짐을 더 얹어주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렇게 살면 안 되는거야 이렇게 짐을 하나 더 얹어줍니다.
 
아버지의 형으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었던 둘째 아들은 받은 재산을 다 팔아서 아주 먼 나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알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13-16절을 보면
15: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5: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5: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형이 없는 먼 나라로 이민을 가서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았습니다. 아침부터 일하러 나가라고 잔소리 하는 아버지도 안 계시고, 시도 때도 없이 구박하는 형도 없고, 주머니에 돈은 두둑하고 둘째는 해방감을 만끽하면서 먹고 마시고 놀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마도 둘째는 집에 있을 때도 형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아버지에게 야단도 맞고 형에게 구박도 받고 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혼자서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자 아무 생각없이 먹고 마시고 흥청망청 세월을 보내다가 결국은 모든 재산을 다 허비라고 알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17-21절까지를 보면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15: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서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막상 집을 떠나서 먼 나라로 이민을 가서 하고 싶은대로 했는데 결과는 알거지가 되었고 돈이 있을 때는 친구 같이 지내던 사람들이 재산을 다 탕진하고 나니까 아무도 반겨주지 않고 만나주지도 않았고 먹을 것을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돼지 치는 일이었고 유대인들은 돼지를 먹지 않기 때문에 키우지 않는데 둘째 아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도 남의 돼지를 치면서 돼지들이 먹는 것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그제서야 둘째 아들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뉘우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결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비는 회개가 중요합니다.
 
둘째는 자신이 한 짓을 돌아볼 때 아버지의 집으로 가기는 가지만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 종처럼 살겠다고 다짐을 하게 됩니다. 이미 자신의 재산을 다 받아서 탕진했기 때문에 아버지 집에는 더 이상 자기 몫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재산을 더 달라고 하지 않고 하인들처럼 일하면서 하인처럼이라도 살겠다고 다짐을 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둘째는 염치불구하고 아버지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믿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어떤 상황이 우리 앞에 놓이게 될 때 내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면 결단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지체하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결단하고 하나님께로 그리고 우리 앞에 있는 어려움과 문제에 직면해서 나아갑시다.
 
2. 큰 아들의 마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비유에서 우리는 둘째 아들에게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큰아들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우리가 큰아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둘째 콤플렉스가 있듯이 첫째 콤플렉스도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정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말씀하신 것인데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을 수도 있는 큰아들의 마음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큰아들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었습니다. 29절을 보면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큰아들은 언제나 아버지의 든든한 버티목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마음에 가득했을 것입니다. 동생이 늘 말썽을 부리고 일도 안 하려고 하기 때문에 큰아들은 힘들다는 말도 못하면서 한 번도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은 마음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아버지 말을 거스리지 않고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놀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이고, 때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도 있었을 것이고, 아버지가 자기에게만 일을 시키는 것 같아서 부당하다고 여겨질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모든 것을 참고 묵묵히 일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명을 어김이 없이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언제나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습니다. 대부분의 큰아들들의 모습에는 이런 모습이 있습니다. 장남이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이 있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큰아들이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폭발했습니다. 28절을 보면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30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큰아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않았고 열심히 일했는데 나를 위해서 내 친구들을 불러다가 파티 한번 안 열어주시더니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알거지가 되어서 돌아온 동생을 위해서 송아지를 잡아서 파티를 열어 주시는게 말이 됩니까? 하면서 아버지에게 들면서 분노의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그동안 참고 참았던 감정이 폭발을 했습니다. 자기는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고 최선을 다해 아버지를 섬겨왔는데 아버지께서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 있습니까 하면서 참았던 감정을 폭발시킨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가정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묵묵히 열심히 충성하고 헌신하는 성도들의 내면에는 보이지 않는 분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녀들과 교회에서 헌신하는 성도들의 심리적인 상태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 아버지의 마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야기는 많은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첫째와 둘째의 갈등과 마음 상태를 잘 표현해 주셨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들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셨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의 마음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 온 것처럼 반갑게 맞아주는 마음입니다. 32절을 보면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아버지는 집을 떠난 아들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들은 아들의 소식은 재산을 다 말아먹고 빈털터리가 되어서 남의 집에서 돼지 치는 일을 하면서 쥐엄 열매를 먹으면서 근근이 연명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소식을 듣고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아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다렸습니다. 아버지에게 있어 집을 나간 아들은 죽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동네 어귀에 나가서 매일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20절을 보면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집을 떠난 이후로 아버지는 매일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마을 입구에서 매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 멀리서 거지꼴을 하고 오는 사람을 보고 아버지는 아들 인 줄 알고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집을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몰골로 돌아오는 아들이었지만 아버지는 멀리서도 아들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달려가서 안아주고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놈이 자기 재산을 달라고 떼를 써서 다 가지고 먼 나라로 이민을 갔는데 거지꼴을 하고 오면 야단을 치고 내 쫓아야지 왜 반갑게 맞이해 주느냐?
 
그런데 그게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먼저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할 때까지 기다린 것이 아니라 아들인 것을 알아보자마자 달려가서 반갑게 안아주고 기뻐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회개하지 않았지만 반갑게 맞이해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버지가 반갑게 맞이해 주자 둘째 아들은 용기를 내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아들이 아닌 하인으로 살겠다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21절을 보면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잘못을 묻지도 따지지 않고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22-24절을 보면
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15: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아버지는 아들에게 야단을 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들이 돌아온 것만으로 즐거워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먼 나라로 떠날 때 다시는 못 돌아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죽은 아들이라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거지가 되긴 했지만 건강하게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뻐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불러서 파티를 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어떤 모습을 하고 돌아오던지 묻지고 않으시고 따지지도 않으시고 반갑게 맞이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 온 것을 기뻐하시면서 천국 잔치를 열어주십니다.
 
큰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은 내 것이 다 네것이로다 하는 것입니다. 31절을 보면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아버지는 큰아들에 대해서 항상 미안한 마음과 고마움이 있었습니다. 둘째가 그렇게 아버지를 떠난 뒤에도 큰아들을 묵묵히 열심히 일을 하면서 아버지를 도왔습니다. 큰아들의 그런 마음을 아버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이 작은아들이 돌아온 것에 대해서 아버지가 잔치를 열고 하는 것에 대해서 분노를 폭발할 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지 않으니? 이 말은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너를 내가 안전하게 보호해 주었다는 말입니다.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고 때론 지칠 때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집에 있는 것은 항상 아버지의 보호를 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떠나지 않고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항상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안전하게 하나님 아버지와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말합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큰아들은 혹시라도 아버지가 동생에게 자기 몫의 재산을 나누어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음을 알 수 있고 아버지는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지금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라고 말하면서 큰아들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나지 않고 언제나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주님 앞에 섰을 때 하늘 아버지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때론 작은아들이 부러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떠나지 않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보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것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집을 잘 지킨 아들을 보호하고 축복하십니다.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항상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참빛 가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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