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을 부르러 왔노라(3월 13일 주일 오후 예배)
성 경 : 마가복음 2:13-17(신약 55)
 
♥ 행복은 
 
철학자 칸트는 행복의 세 가지 조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할 일이 있고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셋째, 희망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건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누리며 감사하기보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걸
탐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남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나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가면
그 결과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게 될 겁니다.
 
즉, 행복은 ‘셀프’입니다.
행복의 씨앗을 내 스스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행복은 향수와 같다고도 말합니다.
자신에게 먼저 뿌리지 않고서는
남에게 향기를 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멋진 사람보다는
따뜻한 사람이 되세요.
멋진 사람은 눈을 즐겁게 하지만
따뜻한 사람은 마음을 데워 줍니다.
 
잘난 사람보다는
진실한 사람이 되세요.
잘난 사람은 피하고 싶지만
진실한 사람은 곁에 두고 싶습니다.
 
대단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세요.
대단한 사람은 부담을 주지만
좋은 사람은 행복을 줍니다.
 
– 좋은 글 中 –
 
지난 주에는 한 중풍 병자를 네 사람이 침상 채로 예수님께 들고 와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에게 갈 수 없자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침상 채로 예수님 앞에 달아 내림으로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를 고쳐주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주 말씀과 연결된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바닷가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던 레위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시자 세리 레위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레위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식사대접을 하는데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이 당시 유대인들이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유대인들이 죄인 취급하면서 상종도 하지 않는 세리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기준으로 볼 때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의 서기관들이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떼 있느니라” 고 말씀하시고,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1. 세리 레위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고치신 다음에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머무시던 집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바닷가에서 가르치셨습니다. 13절을 보면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예수님께서 바닷가를 나가신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집에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는 바닷가를 선택하셨습니다. 바닷가는 타원형이고 물가는 낮고 조금씩 높아지는 형태이기 때문에 마치 원형 공연장 같은 형태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물가에 서시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서 둘러앉을 수 있고 지형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도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누구나 잘 들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종종 물가에 나가서 말씀을 가르치신 것은 지형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잘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물가로 모였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탁월한 선생님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셨고 특히 비유를 많이 사용하셔서 듣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가르치신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었습니다. 14절을 보면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여기서의 레위는 일반적으로 마태와 동일 인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마 9:9의 동일 사건에서 그를 마태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레위’는 그의 본명이고, ‘마태’(‘하나님의 선물’이란 뜻)는 그의 사도명인 것 같습니다.
 
그는 갈릴리 분봉 왕이던 헤롯 안디바에 의해 세리로 고용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가 거주하던 가버나움 근교인 이곳은 교통의 요충지로 다메섹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큰 도로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애굽으로 통행하던 대로가 서로 만나는 교차로 근처에 위치하여 정치, 경제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곳은 헤롯 빌립의 관할지인 데가볼리로부터 오는 여행자들이 안디바 관할 지역에 처음으로 들어서는 곳, 즉 가버나움을 통해서 갈릴리와 유대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곳이었습니다.
 
한편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문자적으로 ‘세를 징수하는 곳에 있었다.’는 뜻으로 그의 신분이 세리였음을 단정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자료에 의하면 세리는 두 계층의 세무 관리로 구별된다고 합니다. 수입세와 인두세를 걷어 들이는 관리와 교량이나 운하나 국도에서 통과세를 걷어 들이는 관리인데, 후자가 더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후자의 경우 세금 부과를 임의로 정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는 아마도 다메섹에서 가버나움을 거쳐 지중해 해변 쪽으로 가는 노상에 위치한 통행료를 징수하던 곳에서 일하였던 듯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는 유대인들로부터 철저한 경멸과 증오를 받는 죄인의 그룹에 속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죄인 취급 받고 있던 레위를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랐습니다. 14절을 다시 보면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이 명령은 현재 미완료형으로서 단 한번의 호출이 아닌 계속적으로 끊임없이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과 행위를 좇을 것을 명령한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 명령은 레위가 현재까지 수행하고 있던 직업을 완전히 포기하고 질적으로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라는 삶의 변화를 요구한 것이기도 합니다.
 
경제. 사회적으로 상당한 기득권을 가진 레위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순응하는 데는 주저할 요소가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컨대 어부는 쉽게 고기잡이로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그들은 고기잡이 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레위는 다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당시 세리라는 직업은 비록 인격적, 도덕적으로는 비난을 받던 직업이지만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유망한 직종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직업과 모든 것을 포기하는 위대한 결단을 함으로써 예수님의 위대한 복음 선교의 동역자로 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때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데 세상적으로 볼 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포기하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때 힘들고 어려운 과정은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귀하게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세리와 죄인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세리였던 레위를 부르셨고 마태이기도 한 레위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나선 레위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15절을 보면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세관에서 일을 하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레위는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는데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따라나서기 전에 먼저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식사 대접을 했습니다.
 
레위는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송별회를 겸한 식사 자리를 마련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세리가 아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전에 그동안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친한 사람들을 초청을 해서 송별식을 겸한 식사 자리를 마련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레위의 초청을 받고 그 집에 들어가셔서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제자로 부름을 받은 레위의 집에 가셔서 레위가 초청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거기에서 세리와 죄인들이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15절을 다시 보면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레위는 예수님과 제자들만을 초청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을 함께 식사 자리에 초대를 했는데 초대 받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죄인들이라고 불려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세리들은 지배자로부터 세금 징수를 위탁받아 백성들의 고혈을 짜고 온갖 수탈을 일삼던 자들입니다. 레위와 같은 경우 국경을 통과하는 상품들에 부과되었던 변칙적인 세금을 징수하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로마 제국의 모든 지방은 각기 로마 정부의 비호 아래 고유한 관세 구역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로마 정부에 의해 인정된 피지배인 단체들과 피지배 국가들도 징세권을 행사했습니다.
 
한편 조세와는 달리 관세의 수입은 황제의 국고가 아니라 지방 군주의 금고로, 즉 갈릴리에서는 헤롯 안디바의 금고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관세의 징수는 국가 관리가 아니라 세금 청부업자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들은 일 년 동안의 일정한 세금액을 정해서 일정한 지역의 관세를 청부 맡았습니다.
 
그들은 할당된 액수를 채우기 위해서 더 많은 액수의 세금을 거두어 들였고 할당된 액수 이외의 여분은 그들이 가질 수 있었고, 대신 모자라는 부분은 보충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당연히 부하들의 징세를 독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반 백성에게 부과될 세금액이 거의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세금을 징수하는 세리들이 백성들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세리들이 국민들을 못살게 구는 집단이라고 생각을 했고 그런 일을 하는 세리들을 유대인 공동체에 들어올 수 없는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지역 사회에서 왕따를 시켰습니다.
 
여기서 세리와 죄인이라고 한 것은 세리들을 유대인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죄인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식사 자리에 참여한 레위와 함께 근무한 세리들에 대한 일반적인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의 종교 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세리를 유대인 공동체를 괴롭게 하는 죄인들이라고 생각했고 죄인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세리와 죄인들이라고 한 것은 세리들 이외에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죄인으로 취급받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참여한 것이라고 해석하기 보다 대부분 거기 참석한 사람들이 세리였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15절 끝 부분에 보면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예수님을 따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는 죄인 취급을 받고 왕따를 당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았고 예수님은 그들을 죄인 취급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 유대인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리셨습니다. 대부분의 죄인 취급하는 사람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을 인정해 주시고 그들을 품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오늘 교회도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가 100년이 넘으면서 우리나라 교회 안에 형성된 고정관념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앉아서 예배 드릴 수 없었습니다.
 
중간에 칸막이를 하고 남자와 여자가 따로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자연스럽게 같이 앉아서 예배를 드립니다.
 
또 한 예로 주일 낮 예배 시간에 박수를 치면서 찬송을 부르거나 복음성가를 부르거나 하지 않았고 드럼이나 키타를 치는 것도 허용이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일 낮 예배 때에도 키타와 드럼을 치고 손뼉을 치고 복음성사도 부릅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시대 상황에 맞게 변화 되어 왔습니다. 한 가지 변할 수 없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세주라는 사실입니다. 이 외에 복음의 진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보고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비판을 했습니다. 16절을 보면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그들이 생각할 때 예수님은 같이 앉아서 식사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을 했습니다.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의 비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3.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들이 죄인과 세리들과 식사하는 것은 유대인의 전통으로 볼 때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신 것과 관련해서 이 일이 기록되기 전에 있었던 중풍병자를 고치신 이야기에서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5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네 사람이 메고온 중풍 병자는 죄로 인해서 그 병에 걸렸고 예수님은 그를 고치시기 위해서 먼저 그의 죄를 사해주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것은 죄인들을 부르셔서 죄를 사해주시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중풍 병자를 고쳐주실 때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죄인을 용서하시고 병든자를 치료하여 육체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고 우리의 육체의 질병을 고쳐주시고, 우리의 삶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17절을 보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의사가 필요한 사람은 병든 사람이지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은 예방을 위해서 더 건강한 삶을 위해서 의사의 도움을 받곤 합니다.
 
그러나 고대 사회에서 의사는 건강한 사람이 아닌 병든 사람을 위해서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영적으로 건강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아닌 영적으로 병들고 지쳐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은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영적으로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아닌 영적으로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병들고 지쳐있는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의사이십니다. 우리의 영혼을 고쳐주시고, 우리의 육체를 고쳐주시고, 우리의 삶을 고쳐주십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7절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의로운 사람들이 아닌 죄인들을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 즉 의인이 아닌 죄인일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죄인을 위해서 왔고 병들고 지쳐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왔다.” 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죄를 사하시고 나를 구원하시고 치료하러 오신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치료받고 모든 것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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