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면 상이 클 것이라(2월 20일)
누가복음 6:27-38(신약 99)
 
본격적인 대통령 선거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3월 9일 대통령 선거일까지 밤낮없이 선거 운동하는 사람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후보 등록이 시작되면서부터 길거리에는 유세 차량들이 등장을 해서 큰 소리로 선거 방송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능하면 밤에는 좀 조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습니다. 사거리마다 중요한 길목마다 수많은 선거 운동원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근래에 와서 교회나 종교행사에서 선거 운동을 하는 것을 감시하는 단체들이 각 교회와 종교단체를 찾아다니면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교회에서 주의하셔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어느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한다는 의견을 밝히거나 정당 가입을 권유할 수 없습니다. 교회 예배 광고 시간에 선거와 관련된 사람들을 소개할 수 없고, 후보자나 정당의 이름으로 헌금을 한 것을 밝혀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헌금하신 분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지만 헌금하신 분들의 이름을 공개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후보가 있겠지만 교회안에서는 어떤 사람을 지지하자는 이야기를 하시면 안 됩니다. 교회 밖에 나가서 길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괜찮지만 교회 안에서 어떤 후보나 정당을 지지한다는 말을 하시면 안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교회 총연합회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세 가지 내용입니다. 첫 번째로는 기독교적 가치관에 부합한 정부가 구성되도록 선택하자. 두 번째로는 5년 후를 바라보는 지혜로 지도자를 선택하자. 세 번째로는 교인 각자의 선택을 서로 존중하자는 내용입니다.
 
서로 지지하는 사람이 다르다고 해서 비난하지 말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제비는 사람이 뽑지만 결과는 하나님이 정하신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선거는 국민들이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분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점을 분명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지도자를 선택하시고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대통령 선거 운동이 시작된 첫 주 인데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어떻게 하는 것이 상을 받는 삶인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우시고 주신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성도들은 이런 삶을 살아야 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을 상이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그리하면 상이 클 것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원수를 사랑하라
그리하면 상이 클 것이라 즉 믿음 안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늘 아버지께서 주실 상이 크다고 말씀하시면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우리는 세상에 전해야 하는데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전하는 것의 절정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리하면 상이 클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가장 먼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7절을 보면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예수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니지요. 나한테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도 사랑하기 힘든데 원수를 사랑하라니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유머 중에 남편에게 늘 툴툴 대는 여자 집사님이 부흥회를 다녀와서 남편에게 극진한 대접을 해서 남편이 당신 부흥회 가서 은혜 많이 받았나봐 그랬더니 여자 집사님이 어제 부흥강사 목사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해서 지금 그 말씀을 실천하는 중이라고 대답했다고 하지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한다면 우리가 미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원수를 사랑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천국과 같을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대한다는 말은 “선을 행하라”, “잘해주라” 그런 의미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잘해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미워하는 사람을 선대하라고 말씀하시면서 32-33절에
6: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6: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너를 선대하는 사람에게 선대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심지어 죄인들도 그렇게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그런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만 잘해주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나를 선대 하는 사람만 선대 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도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또한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8절을 보면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저주한다는 것은 단순히 나쁘게 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행위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원래 저주라는 단어는 소원과 간구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주한다는 것은 나쁜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을 포함해서 종교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행위까지 하면서 저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가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들을 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축복한다는 것은 복을 빌어준다는 말입니다. 그 사람은 나를 저주할지라도 나는 그 사람을 위해서 복을 빌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정신입니다. 우리는 나를 저주하고 비난하는 사람을 축복해야 합니다. 즉 그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임하기를 기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8절을 다시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모욕하는 자란 말은 악의적으로 대하다. 학대하다. 해를 끼치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말로 모욕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학대하고 악의적으로 대하고 해를 끼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 친한 사람, 가까운 가족, 믿음의 동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뿐만 아니라 나에게 악하게 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해를 끼치고 학대하는 사람, 억울하게 하는 사람, 악의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무리들을 바라보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고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모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2. 베풀어라
예수님께서 그리하면 상이 클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고, 그리고 계속해서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와 성도가 인색하게 하지 말라고 베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베풀어야 하는데
 
구하는 자에게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0절을 보면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구하는 자란 말은 무엇인가 필요해서 도와달라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면 외면하지 말고 네가 줄 수 있는대로 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하는 자에게 주라는 말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말고, 너에게 있는 것을 주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전제된 것은 나에게 없는 것을 주라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누군가 와서 필요하다고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라는 말씀입니다. 없는 대도 만들어서 주라는 것은 아닙니다.
 
34절을 보면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그리고 35절 중간 부분을 보면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즉 어떤 대가도 바라지 말고 있는 것을 꾸어 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네 것을 누가 가져갔다면 그것을 돌려달라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누군가 너무나 필요해서 내 것을 가져갔다면 그것을 되찾으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내 물건을 되찾는 과정에서 물질의 손실이나 이해타산에 급급한 나머지 정작 소중한 영혼에 타격을 입히지 않을까를 우려하시며, 더 적극적으로는 궁핍한 처지에 있는 자들을 헌신적으로 구제하라는 뜻으로 이 말씀들을 반복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질적 가치보다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의 생명보다 물질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질보다 사람이 중요하고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어떤 사람이 내 것을 가져감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을 되찾으려고 하지 말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비로운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6절을 보면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성도의 신분과 위치가 고귀함을 암시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시며 그러한 교제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성도들에게도 나누어 주사 성도들로 하여금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같이 너희도 자비를 베푸는 자가 됨으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를 베풀어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고 말씀하시면서 다시 강조하신 것은 주라는 것입니다. 38절을 보면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여기서 주라고 하신 것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 그들에게 공급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라는 뜻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먼저 베푸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요일 3: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3. 받을 상
그리하면 즉 사랑하고 베풀면 상이 클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그리하면 즉 사랑하고 베풀면 받게 될 상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받게 될 상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됩니다. 35절을 다시 보면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는 하나님을 말씀하신 것으로 우리가 그리하면 즉 원수를 사랑하고 베풀며 살아가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갈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약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고 선포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데 믿음은 행함으로 증명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되며, 또한 그리하면 즉 원수를 사랑하고 베풀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마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증명할 수 있고 행함으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같이 자비를 베풀고 진정으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축복하고 기도해 주고 나누고 베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받을 상은 비판과 정죄를 받지 않고 용서를 받습니다. 37절을 보면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끊임없이 판단하고 비판을 하고 정죄를 하면서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할 만큼 하나님 앞에서 죄가 없는 신실한 사람들일까요? 근래에 정치권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남을 비판하고 정죄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판과 정죄는 앞에서 말한 원수를 사랑하고 베푸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선대하고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모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비판하고 정죄하지 않고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도 비판을 받고, 정죄를 당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고백할 때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사함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비판하지 않으면 비판을 받지 않고, 정죄하지 않으면 정죄 받지 않고, 용서하면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비판과 정죄가 없고 용서를 받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받는 상입니다.
 
마지막으로 후히 되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십니다. 38절을 보면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후히 되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트론 칼론’은 ‘분량’, ‘척도’(메트론)라는 말과 ‘좋은’(칼로스)이라는 말의 합성어로서 ‘좋은 분량으로 주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의 의미는 줄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준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굵은 콩 사이로 작은 조나 깨를 섞듯이 조금도 빈틈없이 누르고 흔들어서 채울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채워서 준다고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하면 즉 원수를 사랑하고 진정으로 베풀고 나누어 주면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는데 후히 되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십니다. 즉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얼기설기 된 것이 아니라 빈틈이 없이 꼼꼼하게 채워진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모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어려움 당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베풀어 주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거절하지 않고 진심으로 나누고 베풀며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고 비판과 정죄를 받지 않고 용서를 받습니다.
 
그리고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우리에게 안겨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실천함으로 큰 상과 큰 복을 받는 참빛 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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