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참빛교회 / 2022.02.18 2022.02.18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2월 13일)예레미야 17:5-11(구약 1077) 오미크론 변이로 인해서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중증 환자는 많지 않고 증세도 경미 하기 때문에 계절 독감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정부고 전환을 위해서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더 이상 피해 없이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어 가기를 계속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설 명절이 지났고 정월 대보름이 15일인데 전통적으로 대보름까지는 세배를 드리고 설날 인사를 했습니다. 정월 대보름까지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설날 인사를 다 했는데 오늘은 성경적으로 우리가 서로에게 주어야 할 인사말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 사람은 복이 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개역개정에서는 그 사람이라고 번역을 했지만 원래의 의미는 그냥 “사람” 이란 의미입니다. 여기서 그라는 단어는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이란 표현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빛교회 모든 가족이 복 있는 사람이라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나라의 고유 명절의 개념으로 아직 새해로 생각하고 올 한해 그리고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이 복 있는 사람, 예레미야 선지자께서 하신 말씀대로 “그 사람은 복을 것이라” 즉 복 있는 그 사람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그 사람은 복을 것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복 받을 사람과 저주 받을 사람복 받기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주 받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복 받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이 신을 찾는 이유도 복을 받고 싶기 때문에 신을 찾는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에는 없던 논쟁이 한참입니다. 어떤 후보는 무속 즉 점쟁이에게 빠져 있는데 무속신앙을 추종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세울 수 있느냐? 하는 논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후보 본인은 자신은 무속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면서 여러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립니다. 또 한 후보 쪽에서는 자신은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면서 여러 교회에 가서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시어머니 기일에 제사상을 차리기 위한 장을 비서에게 보게했다해서 논란이 되고 있기도 합니다. 무속을 추종하는 것도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절에 가서 108배를 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복을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니까 그런 것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분명하게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복을 받는 것이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복 받는 삶을 사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참 복을 받는 비결은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진정한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께서 어떤 사람이 복을 받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저주를 받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먼저 저주받을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1-4절까지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의 죄에 대해서 언급을 했습니다. 유다가 왜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주실 복을 받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저주받는 자들의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저주받는 인생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주를 받는가하면 사람을 믿고, 육신으로 힘을 삼는 사람입니다. 어리석게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늘 누군가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가장 먼저 힘 있는 사람을 찾게 됩니다. 법률적인 문제가 생기면 변호사를 찾거나 혹시 주변에 경찰 고위직이나 검찰이나 변호사 같은 법조계의 인맥은 없나 찾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법률적인 문제를 잘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찾게 됩니다. 사업을 하면서 문제가 생기게 되면 관련 공무원을 만나거나 돈이 많은 사람을 찾거나 하게 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아버님이 사업을 하다 망하게 되었을 때 소위 전주라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가 평소에 먹지 못하는 것을 준비해서 가져가기도 하고 좋은 선물을 사서 가져가기도 하곤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애굽이나 바벨론이나 앗수르와 같인 힘이 있는 나라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에 대해서 지적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믿고, 육신으로 힘을 삼는 사람 즉 사람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고 그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저주를 받게 되는데 왜냐하면 사람을 의지하기 때문에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저주 받는 사람은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의 힘과 권력과 돈을 의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마음에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 대한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기 때문에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잘 되고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이 같지만 마지막 결과를 보면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반면에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이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7절을 보면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마음에 하나님을 떠나서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힘을 삼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시고 반대로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의지하며 의뢰하는 이란 단어는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뢰한다는 말은 ‘믿고 의지한다.’ 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의지하며와 의뢰하며는 같은 의미로 해석을 하는데 조금 세밀하게 찾아보면 의지하며라는 단어에는 신뢰와 확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온전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확신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의뢰한다는 단어는 ‘의지하다.’ 는 말과 함께 ‘안심하다, 염려 없다’는 의미를 강하게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안심할 수 있고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고 의지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고 확신하면서 아무 염려없이 평안을 누리며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고 확신하면서 아무 염려없이 평안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당연히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확신하고, 염려하지 말고, 마음에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이렇게 살면 복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저주받을 사람과 복 받을 사람에 대해서 중요한 핵심을 이야기한 다음에 저주받은 삶의 모습과 복 받은 사람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2. 저주받는 자의 삶마음에 하나님에게서 떠나 사람을 믿고 육신으로 힘을 삼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저주 받은 자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주 받는 자의 삶은 사막의 떨기나무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절을 보면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그런 인간은 사람도 살 수 없이 외롭고 거친 땅, 돌덩이만 쌓여 있는 광야와 모래 바람만 휘몰아치는 광야에서 볼품도 없이 가시덩굴만 내뻗치는 한그루의 관목과 같다. 그는 언제까지나 좋은 일을 보지 못하고 행운을 얻지 못할 것이다.” 저주 받은 인생의 삶은 외롭고 거친 광야에 홀로 살아가는 것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혼자서 외롭게 살아가는 것이 힘든 존재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계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면서 행복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광야에 혼자 살아가는 것 같은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친구도 없고 같이 말을 해 주는 사람도 없고 외롭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게 됩니다. 혼자 살아가는 것도 힘들지만 더 힘든 것은 광야는 건조하고 물이 없어서 식물을 키울 수도 없고 목축도 할 수 없는 즉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살기는 하지만 혼자서 외롭게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고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볼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러도 좋은 일이 없이 절망 가운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저주받은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저주받은 인생은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9-11절을 보면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17:11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마음에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심장을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그들에게 보응하시는데 그들의 삶은 자고새가 낳지 않은 알을 품음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고새 어미가 남의 알을 훔쳐와서 부화시켜서 키웠지만 새끼가 자란 뒤에 둥지를 떠나 버림으로써 그 동안의 모든 노력이 헛된 것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을 떠나서 사람을 의지하고 세상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노력이 남의 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온 힘을 다해 노력해도 그것이 모두가 자기를 떠나가 버리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모든 노력이 하나도 남지 않기 때문에 노년에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삶을 살았는지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주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노력한 것을 자기 것이 아닌 남의 것이 되게 만든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은 모든 것이 헛 되고, 헛 되고 어리석다는 것을 늦게 깨닫게 되고 그것이 저주라는 것입니다.전 6:2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3. 그 사람이 받는 복저주 받을 사람과 복 받을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저주받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한 예레미야 선지자는 복 받을 그 사람이 어떤 복을 받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받을 복은 물가에 심기어진 나무 같은 복을 받습니다. 8절을 보면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중동지역은 비가 자주 내리지 않는 건조한 땅입니다. 나무를 심어도 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막과 같은 중동지역에서 강이 흐르는 지역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요단강이 흐르는데 요단강은 갈릴리 호수에서부터 흘러내립니다. 요단강 주변에 나무들이 있는데 강 주변에 있는 나무들은 더위가 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라 더워도 강에서 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물가에 심겨진 나무들은 강으로부터 물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강한 더위가 온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의 삶은 물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말씀의 생수와 성령의 생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 한 구절의 말씀이라도 묵상하고 살아간다면 그리고 시간을 내서 매일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그 말씀들은 우리에게 흐르는 시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강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생수를 공급받아 살아가기 때문에 아무리 더운 시련이 온다고 할지라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생수가 우리의 심령에 넘쳐나게 될 때 무더운 여름과 같은 시련이 온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물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이 어떤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 사람이 받을 복입니다. 물가에 심겨진 나무는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습니다. 가물어 메마른 땅이 될지라도 물가에 심겨진 나누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강에서 계속해서 물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받을 복은 어떤 상황에서도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시고 때를 따라 공급해 주시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우리의 걱정과 염려는 다 주님께 맡기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위로를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물가의 심겨진 나무는 결실이 그치지 않습니다. 시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충분한 햇빛과 수분이 필요합니다. 중동지역은 햇볕은 넘쳐나는 곳인데 물가에 심겨진 나무는 물도 충분히 공급받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됩니다.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것을 시편은 모든 것이 형통하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그 사람이 받을 복은 모든 것이 형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는 복을 누리는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시편 1:1-3절까지 우리 같이 합독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