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와 예수님의 변화산(2월 27일)
출애굽기 34:29-35(구약 136)
누가복음 9:28-36(신약 107)
 
벌써 2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지난 한 주간에는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있었습니다. 겨울이 물러가지 않으려고 하지만 결국은 봄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르는데 유치원과 어린이집 아이들도 감염이 되고 그로 인해서 교사들도 감염이 되는 상황입니다.
 
확진을 받고 격리하는 분들의 증세가 그렇게 심하지 않아서 그마다 다행인 것 같습니다. 증세가 심하지 않다고 해도 항상 조심하고 조심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목사님 부친께서 소천하셔서 장례식장엘 가는데 병원을 거쳐서 장례식장으로 가게 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병원 입구에서 QR체크 하고 아니면 기록하게 하고 발열을 체크하는 일을 위해서 젊은 직원들이 방호복을 입고 근무하고 있는데 나이 많아 보이는 어른이 젊은 직원에게 큰 소리를 욕을 하면서 난리를 쳤습니다.
 
상황을 들어보니 자동 발열 체크기에서 37.5도가 넘게 나와서 다시 체온 측정을 하려고 했더니 입구에서 했는데 왜 또 하느냐고 화를 내면서 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직원은 난감해하고 뒤에 들어가는 다른 분들이 젊은 직원을 위로하는 광경을 보면서 지금 상황에서 저러면 안 되는데 아무리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고 해도 지킬껀 지키고 조심할 껀 조심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게 되든지 코로나 지침에 따라서 요구하는 직원들의 요구를 잘 따라야 합니다. 우리 참빛 가족들은 어디를 가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주 수요일은 재의 수요일이라고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이번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사순절 기간에 해마다 하는 것처럼 신약 일독하기 하겠습니다. 일 년 성경 일독과 사순설 신약 일독을 같이 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가능하면 참빛 모든 성도들이 사순절 일독하기도 일 년 일독하기도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셔서 변화되심을 기념하는 주님 산상 변모 주일입니다. 주님 산상 변모 주일을 맞이해서 오늘은 출애굽기의 말씀과 누가복음의 말씀을 같이 살펴보려고 합니다.
 
구약에서의 변화산 사건은 모세에게 있었던 사건이고,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산에서 변화되셨습니다. 2022년 주님 산상 변모 주일에는 모세의 변화산과 예수님의 변화산 이야기를 통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두 본문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모세의 변화산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 만큼 중요한 사건은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서 내려올 때 얼굴에 광채가 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모세의 변화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모세의 변화산 사건과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변화산 사건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모세가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출애굽기 34:28절을 보면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일 금식을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십계명을 들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산에 올라간지 40일 되는데 내려오지 않자 산 아래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서 경배하자고 요구했습니다.
 
아론은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금을 모아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고 공포를 하고 축제를 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산 아래에서 일어난 일을 아시고 모세를 급히 내려가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새겨주신 십계명 돌판을 들고 내려왔으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면 축제를 하는 것을 보고 돌판을 던져 우상을 깨뜨렸습니다. 모세는 누구든지 하나님 편에 선 자는 내게로 오라고 하고 우상 숭배를 주도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진정시키고 다시 산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처음 십계명을 새겨서 준 돌판과 같은 판을 만들어 가지고 올라오라고 하셨고 모세는 다시 산에 올라가서 40일간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난 것입니다. 모세는 거의 80일 동안 하나님의 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하나님 안에 거할 때 모세의 변화산 사건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임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어둠이고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영광의 빛을 받아서 어둠의 세상을 비출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28절을 다시 보면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32절을 보면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령하고”
 
모세가 첫 40일을 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할 때 하나님께서 율법과 성막과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40일간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40일 기간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시면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모세에게 광채가 났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말씀은 등불이 되어 우리의 길을 비추고 말씀은 우리를 어둠에서 빛을 비추게 합니다. 성도는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빛을 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시내 산에서 내려오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빛이 임했습니다. 29절을 보면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모세가 하나님과 함께 80일 지내면서 말씀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빛이시고 모세는 그 빛을 받아서 세상에 비추는 빛의 모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빛이 아닙니다. 그러나 빛 가운데 거하는 성도들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올 때 광채가 난 것처럼 하나님 앞에 모여 예배드리고 세상을 향해 나갈 때 우리에게 영적인 빛이 나게 되는데 우리는 그 빛을 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의 얼굴에서 나오는 광채로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우리는 얼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빛을 세상에 나타내야 합니다.
 
2. 예수님의 변화산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께서 시내산에서 영광의 빛을 가지고 내려온 변화산의 이야기를 기록했다면 공관복음은 모두 예수님께서 산에서 변화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셔서 변화되신 사건을 기록한 변화산 이야기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셨습니다. 눅 9:28절을 보면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신 이유를 기도하시러 가신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마태와 마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셨다고 기록한 반면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세 제자를 데리고 기도하러 가셨다고 기록했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예수님께서 산에 가실 때에는 늘 기도하셨기 때문에 기도하러 가셨다는 말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되셨습니다. 29절을 보면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되셨습니다.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광채가 난 것처럼 예수님께서 변화되셔서 광채가 났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긴 시간 동안 함께 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광채가 났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기도하시는 순간 광채가 났습니다.
 
우리가 이런 변화를 경험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기도는 내 이야기를 하나님께 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또한 찬양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고 우리의 내면과 삶이 영광의 광채로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변화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께서 죽으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30-31절을 보면
9: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9: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광채가 났습니다. 그리고 영광중에 예수님과 함께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게 되는데 모세와 엘리야라고 기록을 했습니다. 모세는 구약 율법의 대표자이며 엘리야는 구약 선지자의 대표이자 예언의 대표자입니다.
 
또한 모세는 과거에 시내 산에서(출 31:18) 엘리야는 호렙산에서(왕상 19:8) 각각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었습니다. 모세는 장차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메시아를 예언하였고(신 18:15), 엘리야는 메시아의 선구자로 예언되었습니다(말 4:5).
 
엘리야는 죽지 않고 승천했고(왕하 2:11), 모세도 특이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신 34:6). 이들이 변화산에 나타나 예수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율법과 예언으로 말해지던 구약이 예수님에 의해 복음으로 완성되었으며 결국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은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를 하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머지않아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실 것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마치시고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실 것에 대해서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변화되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변화되신 것인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고 선포한 것이고 죽으시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변화되신 모습은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습니다. 29절을 다시 보면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용모가 변화되고’는 문자적으로 ‘그 얼굴의 모습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마태는(마 17:2) 예수님의 얼굴은 해같이 빛났다고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하늘에서의 신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해’는 하나님이나 천사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누가는 ‘변형되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메테모르포데’라는 헬라어는 헬라적 사고방식에서 신들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표현이기 때문에 그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옷이 희어졌다고 했는데, 흰색은 하늘의 색깔, 천사들이 입는 옷의 색깔이며 평화와 순결과 사랑을 상징하는 색깔입니다. 이것 역시 예수님의 하늘나라의 신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가는 ‘광채가 나더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몸에서 발산되어 나오는 빛의 광채를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이와 같이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변모는
(1)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것 즉 그가 진정한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증해 주며
(2)장차 수난을 받는다 하더라도 다시 영광을 회복하리라는 점을 암시하며 또한
(3)천국에서 영광 중에 계실 예수님의 모습과 다시 재림하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간접적이나마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모하신 것은 앞으로 우리들이 부활을 하게 될 때 지금과는 다른 부활체로 변화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육신은 늙어가고 병들어가는 약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우리는 부활의 몸으로 영원히 병들지 않고 늙지도 않고 약해지지도 않는 몸으로 새로워질 것입니다.
 
모세와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은 공통적인 요소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두 사건에서 중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3. 다시 세상으로 내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셨고 예수님을 기도하러 변화산으로 가셧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계속 머물지 않고 내려왔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면
 
변화산은 머무는 곳이 아닙니다. 33절을 보면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 중에 예수님과 대화를 하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이야기 한 다음에 두 사람은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베드로는 그 놀라운 광경에 앞에 정신이 몽롱해졌습니다.
 
정신이 몽롱하고 황홀한 상황에서 베드로는 여기에 초막 셋을 짓는데 하나는 예수님을 위해서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짓겠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초막을 짓겠다고 하는 것은 초막을 짓고 거기 머물고 싶다는 말입니다.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즉 여기를 떠나지 말고 여기에서 계속 놀라운 광경을 경험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만난 그 놀라운 산에 계속 머물면서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40일을 두 번 금식을 했는데도 은혜가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 개인적으로 떠나고 싶지 않은 자리였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도 그곳에 머물고 싶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은혜를 받는 곳은 우리가 머물고 사는 곳이 아닙니다.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해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은혜를 받은 그 자리에 초막을 짓고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변화산에서 세상으로 내려왔습니다. 37절을 보면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예수님은 그곳에 초막 셋을 짓고 머물자고 한 베드로의 말에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내려오셨습니다.
 
모세도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80일간의 함께 하면서 놀라운 경험을 했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세상으로 내려보내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고 그 다음에는 세상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가서 하나님의 자녀로 자녀답게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은혜의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하면서 가정을 떠나서 집단생활을 하라고 잘못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쳐주시고 네 자리를 들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시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 5: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은혜 받은 성도는 집으로 돌아가서 은혜를 전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은혜 받은 성도는 영원히 은혜 받은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즉 직장으로 사업체로 학교로 삶의 자리로 가서 받은 은혜를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런 존재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또한 우리는 변화산의 예수님처럼 마지막 때 부활체를 입을 것입니다.
 
은혜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덧입은 우리는 세상으로 가서 즉 가정과 직장과 사업체와 학교와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편지요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가 끝날 때 우리는 모두 세상으로 파송을 받은 일터 선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참빛 가족 여러분 예배드릴 때마다 영광의 주님을 만나고 영적 변화를 경험하고 그리고 그 은혜를 가지고 세상으로 가서 영광의 빛을 전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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