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즐거워하자(1월 23일)
고린도 전서 12:12-31(신약 278)
 
금년 1월 5일은 소한이었고, 지난 20일은 대한이었습니다. 소한과 대한에 얽힌 속담 얽힌 속담 중에서는 ‘대한이 소한 집에 와서 얼어 죽는다.’ 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사전적 의미와는 달리 절기의 유래가 중국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정해졌기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 라는 말도 전해지는데요, 이는 반드시 소한 추위는 겪는다는 의미로 항간에는 일이 뜻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 밖에도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 ‘소한이 대한 집에 몸을 녹이러 간다.’,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지만 대한에 얼어 죽는 사람은 없다.’ 등 대부분 소한이 더 춥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어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24절기는 우리나라 기온에 맞춘 것이 아니라 중국에 맞춘 것이라 우리나라와 맞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대한이 지나고 나면 입춘이 옵니다. 금년 입춘 2월 4일이네요.
 
많이 추운거 같지만 곧 이 추위가 끝나고 따스한 봄이 올 것입니다. 계절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계절이 변하는 것입니다. 금 년 봄은 추위만 물러가지 말고 추위가 떠나가면서 코로나 19도 데리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말씀은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교회는 하나 된 공동체이기 때문에 교회 구성원은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기뻐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은 하나지만 우리 몸을 구성하는 지체들은 많이 있습니다. 많은 지체들이 모여서 하나의 몸을 이루듯이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몸이 되시고 모든 성도들은 교회의 지체들로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함께 즐거워하는 공동체를 이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함께 즐거워하자”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함께 즐거워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인 우리들은 몸의 지체들이고 우리가 받은 각자의 은사와 직분은 지체로서 교회를 건강하고 굳게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각자의 달란트에 따라서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함께 즐거워하는 교회 공동체를 세워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의 몸을 통해서 교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해 주셨습니다. 교회는 우리의 몸과 같기 때문에 우리 몸에 대해서 이해를 하면 교회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하시는데 우리의 몸은 하나이지만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지체들은 많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지체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몸을 이루듯이 교회도 많은 지체인 성도들이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라고 말씀하신 의미는
 
우리는 한 성령으로 한 몸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2-13절을 보면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많은 지체들은 태어날 때부터 한 몸에 붙어 있던 존재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손과 발과 몸의 모든 지체들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몸을 위해서 서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손과 발과 같은 지체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교회를 이루게 됩니다. 원래부터 하나가 아니었던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몸인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살아온 문화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과 추구하는 것도 다릅니다. 태어난 지역과 성장한 배경도 다릅니다. 모든 것이 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한 몸인 교회를 이루게 되는데 우리가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지체들인데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므로 한 몸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기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고 나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지체로서 하나의 교회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님께서 강림하시기 전에 제자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은 서로 하나가 되기에는 많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그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령으로 세례를 받기 위해서 모여서 한마음이 되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에게 놀라운 일어 벌어진 것입니다. 전혀 다른 사람들이 성령을 받으므로 한 몸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우리가 같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같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는 지체로서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엡4:3-4절을 보면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몸의 지체는 서로의 역할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4-17절까지를 보면
12: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2: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2: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2: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한 몸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 각 지체들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우리 몸의 지체들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몸 안에 여러 지체들이 있는데 지체들은 각기 하는 일과 역할이 다릅니다.
 
발과 손은 하는 일이 다른데 발이 나는 손이 아니기 때문에 몸에 붙어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발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몸에 붙어서 손이 아닌 발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귀도 나는 눈처럼 보는 일을 하는 지체가 아니니까 몸에서 떨어져 나가겠다고 해서 떨어져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몸에 귀가 없으면 들을 수 없기 때문에 귀는 몸에 붙어서 듣는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지체들이 다 같은 일만 한다면 우리 몸이 온전하게 유지될 수 없습니다. 손은 손의 역할을 해야 하고 발은 발의 역할을 해야 하고 눈은 눈의 역할을 하고 귀는 귀의 역할을 하고 입은 입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각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할 때 건강한 몸이 되고 몸이 하고자 하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 지체가 특별히 더 큰 역할을 하고 어는 지체는 별로 안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체의 역할이 중요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지체는 다 필요하기 때문에 서로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8-21절을 보면
12: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2: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12: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12: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우리의 지체들이 서로 협력해서 한 몸을 이루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몸에 한 지체만 있다면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몸을 이루는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이고 많은 지체는 서로 합력해서 하나의 몸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지체를 무시하거나 필요 없다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눈이 손에게 내가 모든 것을 보기 때문에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어 그러니 손은 필요가 없다고 한다거나 머리가 나는 내가 모든 것을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대로 할 수 있으니까 발에게 너는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손은 손으로서 역할이 있고 발은 발로서 역할이 있고 눈은 눈으로 역할이 있고 그 중에 하나라도 없을 때 몸이 온전하게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지체에게 너는 필요없다고 말할 수 없고 오히려 서로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지체들에게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에 필요 없는 지체는 없습니다. 없어도 되는 지체도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지체로 교회를 세워가고 교회를 위해 필요한 지체이고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2. 서로 같이 돌보아야 한다.
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함으로 몸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지체도 필요 없는 지체가 없기 때문에 서로를 소중하게 여겨야 하고 또한 지체는 서로 돌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지체들이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돌볼 때 몸이 건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셨습니다. 22-24절을 보면
12: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12: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12: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우리 몸에 있는 지체들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하게 되는데 어떤 지체는 약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약해 보이는 지체가 오히려 더 요긴한 지체이고 덜 귀하다고 생각하는 지체들도 사실은 그것으로 인해서 귀한 것을 입혀 주고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사람들이 생각할 때 덜 중요하고 덜 귀한 지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지체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고 모든 지체가 다 아름다운 지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지체는 힘든 일만 하는 지체인 것 같고 어떤 지체는 고상한 일만 하는 것 같고 어떤 지체는 몸의 주인이 더 좋은 것으로 꾸며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귀하고 더 아름다운 지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감당할 때 귀하지 않거나 아름답지 못한 역할은 없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성도는 더 귀하고 어떤 성도는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어떤 직분은 중요하고 어떤 직분은 별로 덜 중요하고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직분은 그리고 모든 성도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체이고 귀하고 아름다운 지체들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차별이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든 지체가 다 동일하고 하나님께서 몸의 모든 지체를 고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몸과 교회의 지체들을 고르게 하셨습니다.
 
서로 분쟁이 없고 서로 돌보게 하셨습니다. 25절을 보면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우리 몸의 지체들이 서로 시기하면서 자기 역할이 아닌 다른 역할을 하고 싶어하거나 서로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독단적으로 움직인다면 그 사람은 장애를 입게 됩니다.
 
서로 다른 역할을 인정하고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몸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지체들 간에 분쟁이 없어야 합니다. 지체들 간에 분쟁이 생긴다면 그 몸은 망가지게 됩니다.
 
교회도 교회를 구성하는 지체들 간에 서로 분쟁을 하게 되면 무너지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면서 서로를 돌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서로를 돌보는 돌봄 공동체로 굳건하게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빌 2: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한 몸인 교회를 이루고 교회를 세워가는 공동체로서 서로를 돌아보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함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굳건하게 지켜가야 합니다.
 
3. 함께 즐거워하라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 서로 돌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교회를 이루고 있는 모든 지체들은 함께 즐거워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은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6절을 보면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우리 몸의 어느 지체가 아프면 그 지체만 아픈 것이 아니라 온몸이 아픔을 느낍니다. 손에 작은 가시가 찔리면 손만 아픔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온몸이 아픔과 불편함을 느낍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어느 한 지체가 아프면 모든 지체들이 같은 아픔을 느끼고 어느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들이 같이 고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지체는 힘들어 하는데 다른 지체들은 즐거워한다면 몸의 지체로서 온전하게 세워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픔을 같이 느끼고 고통을 같이 느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즐거움도 함께 느껴야 합니다. 어느 한 지체에게 좋은 일이 있고 즐거워할 일이 있으면 우리는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런 습성이 교회 안에서 적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 성도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내가 좋은 일이 있는 것처럼 좋아할 수 있어야 하고 누군가 고통스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함께 마음으로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나와 네가 아니라 우리입니다.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는 하나 된 교회였고 서로 하나 된 마음으로 서로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고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참빛 교회는 서로의 아픔을 중보기도로 함께 하는 공동체이고 좋은 일을 함께 좋아하고 기뻐하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슬픔과 아픔은 나누면 작아지고 기쁨과 즐거움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합니다. 서로 기도하고 서로 기뻐하면서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믿음의 공동체임을 믿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서로 다른 지체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27-30절까지를 보면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12: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12: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우리 몸의 지체에 대해서 설명한 바울 사도는 이제 교회 안에서 우리가 서로 다른 지체로 서로 다른 직분과 은사를 받았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우리는 서로 다른 지체로 서로 다른 은사와 직분을 받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몸을 세우기 위해서 주신 은사와 직분이라는 것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은사와 직분을 받았기 때문에 나와 다른 은사와 직분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하고,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와 직분을 부러워하지 말고, 내게 주신 은사와 직분은 나에게 맞게 주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은사와 직분을 인정하고 서로 귀하게 여기서 우리가 조화를 이루어서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31절을 보면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더욱 큰 은사’ 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 카리스마타 타 메이조나’은 ‘더욱 탁월한 은사’ 라는 의미로 이는 은사들이 서로 상대적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은사들이 교회에 필수적인 요소들이라고 언급한 것과 약간의 모순이 있는 듯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기준을 가지고 더 큰 은사를 규정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수정해 주려고 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특별히 방언 은사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울은 더 좋은 은사라는 표현을 통해서 개인이 아닌 교회 전체에 유익을 주기에 제일 효율적이고 광범위한 힘을 지닌 은사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교회의 지체는 교회를 유익하게 하고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을 위해서 더 큰 은사를 사모하고 더 좋은 길을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더 큰 은사와 더 좋은 길을 13장에서 언급한 사랑으로 많이 해석을 합니다. 우리가 함께 즐거워하기 위해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해서 기도하고 서로를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참빛 교회는 함께 눈물로 기도하고, 함께 즐거워하면서 서로를 돌아보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기도와 사랑으로 참빛교회를 튼튼하게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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