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12월 26일 주일 오전예배 설교)
누가복음 2:41-52(신약 91)
 
벌써 12월 마지막 주일이네요. 해마다 한 해의 끝이 되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세월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고 말하곤 합니다. 뭘 했는지 모르겠는데 한 해가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 해의 끝이 되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일 년 내 거리두기 얘기만 하면서 지낸 것 같습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한 해 동안 있었던 이슈들을 돌아보면서 10대 뉴스 선정을 하곤 하는데 금 년에 10대 뉴스 하면 기억에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한 해가 끝나갈 때 즈음에 마음에 좋은 기억들이 많이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금 년에는 좋은 기억들이 많지 않았다면 2022년에는 마음에 좋은 기억들이 많이 남아서 한 해를 마무리할 때 참 행복한 한 해였다고 고백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말씀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는 마태,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이야기는 사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 중에 어린 시절에 관련된 내용은 오늘 본문이 유일한 기록입니다. 유아시절부터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까지의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상황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이 유일합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결론적으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고 기록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예루살렘에 올라간 어린 예수님
누가는 예수님께서 12살이 되었을 때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을 기록하면서 누가는
 
요셉과 마리아는 해마다 유월절을 지켰다고 기록했습니다. 41절을 보면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님 육신의 부모님은 율법을 성실히 이행하는 경건한 유대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시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 의식은 온갖 위선과 타락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구약적 차원에서 지켜야 할 율법 의식들은 여전히 중요한 구속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경건한 유대인들은 정해진 의식에 맞춰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는 것은 마땅히 행해야 할 본분으로 여겼습니다.
 
율법에는 유대 성인 남자들이 연례행사로서 삼대 주요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장막절)을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지키도록 명시되어 있습니다. 신 16: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그러나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 많은 유대인들이 각처로 흩어지게 되어 3대 절기에 매년 모두 참석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경건한 유대인들은 적어도 유월절 행사에만은 꼭 참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한편 모세의 율법에는 이 행사에 남자들만 참석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나 유대 랍비 힐렐은 여자들도 축제에 참석하도록 권고하여 그렇게 지켜졌습니다. 여기서 어린 예수님께서 자란 가정의 신앙적 배경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영적 및 인격적 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며 어려서부터 의롭고 경건한 삶에 훈련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경건한 유대인의 전통을 지키는 신실한 사람들이었고 베들레헴에서 아이가 태어날 때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의 방문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양육함에 있어서 철저하게 신앙적으로 양육하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누가는 요셉과 마리아가 해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기록함으로 요셉과 마리아가 어린 예수님을 믿음으로 키우면서 자신들이 먼저 율법을 지키고 유대인의 신앙적인 전통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교육 방법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후손들에게 신앙교육을 시키려면 본인이 철저하게 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신은 신앙적으로 살지 않으면서 자녀들에게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면 자녀들은 속으로 부모님들도 잘 못지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지킬 수 있어 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나 손주손녀들이 믿음 안에서 잘 되고 하늘의 복을 받기원한다면 부모님들이 먼저 자녀들에게 신앙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어린 예수님과 자녀들에게 신앙의 본이 되기 위해서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절기를 지키고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열두 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42절을 보면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유대인에게 있어서 12살은 중요한 나이였습니다.
 
12살이 되면 유대인 남자들은 ‘바르 미츠바’ 즉 ‘율법의 아들’이라고 불렸으며 이때부터는 거룩한 절기나 예식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도 12살이 되었을 때 유대인들의 관례를 따라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공식적인 유월절 예배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자신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 해마다 올라갔고 예수님이 12살이 되었을 때 유대인들의 관례와 전통에 따라서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유월절 예배에 참여하게 한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공식적으로 첫 유월절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나사렛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할 때 천사에게 받은 계시와 탄생할 때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면서 어릴 때부터 신앙으로 양육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머무셨습니다. 43절을 보면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예수님은 그의 부모들보다 예루살렘에 더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당시 열 두 살의 나이는 결코 어리게만 간주되지 않았으므로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부모는 예수의 움직임을 일일이 살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부모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마 어중간한 나이였던 예수님은 여인들과 어린아이들의 행렬이나 남자 어른들과 제법 나이가 든 소년들의 행렬 중 어느 한 곳에 끼여 여행했을 것입니다.
 
이 행렬이 이처럼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면 요셉은 예수가 마리아와 함께 여행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고, 마리아는 예수가 요셉과 함께 여행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이 사건을 통하여 알아야 할 것은 예수의 평소의 행동이 매우 믿음직스러웠기 때문에 부모들이 그를 전적으로 신임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고 하루가 끝나갈 무렵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어린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유월절 축제가 끝났지만 여전히 성전을 떠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의 중요성과 성전에 머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2. 성전에서 만난 예수님
12살이 되셔서 공식적으로 유월절 예배에 참여하셨던 예수님은 유월절 축제가 끝나고 사람들이 각자 마을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부모님들과 동네 주민들과 함께 나사렛으로 가신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머무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님들은 예수님이 함께 내려가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나사렛으로 가던 중에 예수님이 안 계신 것을 알고 예수님을 찾게 되는데 예수님의 부모님들은 사흘 후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44-46절을 보면
2: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2: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2: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성전 절기 준수를 위해 성전으로 모이는 여행자 무리는 같은 마을 이웃들과 친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매일 저녁 때 이 무리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함께 모여 숙식을 함께 해결하면서 여행 일정 등을 논의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이 일행 중에 있을 줄로 알고 신경 쓰고 있지 않았으나 저녁 식사 때 혹은 잠자리에 들려 할 때 그가 없음을 알고 아는 사람들 속에서 그를 찾아 나섰을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큰 혼란과 걱정 속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날 때에는 예수님이 뒤에 남아 있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갈릴리에서 온 무리의 대열은 매우 컸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도시를 떠날 때에 큰 혼잡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은 가는 도중에 친구나 친지와 함께 여행하는 기쁨에 관심이 몰두 되어 밤이 되기까지 예수님이 없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어린 예수님이 무리 가운데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별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비록 어렸지만 그들은 그를 전적으로 신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큰 충격 속에서 아이 예수님을 찾아서 오던 길을 되돌아 가면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사흘 후에 예루살렘에서 만났습니다. 아이 부모님들은 속이 타 들어가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어린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론 요셉과 마리아처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것이 있다면 찾아야 합니다. 요한 계시록에서 첫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내 옆에 예수님이 함께 동행하고 계시는지 내가 너무 바빠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을 잊고 내 길을 내 맘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안 계시고 성령님이 안 계신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사흘 후에 어린 예수님을 성전에서 만났는데 놀랍게도 성전에서 선생들 중에 앉으셔서 문답을 하고 있었는데 어린 예수님께서 질문하는 것과 대답하시는 것을 듣고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46-37절을 보면
2: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2: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요셉과 마리아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았는데 놀랍게도 어린 예수님은 그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앉아서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12살이신 예수님께서 당시 유대인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들과 토론을 하는데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질문하시는 것과 대답하시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놀랍게 여기더라’(여시스탄토)는 미완료 중간태 직설법으로서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놀라움을 나타내며, 그 원형 ‘에크시스테미’는 거의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계속하여 반복해서 그 질문과 답변에 매우 놀라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어린 소년의 입에서 그토록 영특한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것인데 그 보다는 그 입에서 나온 지혜의 말씀을 듣고 놀라워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혜’ 에 해당하는 ‘쉬네세이’은 ‘이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이해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하나님의 지혜를 의미합니다. 공생애 사역중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은 놀랍게 여겼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아이 예수님의 말을 듣고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 예수님에게 우리가 근심하면서 너를 찾았다고 말하자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고 대답했습니다.
 
48-49절을 보면
2:48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2: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공식적으로 첫 유월절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떠나고 싶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지도자들과 토론을 했고 마리아가 너 때문에 우리가 근심하며 찾았다고 말할 때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 알지 못하셨습니까? 라고 대답함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독생자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모든 성도들이 있어야 할 곳이 아버지 집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시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라고 노래했습니다.
 
우리가 성전을 사모하는 열정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그 이유는 성전은 내 아버지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마음으로 주님의 전에 머무는 신앙으로 살아가고 아버지 집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은 첫 유월절 예배를 마치고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가셔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까지 요셉을 도와서 일하면서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자라시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순종하여 받드셨습니다. 51절을 보면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누가는 예수님의 신성에 관해서 언급하고 나서 한 가정의 자녀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은 이후 침례 요한으로부터 침례 받으실 때까지(3:21) 18년 동안 갈릴리 나사렛에서 그의 부모와 동생들과 함께 지내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아버지 요셉의 가업인 목수직을 이어 동생들을 보살피고 어머니 마리아를 봉양했습니다.
 
성경에 요셉에 관한 기록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추측컨대 이 18년 어간에 요셉이 죽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요셉이 죽자, 장남인 예수님이 그의 가족을 부양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을 입으셨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해야 할 마땅한 도리를 다하셨습니다. 특별히 순종하여 받드셨다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부모 공경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다른 사람들보다 부모님을 잘 섬기고 효를 실천해야 합니다. 진실한 믿음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엡6:1-3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6: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52절을 보면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라셨습니다.
 
이것은 자라면서 점점 더 지혜로워지셨다는 의미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 하늘의 지혜가 임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믿음 안에 살아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지혜가 충만해 지게 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자라면서 키가 자라듯 지혜가 자라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셨다고 기록했는데 이말은 사랑을 받았다는 말로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셨고 부모를 순종하여 받들고 가족을 부양함으로 가족들의 사랑을 받았고 이웃 주민들에게도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성도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성도로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사랑과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참빛 교회와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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