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생하신 하나님이 오셨다.(12월 25일 성탄절)
요한복음 1:1-18(신약 142)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들을 위해 세상에 오심을 기념하는 성탄절입니다.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일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날입니다.
 
작년과 금년에는 코로나로 인해서 서로 모여서 함께 즐거움을 나누지 못하고 조용한 가운데 성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면서 조용하게 지내라고 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성탄절이 되면 선물 받을 기대를 합니다. 지금 아이들은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예전에는 성탄절 전야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갖다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성탄절이 되면 성탄 장식을 하고 성탄 카드를 만들어서 서로 나누기도 했는데 요즘은 모든 것을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해결을 하니까 손으로 만들고 글씨를 쓰고 하던 때의 감성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성탄전야 행사를 하고 밤을 새우고 새벽 송을 돌던 추억들이 아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때론 아날로그 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년 성탄절에는 코로나가 해결되어서 모여서 성탄 행사가 즐거움으로 가득한 행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성탄이 우리에게 즐거운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되고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세상에 성탄의 기쁜 소식을 다양한 방법으로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부모님들을 더 생각하게 만듭니다. 어린아이들이 성탄절 행사를 할 때 엄마, 아빠를 교회로 초대해서 노래도 하고 연극도 하고 무용도 하면서 부모님들을 즐겁게 했었던 기억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면서 성탄절에 연세 드신 부모님들보다는 자녀들을 더 생각하게 되고 교회 행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성탄절은 멀리 계신 부모님들은 오히려 더 외로움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해마다 성탄절을 효도의 날로 정해서 가능하면 부모님을 찾아뵙고 함께 성탄 예배를 드리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는데 성탄절이 부모님들이 내 자식들을 교회에 빼앗겼다고 생각하시지 않고, 외롭게 보내지 않게 해 드리려고 효도의 날로 정한 것입니다.
 
오늘 성탄 예배에 유튜브로 참여해 주시는 모든 부모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이 주시는 장수의 복을 누리시고, 자녀들, 손수 손녀들 대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1년 성탄절을 맞이해서 함께 나눌 말씀은 요한 사도께서 기록한 말씀입니다. 요한 사도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독생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오늘 요한 사도께서 기록한 말씀을 중심으로 “독생하신 하나님이 오셨다.” 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요한 사도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1.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요한 사도께서는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삼위일체는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신 삼위이신데 삼위이신 하나님은 세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십니다.
 
요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하나님이시라고 소개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데
 
태초에 계셨습니다. 1-2절을 보면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에 잉태 되었고 그리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신 날을 기준으로 주전과 주후를 나누게 되는데 주후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후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오신 그날부터 존재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태초부터 즉 세상에 만들어지기 전부터 계셨습니다. 비록 사람의 몸으로 오시기는 했지만 예수님은 세상이 있기 전부터 계신 분이십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여기서 말씀이란 말은 창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매 만물이 창조되었고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신데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자를 살리시고 말씀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고 성경대로 이루어짐을 믿고 기도할 때 그리고 성경 말씀을 선포할 때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오늘도 성경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3절을 보면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태초부터 계셨을 뿐만 아니라 친히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고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즉 예수님께서 없이 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우리말은 하나님으로 되어 있는데 원어는 엘로힘입니다. 엘로힘은 강력한 힘들이란 의미로 단수가 아닌 복수이고 따라서 엘로힘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여기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라고 하신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는데 사람들은 창조주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시고 창조주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고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신데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를 구원하러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4절을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은 ‘생명’이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고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요한 사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이 영원한 생명(영생)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요 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영접하는 성도들에게는 영생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2.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요한 사도께서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고 소개한 다음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빛으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가장 먼저 창조하신 것이 빛입니다. 세상은 어둠에 쌓여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빛을 만드심으로 천지 창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요한 사도께서는 예수님은 이 세상은 천지를 창조하기 전과 같은 영적 어둠에 묻혀 있었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빛이시기에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9절을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빛은 크게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와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반사체가 있습니다. 태양은 발광체이고 달이나 별은 반사체입니다. 태양의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은 빛이신데 참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달과 같이 빛을 받아서 비추는 빛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빛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빛으로 영적인 어둠의 세상을 비추시는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시는 예수님께서 비춰주시는 빛은 생명의 빛이십니다. 침례 요한은 자신은 빛이 아니고 빛을 증언하러 온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6-7절까지를 보면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1: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그 시대 유대인들은 침례 요한을 빛으로 생각했는데 요한은 그 빛이 아니고 그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고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참 빛이시고 침례 요한은 그 빛을 반사하는 반사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참 빛 되신 예수님에게 생명의 빛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므로 생명의 빛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바울 사도는 살전 5: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참빛을 받아서 세상에 그 빛을 전하는 영적 반사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부터 받은 빛을 세상에 비추는 참 빛 가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어둠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5절을 보면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빛이 오셨지만 사람들은 빛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빛이 어둠에 비추어지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빛을 두려워하고 빛으로 나오지 않고 여전히 어둠에 머물러 있으려고 합니다. 어둠에 익숙해지면 빛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합니다.
 
세상은 어둠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강렬한 빛이 비추어서 모든 것을 완전하게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빛은 오셨지만 사람들은 어둠에 익숙해져 있고 어둠에 파묻혀 살기 때문에 빛을 알지 못하고 거부합니다.
 
그리고 그냥 어둠의 삶을 즐기고 어둠의 삶을 만족하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양심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빛으로 나오기보다 어둠에 머물러 있고 빛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은 빛을 거부합니다. 예수님은 어둠의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셨고 그 시대 유대인들은 참 빛을 몰랐고 또한 거부했습니다. 오늘날도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빛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빛을 비추어주고 어둠에서 헤매이는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3. 독생하신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요한 사도께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성부 하나님의 유일하신 독생자이라는 말씀입니다. 독생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에 오셨는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독생하신 하나님은 말씀이신데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요한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표현한 것은 그 당시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자들의 가현설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고 말한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의 가현설이란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신 것처럼 보였으나 육체로 오시지 않았으며 그의 수난도 실제 사건이 아니라 가상이었다.’ 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것에 대해서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말씀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가현 즉 가상으로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인간으로 오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시지만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가현이라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씻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심에도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십니다. 14절을 다시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 사도께서는 독생하신 예수님에게는 아버지의 영광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란 말은 하나님으로서 신성이 그 안에 거하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지만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충만하십니다.
 
또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시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은혜와 진리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성품인 은혜와 진리가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 충만하다고 증거 한 것입니다.
 
기독교적 측면에서 ‘은혜’ 라는 말은 하나님이 인류 구속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신 사랑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님 안에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의 성품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직 하나님 이외에는 진리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18절을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의 본성인 은혜와 진리로 교회를 세우시고 영혼을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의미를 ‘독생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 속에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와 같은 신앙은 당시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시 성도들 사이에 암호로 통용된 물고기 그림에서 당시의 신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헬라어로 ‘물고기’는 ΙΧΘΥΣ ‘잎뒤스’로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주’ Ίησοῦς Χριστός, Θεοῦ Υἱός, Σωτήρ(에에수스 크리스토스, 데우 휘오스, 소텔,)라는 말의 약자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굳건한 신앙 고백을 토대로 교회가 온갖 박해를 이기고 어두움 속에 빛을 비추었듯이, 오늘날의 물질 만능주의와 다양한 이데올로기의 와중에서도 교회가 설 수 있는 기반이 바로 ‘독생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거룩한 성탄절에 그리스도 안에 충만하신 은혜와 진리가 참 빛 가족들 위에 충만하게 임해서 세상 속에 참 빛을 전하고 세상 속에 희망을 전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2022년에는 성육신 하신 주님의 은혜로 평범한 일상이 회복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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