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사역(11월 24일 오후 찬양 예배 설교)
성 경 : 사도행전 9:32-43(신약 203)
9장의 앞부분에서는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서 핍박자가 전도자가 되었고 핍박하던 사람이 핍박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고, 다메섹에서 죽이려는 음모를 피해서 예루살렘에 왔지만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이 사울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바나바가 사울을 위해서 이야기 해 줌으로 예루살렘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도 다메섹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울을 죽이려고 했고 예루살렘 교회는 사울을 다소로 보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을 떠나 다소로 가면서 이스라엘 교회들이 평안한 가운데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성도의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여기까지는 사울의 이야기였고, 32절부터는 베드로 사도의 사역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등장하기 전까지 베드로는 예루살렘의 지도자로서 교회를 이끌어 가는 역할을 했습니다.
사도행전은 처음에는 베드로를 비롯해서 사도들의 사역을 기록했지만 점차로 사울의 사역이 사도행전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사울이 본격적으로 사역을 하기 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의 사역에 대해서 기록을 하면서 베드로 사도가 어떤 사역을 했는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은 베드로 사도가 룻다 라는 곳과 욥바라는 곳에서 사역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베드로의 사역” 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 룻다에서 사역
사울이 회심하고 전도자가 되고 사울을 죽이려는 음모로 인해서 다소로 보내졌다고 기록하고 베드로 사도의 사역에 대해서 소개를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 베드로 사도의 룻다 사역을 기록하고 있는데
룻다에서 애니아를 만났습니다. 32-33절을 보면
9:32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9: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베드로 사도는 여러 지역을 순회하면서 사역을 했습니다. 교회가 핍박으로 인해서 흩어진 다음에 많은 성도들이 여러 곳으로 흩어져 전도를 해서 교회를 세웠고 베드로는 그런 교회들을 순회하면서 선교를 하거나 성도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순회 사역을 하던 중에 룻다라는 지역에 도착하게 됐습니다. 룻다라는 지역은 예루살렘 북서쪽 약 40km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서 해안 도시이며 욥바로부터 동쪽으로 약 17-18km에 위치한 비옥한 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룻다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애니아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애니아의 뜻은‘칭찬받는 자’ 라는 의미를 지닌 헬라어 이름으로서 그가 기독교인이었는지 아니면 기독교와 상관없는 유대인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성도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가 그 여인을 만났다는 것으로 볼 때 당시 룻다의 성도였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만난 애니아는 중풍으로 8년을 침상에 누워있었습니다. 33절에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애니아는 8년 전에 중풍이 왔고 침상에 누워서 8년이란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중풍은 몸의 일부가 마비가 되거나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중풍은 뇌혈관에 문제가 생겨서 발병한다고 합니다.
몸의 일부분이 마비가 되는 현상이 뇌혈관의 문제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몸이 불편하면서 정신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질병입니다. 이병은 발병하게 되면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병으로 한 번 걸리면 다시 회복하기가 어려운 병입니다.
애니아는 8년 전에 이 병이 생겨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없는 상태로 침상에서 8년을 누워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애니아가 병상에 누워있는 상태에서 베드로는 만났다는 것은 베드로가 침상에 누워있던 애니아를 찾아갔을 것입니다. 이 말은 애니아가 성도이거나 성도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애니아가 침상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너를 낫게 하신다고 선포했습니다. 34절을 보면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베드로 사도는 중풍으로 침상에 누워있던 애니아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신다고 선포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권능으로 애니아가 치료될 것을 믿고 선포한 것입니다.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면서 너를 낫게 하신다고 선포했습니다.
신유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부활의 권능을 덧입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을 믿으면 우리 가운데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신다고 선포하면서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8년 동안 누워있었던 침상을 정리하라는 것입니다. 병들어 누워있던 침상은 정리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애니아를 중풍병에서 고침을 받아 건강한 삶을 회복하게 함으로 그것을 본 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35절을 보면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게 하는 것은 그의 몸을 고치므로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구원 받은 성도가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예수님의 이름은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질병이 고침을 받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애니아가 고침 받은 사건으로 인해서 애니아가 살고 있는 룻다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룻다에서 가까운 사론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론’은 ‘평야’를 의미하며 남쪽 욥바와 북쪽 갈멜산 사이에 위치한 평야 지역을 사론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 욥바에서의 사역
룻다에서 애니아를 고쳐준 베드로는 룻다에서 더 머물렀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룻다에 머물고 있을 때 욥바에서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었는데 병들어 죽었습니다.
36-37절을 보면
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9: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욥바’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서북쪽으로 약 55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해안 도시로서 ‘룻다’와의 거리는 약 18km 정도 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는 수리아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다비다가 이미 기독교인임을 ‘제자’라는 말로서 알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여제자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을 했습니다. ‘다비다’ 라는 히브리 이름으로 보아 그녀는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비다라는 히브리 이름은 ‘사슴’이란 뜻이고 그 이름을 번역하면 이란 헬라어 이름으로 하면 ‘도르가’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비다 또는 도르가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선행과 구제하는 일에 심히 많았다고 기록한 것으로 볼 때 도르가는 부자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행을 한 다비다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다비다가 병들어 죽게 되자 당시 유대인들의 장례 절차에 따라서 장례 절차를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고 한 것은 장례가 진행되는 과정이라는 설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룻다에 사람을 보내 베드로에게 와달라고 간청했습니다. 38절에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베드로 사도가 룻다에 있다는 것과 룻다에서 중풍으로 8년 동안 고통당한 애니아를 고쳐주었다는 이야기를 욥바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면서 욥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 다비다가 죽은 것이 안타까워서 베드로에게 욥바로 와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욥바의 기독교인들은 베드로가 오셔서 장례식을 진행해 달라고 와달라고 간청한 것이 아니라 이미 죽었지만 베드로가 오면 살릴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베드로에게 와 달라고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욥바 사람들은 다비다가 행한 일을 생각할 때 이렇게 병들어 죽었다는 것이 가슴 아픈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들의 간청을 받아들여서 욥바에 왔는데 사람들은 도르가가 행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39절에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베드로는 다비다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룻다에 와서 베드로에게 욥바로 가길 간청하매 욥바로 왔습니다. 욥바에 있던 성도들은 베드로를 다비다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다비다가 행한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특별히 다비다는 혼자 된 여인들을 불쌍히 여겨서 가난하고 혼자된 여인들에게 선행과 구제를 많이 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의 곁에서 모든 과부들이라고 기록한 많은 여인들이 울면서 다비다가 자신들에게 한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자기를 위해서 지은 속옷과 겉옷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는 혼자 어렵게 살아가는 여인들에게 다비다는 많은 것을 베풀어 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여인들의 말을 듣고 무릎을 꿇고 기도한 다음에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선포했습니다. 40-41절에
9: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9: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베드로는 지금까지 많은 치유 사역과 기적을 경험했지만 본인이 직접 병들어 죽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살린 적이 없기 때문에 먼저 사람들을 다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을 주시지 않으면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절히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베드로는 시체를 향해서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선포했습니다. 베드로는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을 의지해서 선포한 것입니다. 그 순간 죽었던 다비다가 눈을 떠서 베드로를 보더니 일어나 앉았습니다.
베드로는 죽었다가 눈을 뜨고 일어나 앉은 다비다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려 들여서 다비다가 살아난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실 때 하신 일들을 회상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다 내보낸 것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 예수님께서 하신 것과 같이 사람들을 내 보냈을 것이고 나사로를 살리실 때 나사로야 나오라고 선포한 것처럼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선포했을 것입니다.
병들어 죽었던 다비다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었습니다. 42절에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룻다에서 애니아를 고쳐줌으로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욥바에서 다비다가 살아남으로 인해서 욥바에 이 소식이 알려졌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욥바에서 시몬이란 무두장이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43절에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신유와 기적은 우리를 고치시고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축복임과 동시에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나타남을 믿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질병에서 고침을 받고 죽은 자가 살아가는 것과 같은 기적을 경험하는 참빛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