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집사님을 세우다.(9월 1일 오후 예배 설교)

성 경 : 사도행전 6:1-7(신약 194)

3-5장까지는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고침을 받고 나서 사도들이 계속해서 감옥에 갇히거나 산헤드린 공회에서 협박을 당한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5장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감옥에서 나와서 성전에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셔서 사도들은 성전에서 생명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공회에서 협박을 당하는 상황에서 가말리엘이 이 사람들이 하는 것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자연히 사라질 것이고, 하나님께로서 난 것이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공회원들은 가말리엘의 말을 듣고 사도들을 채찍질하고 협박하여 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능욕 받는 것을 합당하게 여기면서 공회를 떠나서 날마다 성전에서든 집에서든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전도했다고 기록했습니다.

6장은 그런 가운데 교회가 급성장을 하면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집사님을 세우기로 하고 성도들에게 일곱 명을 추천하라고 해서 성도들이 추천한 7분이 집사님으로 안수를 받고 세움을 받았습니다.

사도들은 교회 최초로 일곱 분의 집사님을 세우게 되는데 집사님들의 역할과 사도들 즉 교회의 목회자들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사도들은 성도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일을 하는 것이고, 집사님들은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직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일곱 집사님을 세우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발생한 문제

5장에서 초대교회에서 일어난 문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문제였는데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였다고 할 수 있고 이 일로 교회를 향해서 또한 성도들에게 교만함과 거짓말을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6장에서 발생한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가 교회에서 발생한 문제입니다. 교회는 완벽한 의인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오늘 초대 교회에서 발생한 문제를 보면

문제가 발생하게 된 원인 중에는 제자가 더 많아졌습니다. 1절을 보면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사도들이 공회로부터 계속 핍박을 받고 협박을 당하지만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들에 의해서 많은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고, 병든 사람들이 고침을 받고 귀신 들린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은 로마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힘든 상황이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아라든지 남편을 잃고 혼자된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모든 면에서 살기가 너무 힘든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사도들이 전하는 생명의 말씀은 희망의 메시지였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렌스키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종교와 사회의 관계를 분석한 사회학자로 알려져 있는데 렌스키에 따르면 이 때의 신자의 수는 약 20,000-25,000명 정도가 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불과 1,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 정도로 증가 되었다는 것은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급 성장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이렇게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면 믿음이 신실하다고 해도 인간적인 문제로 인해서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서로 갈등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급성장하면서 원망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1절을 다시 보면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교회의 성도가 늘어나면서 발생한 문제는 구제하는 일에 있어서 공평하지 못하다는 불만으로 인한 원망이었습니다. 4-5장에서 교회는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갖다 드리면 사도들은 그 돈으로 교회 성도들을 구제하는 일에 사용을 했습니다.

그런데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상황이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들다 보니 나누는 일을 공평하게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중에서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사람들 간에 갈등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 이란 각처에서 흩어져 살다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온 디아스포라 출신의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이고 히브리파는 나면서부터 이스라엘 땅에서 자라서 성장한 토박이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헬라파 유대인들은 즉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살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 과부들이 구제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파들은 구제품을 잘 받는데 헬라파는 제대로 구제품을 받지 못하는 불공평한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은 헬라파와 히브리파가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가 있어서 서로 의사 소통의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고,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어쩔 수 없이 유유상종의 현상이 나타났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헬라파가 소외되는 현상이 있었던 것은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구제품을 받는데 다른 사람은 받았는데 나는 못 받으면 화가 나고 속상한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런 상황이 초대교회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2 만명 이상이 모인 교회라면 더욱더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원인 중에는 아직 까지 사도들이 모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면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사도들은 교회 안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고 제자들을 모이게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로 하면 공동의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을 모아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이야기 했습니다.

사도들은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야 하는데 지금처럼 구제하는 일을 함으로 인해서 정작 사도로서 해야 할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접대를 ‘일삼는’ 의 헬라어 ‘디아코네인’은 전치사 ‘디아’과 ‘먼지’를 뜻하는 ‘코니스’의 합성어로서 ‘먼지가 일어날 만큼 분주히 움직이다’, ‘열심히 일하다’, ‘봉사하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식사나 기타의 일 등에서 섬기는 것’(요 12:26)을 나타낼 때와 ‘집사로서 봉사하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딤전 3:10, 13). 영어의 집사에 해당하는 단어 deacon은 이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리고 1절의 ‘구제’(디아코니아)라는 말도 본 단어와 동일한 어원에서 유래되어 초대교회에서 집사님들이 교회 안에서 주로 맡은 일들이 무엇인가를 나타낸 것입니다.

또 ‘접대’의 헬라어 ‘트라페자이스’는 특별히 교회 안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식량과 생활용품 등을 나누어 주는 등의 구제 사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들이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 하였다고 해서 ‘접대’가 기도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보다 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열 두 사도에게 있어 ‘대접’ 하는 일은 그들이 주께로부터 부름 받은 일보다 우선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교회 안의 각 구성원은 저마다 주께로부터 특별히 부름 받은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사도로서의 역할에 집중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이야기 한 것입니다.

  1. 사도가 집중해야 할 일

사도들은 계속해서 우리가 대접하는 일보다는 우리가 집중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목회자들이 집중해야 할 일들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도들이 집중해서 할 일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입니다. 4절을 보면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예수님은 승천하신 이후로 사도들은 마음을 같이 하여 모여서 오로지 기도하는 일을 힘쓰게 했습니다.

그리고 늘 기도하면서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많아지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을 하다 보니 정작 기도할 시간이 적어진 것입니다. 사도들은 성령으로 충만을 받았지만 사역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더욱 기도하기를 힘써야 하는데 다른 일들로 인해서 너무 분주해져서 기도하는데 전념하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사님들을 세우고 다시 오로지 기도하는 일을 힘쓰려고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목회자들에게 기도는 중요한 영적 사역입니다. 여기도 기도하는 일이란 말의 원래 의미에는 스스로 기도하는 것과 기도회를 인도하는 것을 포함한 것입니다.

또한 말씀 사역에 힘쓰는 것입니다. 4절을 보면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사도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고 모든 민족으로 제자로 삼으라고 하신 명령대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말씀 사역에 힘써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사실 목회를 하다 보면 말씀을 준비하고 말씀 사역에 힘써야 하는데 다른 일들이 많아서 제대로 말씀 사역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목회자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사역에 힘쓰는 것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며 할 책임이 목회자들에게 있습니다.

  1. 일곱 집사를 추천하라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기 위해서 교회의 봉사를 위해서 일곱 분의 집사님이 되실 분들을 추천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기된 집사님으로 선택해야 할 분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야 합니다. 3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성령께서 부여하신 은사와 함께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바쳐 하나님의 일을 올바로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지혜의 충만함’은 성령 충만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지혜는 성령이 충만한 성도에게 임하는 은사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지혜의 충만함은 곧 성령 충만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지혜는 행정 및 사무 처리에 필요한 지혜를 뜻할 수도 있겠으나 보다 포괄적으로는 생활에 필요한 실천적인 지혜들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헌신하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이 없이는 어렵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언제나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교회 안에서 진정한 헌신과 봉사자로 살아갈 수 있고 또한 교회의 일을 감당할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주어진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분들을 추천하라고 한 것입니다.

또한 칭찬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3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칭찬 듣는 사람’ 에 해당하는 헬라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평판이 좋은 사람’, ‘증명된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즉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맡을 사람은 성령 충만한 결과로 나타나는 신앙 인격 또한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람들을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십니다.

사도들은 일곱 사람을 택하라고 말했습니다. 3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초대 교회가 첫 번째로 집사님을 세우면서 집사의 수를 일곱으로 정한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고 그 중에 대표적인 세 가지 견해를 보면

(1) 유대인들에게 있어 7이라는 수는 거룩한 숫자 또는 완전수로 여겨졌으므로 그들이 임의로 특정한 수를 택해야 할 경우에는 대개 7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경우에도 그들의 생활 관례에 따라 7명의 집사를 선택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2) 유대의 관습상 특별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7인 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이런 관습을 따른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3) 유대 공동체는 일반적으로 지역 책임자들이 7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때 예루살렘 교회는 이러한 유대의 제도를 따른 것 같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어떠한 견해를 따르든 본 구절을 해석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으며 그 문제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당시 상황으로는 7명 정도면 구제 사업을 담당하며 교회 내의 사무 및 행정적인 문제를 처리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1. 일곱 집사님을 세우다.

발생한 문제로 인해서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기 위해서 교회의 봉사를 위해 일곱 분을 추천하라고 말했고 성도들은 일곱분을 추천을 해서 최초로 일곱 집사님이 탄생했습니다.

온 성도들이 기뻐하며 일곱 분을 추천했습니다. 5절을 보면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성도들은 사도들이 집사님을 임명하겠다고 말하면서 추천하라고 할 때 모두가 기쁘게 일곱 집사님을 추천하게 되는데 이 분들은 모든 성도들이 인정할 정도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신 분들이었습니다.

일곱 집사의 이름과 그 이름의 의미입니다:

  1. 스데반 : “왕관” 또는 “화관”을 의미합니다. 그리스어로 “스테파노스(Στέφανος)” 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관을 가리킵니다. 스데반은 신약성경에서 첫 순교자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1. 빌립 : “말을 사랑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어로 “필리포스(Φίλιππος)”에서 유래했으며, ‘필로스(φίλος)'(사랑하는 자)와 ‘히포스(ἵππος)'(말)의 합성어입니다.
  1. 브로고로 : “춤의 지도자” 또는 “춤추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어로 “프로코로스(Πρόχορος)”에서 유래하였으며, ‘프로(προ-)'(앞)와 ‘코로스(χορός)'(춤, 무리)의 합성어입니다.
  1. 니가노르 : “승리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어로 “니카노르(Νικάνωρ)” 에서 유래했으며, ‘니케(νίκη)'(승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1. 디몬(Timon): “존중하는 자” 또는 “존경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어로 “티몬(Τίμων)”에서 유래하였으며, ‘타이모(τιμώ)'(존경하다)와 관련이 있습니다.
  1. 바메나 : “항구적인 자” 또는 “지속적인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어로 “파르메나스(Παραμενᾶς)”에서 유래하였으며, ‘파라메노(παραμένω)'(머물다, 지속하다)와 관련이 있습니다.
  1. 니골라 : “백성의 승리”라는 뜻입니다. 그리스어로 “니콜라오스(Νικόλαος)”에서 유래하였으며, ‘니케(νίκη)'(승리)와 ‘라오스(λαός)'(백성)의 합성어입니다.

성도들이 추천한 일곱 분의 집사님에게 사도들이 안수했습니다. 6절을 보면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이스라엘에서는 어떤 직분자를 세울 때는 안수하여 세우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처음으로 임명을 받는 집사님들도 안수하여 집사님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오늘날은 안수집사님과 서리 집사님으로 구분을 해서 안수 집사님을 세울 때 안수하고 서리 집사님은 안수하지 않고 세웁니다. 안수한다는 것은 항존직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일곱 집사님을 세움으로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습니다. 7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급격하게 성도의 숫자가 늘어남으로 인해서 문제가 발생했지만 신속하게 일곱 집사님을 세움으로 인해서 문제는 잘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도들의 말씀 사역과 신유 사역으로 제자의 수가 더 많아지고 심지어 제사장의 무리도 복음으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초대교회에서 첫 번째로 집사님 일곱 분을 세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 받는 분들을 추천해서 안수하여 세움으로 교회는 더 성장했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 받는 직분자가 됨으로 참빛 교회가 더 성장하고 주님의 나라를 전하는 복된 교회로 세워져가게 되리라 믿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함으로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도 넘치는 복을 누리는 참빛 가족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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