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거짓말을 하지 말라(8월 11일 오후 찬양 예배 설교)
성 경 : 사도행전 5:1-11(신약 194)
 
4장까지는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복음 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교회가 부흥하고 믿음의 공동체로서 굳건하게 세워져가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5장에서는 성령님의 역사와 교회가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서로를 돌아보는 공동체로 세워져가는 상황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하나님 앞에 진실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죽게 되고 이로 인해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11절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게 되면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의 성장을 방해하기 위해서 사람을 유혹을 해서 교회에 어려움을 주려고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좋은 의도에서 출발을 하지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런 부부를 향해서 베드로 사도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책망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충만을 받은 공동체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경고를 하시면서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신실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로 살아오면서 힘든 상황들도 많이 겪었지만 지난해에 제가 잘 아는 목회자들에게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어떤 일을 계기로 두 분의 목사님과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분은 목회자들에게 거짓말을 하시고 다니셔서 제가 그 분의 말이 잘못됐다는 것을 이야기 했는데 그분은 제가 그분이 말한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 것을 여러 목사님들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솔직하게 내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하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제가 그 목사님이 하는 말이 틀리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것을 감동을 주셨다는 식으로 말을 하셨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이야기 하면 되는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알게 하셨다고 말하는 순간 지금까지 그분에 대해서 가졌던 좋은 감정들이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그런 느낌을 주셨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할 수 있지?
 
또 한 분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면서 그분에게 ‘목사님 이 일에 대해서 기도하고 응답 받으셨어요?’ 라고 물으니까 자신은 이 문제를 위해서 수 없이 많이 기도했고 응답을 받았다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면서 우리는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님과 기도의 응답이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는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특히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때론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착각할 수 있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고 응답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경고해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때론 거짓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에게 어떤 상황으로 인해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진실해야 합니다.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오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지 말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땅값의 일부를 감춘 부부
오늘 본문 말씀은 4장 마지막 부분과 관련이 있습니다. 4:34-37절 까지를 보면
4: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4: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4: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4: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예루살렘 교회는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드리면 교회에서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서 사용을 했고, 그러므로 교회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분이 바나바라는 분입니다. 이 분은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는데 원래 이름은 요셉이라고 사도들은 그를 바나바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바나바의 뜻은 ‘위로의 아들’ 또는 ‘격려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바나바라는 이름은 ‘위로와 격려, 돌봄’ 이란 의미로 볼 수 있는데 일부에서는 바나바라는 이름은 한국교회 권사님들의 역할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고 해석을 합니다. 권사님들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은 ‘격려와 돌봄’ 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바나바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드리고 그것으로 가난한 성도들을 돕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 일을 계기로 해서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 세워지고 나중에 바울 사도와 함께 선교사역을 하기도 했습니다.
 
바나바의 일은 당시 교회 안에서 많은 사람들의 본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닮고 싶은 롤 모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바나바가 교회에 인정 받고 존경 받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그렇게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소유를 팔았습니다. 1절을 보면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아나니아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는 의미이고, 삽비라의 이름은 ‘사파이어’(Sapphire, 푸른 보석)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름답다.’ 또는 ‘귀중한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부부는 사도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은혜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일원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이 부부는 바나바의 헌신을 보고 자신들도 바나바처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소유 즉 땅을 팔았습니다.
 
이 부부가 땅을 판 목적은 바나바와 같이 교회에 드려서 교회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은혜를 받았을 것이고, 바나바를 통해서 우리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도전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재산인 땅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판 땅 값의 전부를 가지고 와서 드린 것이 아니라 일부만 드렸습니다. 2절을 보면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땅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리자는 감동을 받고 땅을 팔았는데 막상 팔고 나서 전부를 드리자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땅을 팔 때만 해도 모두 드리겠다는 생각으로 팔았는데 막상 드리려고 하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일부를 감추었다고 해석을 합니다.
 
반면에 칼빈과 같은 분은 처음부터 땅을 팔아서 일부만 드리려고 했다고 해석을 합니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한 것인지 땅을 팔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인지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어쨋든 이 부부는 자신들의 땅을 판 값의 일부는 감추었습니다.
 
땅을 판 값의 일부는 감추어 두고 일부를 들고 사도 베드로를 찾아가서 드렸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아나니아를 향해서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다고 지적을 했습니다. 3절을 보면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땅값의 일부를 감추고 일부만을 가져온 것은 사탄의 유혹을 받은 것이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사탄이 마음에 가득하기 때문에 즉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령을 속이고 땅 판값의 일부를 감춘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우리가 마귀의 유혹을 받으면 우리도 모르게 마음에 마귀가 가득하게 되는데 마귀는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마귀의 속삭임을 성령의 역사라고 속아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이단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단들에게 사람들이 미혹 당하는 이유 중에는 이단들에게도 성령이 하시는 것과 같은 일들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영 분별력이 없으면 이것이 마귀의 역사인지 성령님의 역사인지 구별을 못하기 때문에 이단의 유혹에 넘어가서 영혼을 마귀에게 빼앗기는 것입니다.
 
마귀의 역사인지 성령의 역사인지를 구별하는 첫 번째 구별은 거짓된 것인지 진실한 것인지를 보는 것입니다.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2. 하나님께 거짓말 한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아나니아에게 너는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람에게 거짓말 하는 것도 큰 잘못인데 하물며 하나님께 거짓말한 것은 용서 받을 수 없다고 말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에게 하나님께 거짓말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4절을 보면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아나니아가 자신의 땅을 팔아서 전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너의 땅을 팔고 그 돈을 전부 나에게 드려라 라고 말씀했는데 아나니아가 그것을 어기고 일부를 감추었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잘 보면 베드로는 너의 땅을 팔기 전에 그것은 너의 소유였고, 땅을 팔고 땅 값으로 받은 돈을 사용하는 것도 전적으로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기 땅을 판 돈을 자기 맘대로 할 수 있으면 일부는 감추어 두고 일부만 드려도 문제가 없는 것이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베드로가 지적한 것은 땅을 팔아서 일부만 하나님께 드린다고 해서 죄가 되거나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사전에 아나니아 부부가 자신들의 재산을 팔아서 전부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을 한 것이기 때문에 그 중에 일부를 감춘 것이 하나님을 속인 것이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일부만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한다든지 돈을 가져와서 전부 가져온 것이 아니고 일부만 가져왔습니다. 라고 말하면 문제가 안 되는데 일부를 감추고 전부 가져왔다고 말했기 때문에 속인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삽비라에게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8절을 보면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둘이 그렇게 하기로 했기 때문에 삽비라도 다 가져왔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아나니아의 이야기를 잘못 해석하면 우리의 재산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니까 팔아서 모두 하나님께 드려야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단들은 이런식으로 해석을 해서 성도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거짓을 지적한 것입니다. 다 하겠다고 하고 일부만 드리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하나님에게 거짓말한 것이다. 라고 지적했습니다. 4절을 다시 보면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 부부의 잘못은 바나바처럼 교회에서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기 위해서 자신의 재산 전부를 드리는 것처럼 이야기 했지만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일부만 드렸고 이것을 이미 교회 앞에서 드린다고 말한 것이기에 이것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하겠다고 하고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게 거짓말 한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약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약을 지키지 않으면 죄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에게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두려워하게 됐습니다. 5-6절을 보면
5: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5: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베드로 사도가 아나니아에게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께 거짓말 한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아나니아의 혼이 떠나갔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아나니아가 하나님 앞에 거짓말을 함으로 죽는 것을 직접 보았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됐습니다.
 
아나니아만 죽은 것이 아니라 삽비라도 죽었고 그로 인해서 온 교회와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다 두려워했습니다. 9-11절을 보면
5: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5: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5: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3. 진실한 믿음
하나님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사람 안에서 진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는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9절을 다시 보면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주의 영을 시험한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성령을 속이고 성령께서 알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성령님이 주시는 사인과 감동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싶어도 우리의 생각이 앞서면 성령님이 역사하실 수 없고, 결과적으로 성령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과 나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나바를 보면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우리도 바나바처럼 교회에서 인정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바나바처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나와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존귀한 자로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가 자격지심이 있으면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게 되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자격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나이고, 하나님 앞에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남과 나를 비교하면 마음만 힘들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같은 어리석은 일을 하게 됩니다.
 
모든 일을 기쁜 마음으로 자원해야 합니다. 벧전 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기쁜 마음으로 자원해서 했더라면 바나바와 같이 인정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드린 것처럼 해서 바나바처럼 인정 받고 싶었지만 결과를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은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는 것입니다. 즐겁게 헌신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당장에 힘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자원하여 섬김으로 더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우시는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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