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같이하여(2024년 5월 12일 오후 찬양 예배 설교)
성 경 : 사도행전 1:9-14(신약 187)
 
지난 주 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종말의 때가 언제 올 것인가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약속하신대로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보는데서 하늘로 들려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들이 그들에게 가신 그대로 오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듣고 승천하시는 것을 목격한 다음에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그들이 거하고 있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다락방은 우리나라의 다락방 개념과는 다른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곳에 모여서 제자들이 한 일은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하는 일에 힘쓰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힘써 기도함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하신 성령의 임하심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장 9-14절까지는 이렇게 예수님의 승천과 모여서 기도하기를 힘쓴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마음을 같이하여”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습니다.
9절을 보면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앞에서 하신 말씀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스라엘의 회복의 때는 아버지의 권한에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축복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눅 24:50-51절을 보면
24: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24: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앞으로 교회를 이끌어갈 사람들이기에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보고 있는 동안 제자들의 눈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눈앞에서 구름 속으로 사라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변모하셨을 때 예수님을 가린 것이 바로 빛난 구름이었고 승천하실 때도 구름으로 가려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도 구름 타고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21:27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자 제자들은 그 자리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10절을 보면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에수님께서는 예수님이 떠나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자신들과 같이 계시길 원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여전히 주님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제자들은 지금 막 예수님께서 승천하실때 그들의 하늘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가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되리라 고 말씀하셨기에 이제 그들이 왜 그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요 1: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두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10절을 다시 보면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천사들 중에 둘을 그의 제자들에게 보내셨는데, 그들은 흰 옷을 입었습니다. 천사들이 제자들에게 하는 말을 보면 11절에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천사가 한 말은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가 무엇을 보고자 하느냐? 너희에게 모든 것을 다 보여 주었는데 무엇을 더 보려고 하느냐? 무엇을 보면서 서 있느냐?”라는 의미로 말했을 것입니다.
 
천사들은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물끄러미 서 있어서는 안 되니까 어서 가서 오실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말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루어질 일이라고 말함으로 재림 신앙을 확고하게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지금 승천하시는 예수님은 마지막 때 지금 승천하신 것과 같이 다시 재림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것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모여서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 천사들의 말을 듣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12절을 보면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어떻게 생각하면 예루살렘은 그들에게 있어 두려운 장소입니다. 지난 3년 동안 공생애 사역을 따라다니면 많은 기적을 보았고 많은 일들을 경험했지만 예루살렘은 그들에게 있어 예수님이 잡혀 돌아가신 것을 직접 목격해야만 했던 두려운 장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그리고 성령의 임하신 사건 이후에도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항상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그 만큼 예루살렘은 그들에게 두려움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해서 두려움과 좌절을 경험했던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예루살렘이 두렵습니다. 이곳에서 예수님께서 잡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지금도 우리를 잡으려는 무리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곳에 있어야 합니까?
 
제자들은 그럼에도 순종해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순종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이유를 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절대 순종을 요구하시고 있지 이유와 핑계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아무리 옳은 것 같아도 하나님보다 현명하고 지혜로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교회의 권위와 주의 종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에 순종하는 것이 축복된 삶의 비결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은 것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은 그곳에서 경험한 두려움과 좌절을 극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두려움이 있는 장소인 예루살렘에서 떠나 디베랴 호수로 물고기 잡으러 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로 간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예루살렘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경험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면 예루살렘은 그들에게 항상 두려움의 장소가 될 것이고 그것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한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예루살렘에서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기 위해서 그곳에 머물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도피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현실도피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도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에 대해서 맞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어떤 두려움의 경험이 있었다면 그것을 피하기보다는 맞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제자들은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지 이고 성경의 중심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전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을 경험하게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성도는 언제나 성전을 떠나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는데 반드시 가야 할 곳이 교회이고 떠나지 말아야 할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에 머무는 신앙이 곧 축복을 받고 능력을 받는 길입니다. 교회 중심의 신앙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우리가 두 번째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구절은 13-14절입니다.
1: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여기서 특별히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라는 표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로 주어진 말씀입니다.
 
교회는 더불어 정신이 필요합니다. 13절에 보면 그곳에 함께 모인 사람들에 대해서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이 명단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 전체에 대한 명단이 아니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이 명단을 포함해서 약 120명의 제자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인 것에 대해서 더불어 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사람들은 각기 출생지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른 각기 개성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여자들도 있고 제자들도 있고 여러 종류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렇게 다른 계층의 사람들과 성별이 다른 사람들 연령이 다른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현대 교회의 성장이론에는 끼리끼리 이론이 있습니다. 물론 공식적인 명칭을 그렇게 사용하지 않지만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모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공통의 관심사와 성향으로 인해서 더 성장하고 원활하게 잘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공통의 성향의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여러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것입니다. 그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더불어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라는 말은 먼저 서로가 양보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고 또한 상대를 인정한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말 자체가 ‘더불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이지만 모여서 하나의 신앙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더불어 정신이 필요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더불어 정신이 사라지면 교회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내 주장만을 고집하고 모든 것을 내 맘대로 하려는 자세는 ‘더불어’의 정신이 아닙니다. 남을 인정하고 나의 고집을 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 공동체의 더불어 정신입니다.
 
교회는 마음을 같이해야 합니다. 마음을 같이 한다는 말은 ‘더불어’라는 말 속에 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같이 한다는 것은 ‘더불어’라는 말과 함께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한다는 말은 공동체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같은 믿음으로 뭉친 신앙 공동체로서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가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마음을 같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마음을 같이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다는 말은 다른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오직 기도에 전념했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 바로 기도하는 일입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에 대한 표현을 보면 행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도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기도하기를 힘쓰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에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예배와 기도입니다. 교회에서 기도가 멈춰지고 기도의 시간이 줄어들고 기도하기를 힘쓰지 않으므로 교회도 무너지도 우리의 신앙도 무너집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기도하는 가운데 시작되었고 기도를 통해서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오로지 힘써야 할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기를 쉬지 않고 오로지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고 기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한 생각입니다.
 
우리 참빛 교회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는 기도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늘 깨어 기도하기를 힘쓰고 언제나 주님 앞에 무릎 꿇는 무릎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무릎 공동체가 될 때 우리의 교회와 가정 위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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