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자(4월 7일 오전 예배설교)
요한일서 1:1-10(신약 388)
 
세상을 크게 나누면 빛과 어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빛에 속하거나 어둠에 속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중간지대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죄가 아니면 의, 어둠이 아니면 빛, 죽음이 아니면 생명 이렇게 명확하게 구분을 하면서 중간지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즉 죄와 의의 중간지대나, 어둠과 빛의 중간지대라든지, 죽음과 생명의 중간지대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천국 아니면 지옥이지 천국도 지옥도 아닌 중간지대의 개념이 성경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중간지대를 좋아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우리는 자기의 의견을 표현하기보다는 적당히 중간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에 익숙한 문화 속에서 살아와서 그럴 수 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를 MZ 세대라고 하는데 나이든 세대가 바라본 MZ 세대의 장점이라면 자기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것이고, 단점도 역시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른 세대는 중간지대에 익숙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중간지대라는 개념에 익숙한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앙생활에서도 중간에 만족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중간지대를 추구하는 신앙에 대해서 계시록 3:15-16절에 보면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차지도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한 상태이면 토하여 버린다고 말씀하셨는데 미지근한 상태는 중간지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가 아니라 분명한 신앙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요한복음에서도 예수님을 참 빛이라고 소개했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셔서 거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요한 사도는 같은 의미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 사도는 이 글을 읽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 빛이시고 우리는 그 빛 가운데서 살아 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절을 지낸 첫 번째 주일에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빛 가운데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자”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생명의 말씀
요한일서의 첫 부분은 마치 요한복음의 첫 부분같이 느껴집니다. 요한복음 1: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라고 시작했는데 오늘 말씀에서도 1절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라고 시작을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말씀이란 단어는 ‘로고스’라는 헬라어를 사용했고 여기서도 생명의 말씀에서 말씀은 요한복음과 같은 ‘로고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요한복음의 시작 부분과 많이 비슷하게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약간의 차이라면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이라고만 했다면 요한일서 오늘 본문에서는 생명의 말씀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생명의 말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있었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을 다시 보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요한 사도는 생명의 말씀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하는데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란 말은 생명의 말씀이 태초부터 존재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계셨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말씀 되시는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계셨고 세상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또한 그 분은 지금도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복음은 생명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것이고 복음은 곧 예수님 입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생명의 말씀이 나타나셨습니다. 2절을 보면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태초부터 계셨던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찾아오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죄 사함의 길을 열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너희도 나를 떠나려느냐 라고 물으셨을 때 요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안에 영생의 말씀이 있다고 말했고 요한은 이것이 생명의 말씀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이시며 영생의 말씀입니다. 영생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우리를 위해 찾아오셨다고 말하고 우리가 보고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3절을 보면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한은 태초부터 계신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셨고 우리는 그분을 직접 보았고, 그분에게 말씀을 들었고, 그분이 하시는 모든 것을 직접 경험했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그분이 하신 모든 놀라운 일들을 경험한 증인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지난 주에 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베드로와 제자들과 500여 형제와 그리고 자신이 직접 만났다고 기록한 것처럼 요한은 예수님을 자신은 직접 경험했고 그분의 모든 것을 보고 들었고 심지어 그분을 만져보았다고 증언하면서 예수님이 오신 것을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요한은 이런 사실을 기록한 것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습니다. 4절을 보면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쉬운성경은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기쁨을 나누려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요한 사도가 생명의 말씀에 대해서 기록한 것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태초에 계셨던 그분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과 그분을 만나고 경험한 것을 전해줌으로 우리가 다시 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기쁨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요한과 또한 함께 있는 신앙공동체와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같은 기쁨을 누리기 원한다는 고백입니다.
 
2. 빛 가운데 행하자
생명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오셨고 우리가 그분을 보고 듣고 만져보았다고 증언한 요한은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이시고 하나님은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빛이시고 예수님은 참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오셨고 또한 참빛으로 오셨다고 말씀하면서 우리도 그 빛 안에서 그 빛 가운데 행하자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빛을 세상에 비추는 삶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5:14-16절까지를 보면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 되신 주님을 따라 빛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데 요한 사도를 통해서 말씀하시길 하나님에게는 어둠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절을 보면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하나님은 빛이시고, 예수님은 참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이신 하나님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습니다. 어둠의 영역이 하나님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양 빛이나 전깃불을 통해서 어둠을 밝히고 있습니다. 태양이나 전깃불은 환하게 비추어지지만 감춰지는 곳이 있고 빛 속에서도 어둠의 영역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어둠의 영역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빛만 있는 것이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진실한 믿음 안에 살아간다는 것은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삶이 아닌 오직 빛 가운데서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둠과 공존하지 않는 빛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빛 가운데 살아가기 위해서 어둠에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6절을 보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빛 가운데 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여하시는 하나님 과의 사귐은 죄된 삶을 상징하는 어둠과 분리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힘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둠의 영역인 죄 가운데 거한다면 하나님과 사귐(교제) 즉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행하면’ 의 헬라어 ‘페리파토멘’은 문자적으로 ‘동행한다’라는 의미로 ‘말하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진리를 말하는 것’ 은 ‘진리를 행하는 것’ 이고 진리를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귐(교제)이 있다고 말할 때는 진리 안에서 행함이 뒤 따라야 하는 것이고, 빛 가운데의 삶을 살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귐이 있다고 하는 것이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 막힌 담을 헐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빛 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는데 빛 가운데로 나아가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어둠의 일을 버리고 어둠에서 완전하게 벗어 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기 위해서는 빛 안에서 진정한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7절을 보면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이 빛이시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귐은 단순히 그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발전해서 그리스도인 사이의 사귐을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상호 간의 사귐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전제로 하는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들은 성도 안에서 서로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와의 교제가 없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거짓된 것이고, 우리가 서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공동체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함을 입은 증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은 거룩한 성도가 되었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성도 간에 진실한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빛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서 산다면 우리는 서로 아름다운 사귐과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3.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우리는 그 빛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 요한 사도는 우리가 그 빛 안에서 누리는 진정한 은혜는 죄로부터 깨끗함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빛이신 하나님은 그 빛 아래에서 우리가 부끄럽지 않은 성도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깨끗하게 하시는데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입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약 나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거짓말하고 속이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한 일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아전인수격의 해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빛 가운데 행하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 내가 죄인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내가 죄 가운데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면 우리 죄를 사하사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9절을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기서 미쁘다는 말의 헬라어는 피스토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약속을 잘 지키시는 ‘신설함’이란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사하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십니다.
 
히 11: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미쁘다는 말의 의미가 잘 드러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믿음이 깊은 여자였습니다. 사라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 아기를 낳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을 이루어 주시리라는 믿음을 굳게 갖고 있었으므로 어머니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들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10절을 보면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만일 우리가 죄지은 일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우리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은 물론 하나님까지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까지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모든 인간을 죄를 범하였기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도말 하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너희는 빛 가운데 행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믿고 그 안에서 죄를 고백하고 사함을 받아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하나님 안에서 성도가 서로 진정한 교제를 하면서 어둠을 따라 살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거룩한 척 하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죄인 됨을 고백하고, 죄 사함을 받은 성도로 어둠에 일에 참여하지 말고 오직 빛 가운데 살아감으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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