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2024년 3월 17일 오후예배)
성 경 : 요한복음 20:1-18(신약 183)
 
지난 주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6시간 정도 달려 계시다가 숨을 거두시고 장사 지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려 계시고 숨을 거두신 후에 유대 지도자들은 안식을 몇 시간 앞둔 상황이고 유월절 축제가 시작되어야 하는 시간이 기 때문에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죄수들을 다리를 꺾어서라도 죽게 해서 시체를 치워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을 했고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두 죄수는 다리를 꺾어서 숨이 멈추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숨을 거두셨기 때문에 성경에 예언된 대로 그 뼈가 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신 다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해서 장사를 지냈고 니고데모도 장례를 위한 용품을 준비해서 가져와서 두 사람에 의해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소유인 새로운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지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무덤에 장사지내고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 새벽에 무덤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인데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을 기록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아침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부활하신 예수님” 이란 제목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무덤으로 달려간 두 제자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죽으시는 상황에서 제자들은 도망을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끼리 한 곳에 모여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이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됐는데 이제는 예수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막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게 만든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인 자신들도 죽이려고 할 것이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곳에 모여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대책회의 같은 것을 하면서 숨어 지냈을 것입니다.
 
금요일 오후 3시에 운명하시고 장사지낸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갈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무덤은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상황인데다 혹시라도 자신들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해서 잡아서 심문을 하고 처벌을 하거나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래서 예수님의 무덤에 가볼 생각도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그렇게 숨어 지내고 있었던 반면에 예수님에게 은혜를 받은 여인들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장자 지내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무덤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고 어떻게 장례를 치루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예수님의 장례에 다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을 해서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장례에 필요한 물품을 샀습니다. 안식일이 되면 상점들이 문을 닫기 때문에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사서 준비했습니다.
 
막 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눅 23:54-56
23:54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23:55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23:56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요한복음에는 부활하신 날 이른 아침에 무덤에 간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라고 기록했지만
마 28: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막 16:1-2
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16: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눅 24: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4복음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름은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분들이 함께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중에 중심적인 인물이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에 가서 무덤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어디 두었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본문의 1-2절을 보면
20: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0: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시간으로 볼 때 예수님은 금요일 오후 3시쯤에 돌아가셨고 금요일 오후 6시 이전에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오후 6시쯤부터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기 때문에 곧바로 안식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유월절이 시작되는 안식일은 우리 요일로 하면 금요일 해질 무렵에서 토요일 해지기 전까지가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교는 지금도 유대인들이 지키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이 토요일 저녁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저녁 시간에 무덤에 갈 수가 없었고 일요일 이른 아침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일요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날로 주님 부활하신 주님의 날이란 의미로 주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구약의 안식일이 아닌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일을 예배하는 날로 정하고 구약의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의 문이 옮겨진 것을 보고 무덤 안을 살펴보지 않고 곧바로 제자들이 숨어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죽어서 무덤에 묻혀 있는 예수님을 만나려고 갔는데 무덤 문이 열려있고 무덤이 비어있는 것 같자 누가 예수님의 시체를 옮겨간 것 같다고 제자들에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자 제자들 중에서 두 제자가 무덤으로 갔습니다. 3-7절을 보면
20: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20: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20: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20: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20: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이 있는 곳에 와서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 같다고 말하자 베드로와 함께 다른 제자가 무덤으로 갔습니다. 여기서 그 다른 제자는 이 성경을 기록한 요한 사도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을 향해서 달려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무덤으로 간 제자에 대해서 베드로만 기록을 했습니다. 요한 사도는 자신도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두 제자가 무덤으로 가는데 요한으로 추정하는 제자는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가서 무덤에 도착을 했습니다. 요한이 먼저 도착을 해서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세마포 놓은 것을 보았으나 예수님의 시체는 못 보았습니다.
 
이어서 베드로가 도착을 했습니다. 요한은 무덤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무덤 안을 들여다 보았다면 베드로는 직접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무덤이 동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들락 달락 할 수 있기 때문에 베드로가 들어간 것입니다.
 
베드로가 들어가서 보니 무덤에는 시체가 없고 예수님의 시체를 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이 세마포가 따로 따로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싸고 있던 세마포와 머리 수건에 다른 곳에 있고 시체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다는 알지 못했습니다. 8-10절을 보면
20: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20: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20: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베드로가 먼저 들어가서 무덤이 비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어서 요한도 들어가서 무덤이 비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믿었다고 기록했는데 여기서 믿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었다는 의미라기 보다 무덤문이 열려있고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고 말한 것을 믿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9절에 믿었다는 것이 부활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 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9절에 그들이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고 한 것은 아직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는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무덤에 와서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떠난 뒤에 예수님을 장사지냈던 그 무덤에 마리아가 여전히 머물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울면서 무덤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11절을 보면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두 제자는 떠나고 막달라 마리아 혼자만 남아 예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애통해 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마리아가 언제 무덤에 다시 돌아왔는지 또는 두 제자가 돌아갈 때 마리아와 다시 만났는지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다만 마리아가 통곡하는 장면으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울면서’ 에 해당하는 헬라어 ‘클라이오’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이 아니라 큰소리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통곡하는 울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대성통곡하면서 울었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제자로서의 애정이 얼마나 뜨거운 것이었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갈 때도 울면서 그 장면을 본 사람 중에 하나이고,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보도 대성통곡하며 울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모르기 때문에 없어진 예수님의 시체를 생각하면서 울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울면서 무덤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도대체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가져간 것일까? 그런 안타까운 생각에서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울면서 무덤을 들여다 보고 있는 여인에게 “어찌하여 우느냐?” 라고 천사들이 물었습니다. 12-13절을 보면
20: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20: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무덤 안을 들여보면서 통곡하고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덤 안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흰 옷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시체를 누워놓았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천사들은 이미 그곳에 있었을 것입니다. 단지 사람들의 눈에 천사들이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을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들여다보면서 울자 천사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에게 어찌하여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천사들은 마리아가 왜 울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갑작스럽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알려주기보다 단계적으로 부활 소식을 듣게 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울고 있는 이유를 물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울고 있을 때 왜 우는지 왜 가슴아파하는지 아시지만 우리에게 물어보십니다. 왜 울고 있니? 왜 그렇게 가슴이 아프니? 모든 것을 아시지만 우리가 스스로 울고 이유를 말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두었지 모릅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13절을 다시 보면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울고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예수님의 시체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시체를 찾아서 장례절차를 마무리고 하고 싶은 마음에 우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들려서 고통을 당하던 여인이었는데 예수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막 8: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일곱 귀신에게 사로잡혀 고생하던 마리아가 고침을 받고 예수님을 따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슬퍼했고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더욱 슬퍼서 울었던 것입니다.
 
왜 울고 있느냐고 묻는 천사에게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져다가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3. 부활의 증인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으로 인해서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한 최초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한참을 울고 있던 여인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14-15절을 보면
20: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20: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막달라 마리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지만 마리아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슬픔이 그의 마음과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나친 슬픔은 우리의 마음을 가리고 눈을 가립니다. 마리아는 슬픔이 눈을 가려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너는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죽은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가져갔는지 알지 못하니 당신이 혹시 우리 주님의 시체를 옮겼으면 알려 주시면 내가 가져다가 잘 모시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한 것임입니다.
 
슬퍼하며 우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마리아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6-17절을 보면
20: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마리아는 슬픔 중에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마리아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마리아의 마음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즉시 랍오니여 즉 선생님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하늘로 승천하게 된다고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지만 세상에 계속 계시지 않고 장차 천국으로 가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를 보았다고 증언했습니다. 18절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울고 있던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제자들에게 가서 ‘내가 주를 보았다’고 외쳤습니다. 이 말은 내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가 아니라 내가 직접 예수님을 보았다는 말입니다.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고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한 사람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분부한 메시지를 충실하게 전달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망에 매여 있지 않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날 마리아는 죽은 예수님을 찾았지만 죽은 예수님이 아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나오더라도 우리가 만날 주님을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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