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부인하다.(2024년 1월 28일 오후예배)
성 경 : 요한복음 18:15-27(신약 178)
 
예수님께 잡히셔서 안나스의 집을 거쳐서 가야바의 집으로 보내지고 그리고 새벽에 빌라도의 재판정으로 보내졌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가야바의 집으로 보내졌다가 빌라도의 법정으로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가야바의 집에서 공회가 소집되었고 공회의 이야기가 기록되었습니다.
 
누가복음은 유대인 공회에서의 이야기는 간략하게 기록했고 요한은 공회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이 공회의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사형에 해당한다고 정죄한 것은 잘못 된 것이고 실제로 사형 집행을 한 것은 빌라도이기 때문에 공회의 이야기를 생략한 듯 합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셔서 끌려가실 때 다른 제자들은 도망을 간 반면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잡히셔서 끌려가실 때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실 때 칼을 빼서 말고의 귀를 자르기도 했고 잡하시기 전까지는 예수님을 지키려고 노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하시고 순순히 잡히셔서 끌려가셨습니다.
 
이 상황에서 다른 제자들은 도망을 갔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서 제사장의 집 뜰에 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 가지는 했지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을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은 이미 만찬 석상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그렇게 할 것이라고 예언하셨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 할 것을 아시고 말씀하셨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베드로가 부인하다.”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예수님을 따라간 베드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갑자기 잡히시는 상황에서 말고의 귀를 베기도 했지만 예수님께서 끌려가는 것을 보고 다른 제자들처럼 도망가지 않고 예수님을 잡아가는 무리들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막14:50절을 보면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라고 기록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히셔서 끌려가시는 것을 보고 일단은 도망을 갔습니다. 예수님을 잡아가는 무리들이 자신들도 잡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들에게 내 제자들은 보내달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상황에서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은 모두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말고 다른 제자 하나가 대제사장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15절을 보면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여기서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갔다고 기록을 하면서 그 사람은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대제사장의 집에 들어갔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사도 요한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요한은 대제사장과 친분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문을 지키는 종들이 요한을 알아보고 들여보냈을 것입니다.
 
반면에 베드로는 대제사장과 아무런 친분이 없기 때문에 종들에 의해서 제지를 당하고 밖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끌고 가는 사람들이 들어간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베드로는 친분이 없기 때문에 입구에서 제지를 당해서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공관복음에는 요한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제자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았고 베드로가 제사장의 뜰에 들어갔다고만 기록을 했습니다. 그러데 요한복음에는 베드로보다 먼저 들어간 다른 제자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베드로가 제사장의 뜰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 다른 제자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16절을 보면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공관복음에서 베드로가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베드로가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제자 즉 대제사장을 아는 그 제자가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고 설명했습니다.
 
요한일 것으로 추정되는 그 제자는 처음에는 그냥 들어갔을 것이고 들어가서 보니까 대문 앞 까지 같이 왔던 베드로가 보이지 않자 얼른 밖으로 나가서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간 것입니다.
 
베드로는 들어갈 수 없는 상항이었지만 요한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오늘날의 표현으로 하면 지인 찬스를 사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예수님을 따르려고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 것으로 추정되는 제자는 자신에게 있는 권한을 잘 활용해서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2. 심문을 받으신 예수님
베드로가 예수님 계신 곳에 들어갔을 때 예수님은 심문을 받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대제사장에서 심문받으신 것으로 기록한 것은 가야바가 아니라 가야바의 장인인 안나스에게 심문을 받으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나스가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질문한 내용을 보면
 
교훈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19절을 보면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공관복음서들이 전하는 바 가야바의 질문과 본문이 전하는 안나스의 질문은 핵심이 다르게 나타난다. 즉 가야바의 심문은 예수님의 인격 곧 예수님이 메시아인가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나스의 심문은 예수님의 의도들에 초점이 있습니다. 안나스는 두 가지를 묻는데 하나는 예수의 제자들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의 제자들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교훈에 관한 것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제자들의 숫자, 성향, 그리고 제자들을 불러 모으는 이유 등에 관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의 의도는 두 가지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1) 가르침을 통해 어떤 것을 기대하는가 즉 그의 교훈들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을 규합하여 무력혁명을 일으키려 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예수님께서 가르치는 중심 교의가 무엇이냐 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구약의 교훈에 반하는 이교적인 사상을 찾아내 정죄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나스는 예수님이 세력을 규합해서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인가와 예수님의 가르침이 이단적인 것이 아닌가에 대해서 질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혁명을 도모한다면 빌라도에게 고발하면 되고 이단성이 있다면 산헤드린 공회에서 처벌하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안나스가 이렇게 질문한 것은 예수님이 은밀하게 무엇인가를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담고 있는 것으로 예수님의 안나스의 질문의 의도를 아시기 때문에
 
나는 드러내 놓고 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0-21절을 보면
18: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18: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안나스는 예수님이 뭔가 은밀하게 추진하는 일들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질문했는데 예수님은 나는 어느 것 하나 숨김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몇 사람을 모아놓고 말한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장소에서 즉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반역을 도모한다거나 이단들은 공개적인 것보다는 은밀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탄은 어둠의 지배자입니다. 사탄이 방법은 은밀하게 사람들을 유혹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것도 은밀하게 하지 않으시고 공개적으로 공개석상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무엇인가 은밀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직하지 못하거나 의롭지 못하거나 한 일일 것입니다. 물론 구제를 할 때는 은밀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은밀하게 무엇인가를 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것들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것 하나 은밀하게 하신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하셨습니다. 교회는 은밀하게 어떤 일을 하는 신비적인 집단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하고 어느 것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당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증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2-23절을 보면
18: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18: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너무나 당당하게 말씀하시자 사람들이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곁에 있던 아랫사람이 예수님을 손으로 때렸습니다. 그리고 네가 감히 대제사장에게 이런식으로 대답을 하느냐고 다그쳤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들으면서 안나스는 할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에서 무언가 꼬투리를 잡아야 하는데 예수님의 대답은 어떤 이의 제기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인 중에 하나가 폭력으로 예수님을 제압하려는 행동을 취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못 이길 것 같으면 폭력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에 대해서 반박할 수 없기 때문에 하인 중에 하나가 폭력적으로 예수님을 제압하려고 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 잘못한 것의 증거를 제시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대답한 것에서 잘못된 대답이 있거나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증거를 제기해 보라는 것이고 그런 증언을 할 사람이 있느냐고 말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
이런 상황에서 그 자리에 있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미 만찬 석상에서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나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을 했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는데
 
문 지키는 여종이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17절을 보면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베드로가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가 요한일 것으로 추정되는 제자에 의해서 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요한에 의해서 들어가는 베드로를 본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당신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가 아니냐 하고 말했습니다.
 
당시 베드로는 제자들 중에서 적극적인 사람이었고 예수님이 중요할 때 데리고 다니는 3명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베드로를 본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문 지키는 여종도 예수님과 함께 다니는 베드로를 보았기 때문에 베드로를 보자마자 당신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정색을 하면서 나는 아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베드로는 갑작스럽게 당신도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하자 당황을 했습니다. 자칫하면 자신도 예수님께서 잡힐 수 있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문 지키는 여종의 말을 듣는 순간 생각할 것도 없이 나는 아니다. 라고 대답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얼른 자리를 피해서 불을 쬐러 갔습니다. 18절을 보면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그런데 베드로가 불을 쬐고 있던 곳에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를 유심히 살펴본 다음에 당신은 그 제자 중에 하나가 아니냐 라고 물었습니다. 25절을 보면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불을 쬐다보면 불빛에 의해서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을 것이고 여러 사람이 베드로를 보면서 당신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중에 한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베드로를 보고 너는 확실하게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한 것입니다.
 
베드는 그런 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시 부인합니다. 아니야 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야 이렇게 대답을 한 것입니다.
 
두 번이나 부인했고 세 번째 부인하자 닭이 울었습니다. 26-27절을 보면
18: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18: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베드로와 함께 불을 쬐고 있던 사람들이 당신도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 베드로가 부인을 하자 이번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가 귀를 잘랐던 말고의 친척이 내가 동산에서 당신이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또 다시 부인을 했습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말고의 친척이 너를 동산에서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을 때 당신이 잘못 본거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서 부인 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모른다고 말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저주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베드로는 여차하면 자기가 위험해 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강력하게 부인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말씀하신대로 그 순간에 닭이 울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기록하지 않았지만 공관복음에서는 베드로가 나가서 심히 통곡했다고 기록을 했습니다.
 
베드로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위기의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믿는 것을 부인하지 않고 목숨을 다해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다음 성령을 받고 교회의 지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능히 감당하게 하시고 능히 모든 일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아서 주님 오시는 날까지 믿음을 굳건하게 지키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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