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이 기쁨이 되리라(12월 10일 오후예배)
성 경 : 요한복음 16:16-24(신약 175)
 
지난 주에는 예수님께서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가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 영원히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와 함께 계실 수 없지만 성령님은 영으로 오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우리를 도우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언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중에 제자들끼리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수군거리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시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희가 앞으로 근심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근심은 오히려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살아간다고 해도 근심하고 걱정할 일들은 여전히 있습니다.
 
신앙적인 면에서도 항상 기쁨과 감사가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근심이 있고 걱정할 일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과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근심거리가 기쁨이 되고 염려가 감사가 되는 역사가 분명히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믿습니다.
 
걱정과 근심과 염려가 기쁨과 감사가 되고,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근심이 기쁨이 되리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제자들의 질문
제자들은 예수님의 최후의 설교를 듣는 중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너희가 나로 인해서 고난을 받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고난을 받는 상황은 내가 나를 보내신 아버지에게 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표현은 “조금 있으면”이라고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16절을 보면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이 말씀은 너희가 조금 있으면 나를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그리고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볼 수 없다고 하시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게 된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도대체 이게 무슨 말씀일까? 하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18절에 보면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예수님은 제자들이 헷갈려 하는 것이 조금 있으면 이란 표현이란 것을 아셨습니다. 조금 있다고 볼 수 없고 조금있다가 보게 된다는 것은 헷갈릴 수 있다는 것을 예수님이 아셨습니다.
 
제자들이 궁금해하는 두 번째는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말씀입니다. 17절을 보면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이미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7장에서 유대인들에게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신 분 즉 아버지께로 가신다고 하신 말씀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셨기 때문에 이 땅에서 하셔야 할 일들을 다 마치신 다음에는 다시 원래 있던 하늘로 가신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지만 당시에 누구도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때론 우리의 지식이나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벧후 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고 경고를 했습니다.
 
성경은 2천 년 이전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비유적인 이야기들과 그 시대의 문화에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오늘날은 그 말씀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가신다는 말씀도 당시 제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단들은 일반 성도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기들은 비밀을 깨달았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방법대로 풀어준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는데 이런 것을 베드로 사도는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른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서 다 아셨습니다. 19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의 마음에는 어떤 의문이 있는지를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까지 아시는 분이십니다.
 
대하 6:30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며 사유하시되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의 모든 행위대로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아심이니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십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아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 너희 근심이 기쁨이 되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볼 수 없고 조금 있으면 보리라는 말씀과 아버지에게 가신다고 하신 말씀에 대해서 제자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앞으로 너희에게 일어날 일들로 인해서 너희가 근심하게 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그런 근심들은 결국에는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이야기 하시면서 너희는 곡하나 세상은 기뻐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절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 밤이 지나면 잡히시고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상황이 일어날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는 순간부터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제자들에게는 근심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는 순간부터 제자들은 도망을 가고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을 하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모여서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제자들은 근심으로 가득찬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제자들에게 근심의 시간이 당시 유대 지도자들과 빌라도에는 기쁨의 시간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유대 지도자들과 총독 빌라도가 서먹한 관계였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판결을 한 뒤에 유대 지도자들과 빌라도는 친밀한 관계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세상의 권세를 쥐고 있던 마귀가 축제를 열 만한 즐거운 일이었고 마귀의 지배를 받는 세상은 기뻐하는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끝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면서 계속해서 겪은 일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잘 지키다 보면 근심할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근심하고 성도가 근심하는 일은 마귀가 좋아하고 세상이 기뻐할 일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그러나 너희의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절을 다시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너희가 곡하는 소리를 세상은 기뻐할 것이지만 너희의 근심하는 것이 오히려 너희에게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죽으신 예수님께서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인해서 슬퍼하고 근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자 기뻐했습니다.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세상에서 근심하고 걱정할 일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권세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근심은 기쁨이 되는 역사가 반드시 일어납니다.
 
22절에도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은 세상의 기쁨과 차원이 다른 것이고 우리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시고 보혜사 성령님이 함께 하실 때 우리가 누리는 기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걱정과 근심과 염려는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기쁨으로 근심을 이시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즐거움으로 걱정을 이기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너희의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고 말씀하시고 그것은 해산의 고통이 기쁨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1절을 보면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
 
예수님은 제자들이 겪게 될 시련의 상황을 해산할 날이 다가오는 산모의 상황과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임신한 산모가 출산일이 다가오면 불안하고 걱정하고 근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 나게 되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게 된 것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게 되고, 산모도 고통을 겪었지만 결국에는 기뻐하게 되는 것처럼 제자들이 앞으로 겪을 상황들은 산모가 해산할 날이 다가오면 느끼는 고통과 근심이지만 해산을 하고 나면 즐거워하게 되듯이 결국에 하나님께서는 영적 산고를 통해서 오히려 더 큰 기쁨과 감사를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3. 구하는 것을 주시리라
예수님은 너희의 근심은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너희의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다시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설교를 하시면서 계속 강조하신 것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는 말씀을 반복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므로 인해서 제자들의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에 대한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묻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3절 앞부분을 보면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여기서 그날은 두 가지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주님이 다시 오실 재림의 그 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날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는 아무도 내게 묻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종말의 날에는 주님께 아무도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그날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십자가에 죽으 실 것과 부활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그날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그날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이 주님을 만나는 그날 아무도 주님께 묻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면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3절을 다시 보면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이름으로 하늘 아버지께 구하면 하늘 아버지께서 너희가 구하는 것을 들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무슨 기도든지 응답해 주시는데 내 이름으로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내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이름으로 기도한 모든 것을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모든 기도가 반드시 응답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지금까지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구하면 그리하면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4절을 보면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는 기도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주시기 때문에 특별히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잡히신 다음부터는 제자들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절실하게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제자들은 주님이 잡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에 비로소 간절하게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언제 기도하게 되나요?
 
모든 것이 잘되고 좋을 때는 간절하게 기도하는 성도가 별로 없습니다. 모든 것이 힘들 때 간절하게 기도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았는데 이제 곧 너희가 간절하게 기도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너희가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시고 너희는 기도의 응답을 받으므로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을 의지해서 간절하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응답해 주셔서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근심이 기쁨이 도고 기도가 응답 받아서 기쁨이 충만한 참빛 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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