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7월 23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창세기 28:10-22(구약 40)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는 말을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제일 힘든 것이 외로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외로움으로 인해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사람들과 잘 어울려서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해서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격적으로 외롭게 살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주어진 상황이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 속의 인물 중에서 야곱은 긴 세월을 외로움 속에서 살아온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야기도 부모 형제를 떠나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외삼촌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혼자서 외롭게 먼 길을 가는 도중에 잠든 야곱을 찾아오셔서 하나님께서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언제나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외롭게 길을 가던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긴긴 세월 하란에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고 마침내 가나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20년이란 세월이 지나서 가나안으로 올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요셉으로 인해서 애굽으로 갈 수 있었던 것도 이 약속의 말씀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언약의 말씀이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어디에 가든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갈 힘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같은 말씀을 주십니다.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하란으로 가는 야곱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을 했지만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의 기도를 들으셔서 리브가가 임신을 했는데 쌍둥이를 임신했습니다.
 
쌍둥이 중에 먼저 태어난 아들은 에서였고, 두 번째 태어난 아들은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고 해서 발꿈치를 잡은 자라는 의미에서 야곱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이삭은 쌍둥이 아들 중에서 에서를 사랑했습니다. 에서는 사냥을 좋아하고 남자다운 면을 과시하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반면 야곱은 조용한 성품의 사람이었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형제가 많은 것도 아니고 쌍둥이 둘 뿐인데 아버지는 에서를 어머니는 야곱을 사랑함으로 쌍둥이 형제는 서로 형제 우애가 깊거나 하지 않고 각자 자기 편한대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상상해 보건데 에서는 사냥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지냈다면 야곱은 집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어머니를 도와 음식을 만든다거나 하면서 지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에서보다 야곱이 더 외로운 생활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야곱이 에서가 배고픈 때를 이용해서 장자의 명분을 넘기게 하고, 어머니의 조언으로 형처럼 하고 들어가서 앞을 잘 못 보는 아버지를 속여서 장남의 축복기도를 대신 받았습니다. 에서는 그 사건을 계기로 야곱에 대해 분노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내가 내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고 마음으로 벼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잠시 피하기 위해서 하란으로 갔습니다. 창27:43-45 을 보면
27:43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
27:44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27:45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이삭은 아들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리브가는 에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고 자칫하면 야곱의 생명이 위험해 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야곱과 에서를 서로 떨어져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놓고 하란에 있는 외삼촌으로 가서 지내라고 당부 했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보내면서 에서의 분노가 금방 풀릴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형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지내다가 형의 분노가 풀린 것 같으면 사람을 보내서 알려주겠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야곱이 하란으로 가게 된 이유는 이 상황을 잠시 피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피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면 야곱이 외삼촌으로 집으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문제에 봉착하게 될 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피하려고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문제들을 만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문제를 피해서 하란을 향해 가던 야곱은 한 곳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본문 10-11절을 보면
28: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28: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야곱이 출발한 곳은 브엘세바이고 지금 잠이 든 곳은 벧엘입니다. 브엘세바에서 벧엘까지의 거리는 약 85Km 정도 되는 거리라고 합니다. 85Km 정도의 거리라면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 벧엘에 도착한 것은 약 3일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였을 것입니다.
 
야곱이 걸어서 이동을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가장 힘든 시간이 3일이 되는 날이었을 것입니다. 하루 이틀까지는 견딜 만 했는데 혼자가 걸어가는 길이 3일째 되던 날이었기에 지칠 대로 지쳤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요셉은 벧엘 원래 이름이 루스라는 지역에 도착을 했고 아마도 저녁이 되어서 쓰러지듯 누워서 잠들었을 것입니다. 집을 떠나 낯선 땅으로 가는 상황에서 누구도 같이 가는 사람 없이 외롭게 길을 가던 야곱은 지쳐 쓰러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지쳐 쓰러지듯 잠들었던 야곱은 꿈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12절을 보면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야곱이 지쳐 쓰러져 잠들어 있을 때 하나님은 꿈에 환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꿈에서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셔서 환상을 보게 하셨을 때에는 야곱이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약 3일간 혼자서 외롭게 길을 가고 있었고 계속 걷다가 지쳐 쓰러진 상황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때는 우리가 가장 힘들고 절망적인 순간일 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침묵하시지만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을 때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지칠 때 그 때가 하나님의 때이고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자포 자기 할 때 그 때가 하나님의 때입니다.
 
2. 말씀하시는 하나님
야곱이 꿈에 사닥다리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는 하나님이 서 계셨고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쳐 쓰러진 야곱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네가 누워있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3절을 보면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첫 번째 말씀은 나는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네가 누워있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아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축복기도를 해 주기는 했지만 이삭의 재산은 모두 에서에게 물려 줄 것이고 자신은 지금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로 하란으로 피난 가는 중이었습니다.
 
야곱은 가진 것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도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꿈에 야곱에게 지금 네가 누워서 자고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자손들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지금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는 희망의 메시지 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무런 희망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함을 느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우리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기도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고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주신 말씀은 모든 민족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는 말씀입니다. 14절을 보면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과 같은 언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야곱은 지금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직도 결혼도 못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의 모든 민족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장차 이루어질 일들에 대해서 말씀을 주시고 희망을 주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네가 복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너로 인해서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말씀을 주십니다.
 
너로 인하여 네 가족과 네 이웃에 있는 사람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우리로 인하여 하나님의 복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하는 복의 전달자요 복음의 전달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세 번째 말씀은 너와 함께 하고 너를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15절을 보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이 말씀은 그 순간에 가장 큰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를 이끌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고 내가 네게 허락한 즉 너와 한 모든 약속이 다 이루어지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혼자 외롭게 길을 가는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지금 너와 함께 있고 너와 함께 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너를 혼자 두지 않겠다 즉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떠날 수 있고 내가 혼자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주십니다.
 
3.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다.
야곱은 지쳐 쓰러지듯 잠들었는데 하나님께서 꿈에 환상 중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꿈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희망을 품고 밧단아람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야곱은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서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16절을 보면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야곱은 지난 3일 동안 걸어서 걸어서 벧엘에 이르렀습니다. 혼자서 외롭게 길을 가면서 지쳐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꿈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시자 야곱은 감동을 하고 감격했습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너를 떠나지 않는다고 하신 그 말씀에 감격을 했고 또한 나는 혼자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여기에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야곱이 말한 하나님이 여기 계신다는 말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하나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여기에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동행하십니다. 우리가 있는 이곳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기 내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 함께 계시거늘 내가 깨닫지 못하고 나 혼자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가 이런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성령님을 통해서 내 안에 내주하시면서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가정과 사업체와 삶의 자리에 하나님이 언제나 그곳에 그리고 여기에 함께 하십니다.
 
야곱은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고백했습니다. 17-19절을 보면
28: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28: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28: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은 이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내가 깨닫지 못했다고 고백하면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그곳을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문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베고 자던 베개를 기둥으로 세우고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벧엘은 “엘의 집” 이란 뜻이고 “엘”은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입니다. 루스는 ‘편도나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편도나무는 우리 성경에서는 살구나무로 영어성경에서는 아몬드 나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루스라는 지명은 이 지역에 영어성경에서 아몬드 나무라고 표현된 나무들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듯 합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고 이후에 이스라엘은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벧엘입니다. 교회가 벧엘이고 우리의 가정이 벧엘이고 주님을 만나는 우리의 삶의 터전이 벧엘입니다. 벧엘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야곱의 마지막 고백은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입니다. 20-22절을 보면
28: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8: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길에서 나를 지켜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옷을 주시고 평안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하나님은 영원히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받으시 드리고 하나님은 영원히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내가 하나님을 영원토록 섬기겠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후에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지내면서 항상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셔서 라반의 집이 복을 받고 야곱도 복을 받아서 마침내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너를 떠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날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나를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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