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로 보지 않으신다.(1월 8일 주님 수세주일)
사도행전 10:34-43(신약 206)
 
우리가 살아가면서 전환점을 맞이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시간적으로 이야기하면 연말이 되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면 새로운 해로 전환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보면 전환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개인의 삶에서도 전환점이 되는 특별한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모든 성도들에게 전환점은 예수님을 만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태 신앙인 분들도 어느 시점에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사건과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새로워지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도 다양한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서 전환점을 맞이해왔습니다. 오늘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초대 교회 선교의 방향이 전환되는 특별한 사건을 기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로 초대 교회가 세워졌지만 아직까지는 유대인 중심의 선교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유대인 선교 중심에서 이방인으로 선교적 관점이 전환되는 사건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 중심선교에서 이방인 선교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하나님은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신다.” 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은 베드로 사도가 고넬료의 초청을 받고 고넬료의 집에 와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고 고넬료의 가정에서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외모라고 한 것은 스스로 선민이라고 생각하는 유대인만이 아니라는 의미로 말씀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자신들만의 하나님이고 자신들만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 자신들과만 만나 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 즉 유대인인가 아닌가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 중에서도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받아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볼 때 외형적인 조건을 보고 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습관을 가진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조건과 배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심을 기념하는 주님 수세주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위해서 거룩한 분이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낮은 곳에 오셔서 낮은 자리에서 모든 인류를 섬기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대할 때 편견을 갖고 하거나 차별하지 말고 모두를 섬기는 주님의 마음으로 모두를 사랑하고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며 살아갑시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외모로 보지 않으신다.”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
베드로 사도는 아직 유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되었지만 아직 유대인 중심의 사역에 치중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베드로 사도를 깨우치기 위해서 환상을 보게 하셨고 고넬료의 초청에 응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넬료의 가정에 와서 고넬료가 하는 말을 듣고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30-33절까지를 보면
10:30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10: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10: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10: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넬료의 이 말을 들은 베드로 사도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유대주의 선입관이 깨졌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말을 듣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은 유대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은 외모로 보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이 깨달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은
 
각 나라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받으신다고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34-35절을 보면
10: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10: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베드로의 유대주의 편견을 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고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따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고넬료의 집에 와서 고넬료의 말을 듣고 자신이 본 환상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 중 즉 모든 나라와 민족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받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출생성분을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모태신앙의 사람들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느나라 어느민족 어느 집안에 속한 사람이고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 있는지를 보십니다.
 
지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받으십니다.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를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의를 행하는 사람을 받으십니다. 35절을 다시 보면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당연히 의를 행하는 사람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믿음과 행함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인데 믿음이 좋다고 하는데 믿음이 행함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진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당연히 의를 행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어느 민족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의를 행하는 사람을 받아주십니다. 딤전 6: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현대어 성경에서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라는 말을 “복음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는데 의를 행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은 경건을 즉 복음을 자신의 이익의 도구로 삼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신실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말씀의 도를 따라서 의를 행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2023년 경건한 그리스도인 즉 하나님을 신실하게 경외하는 성도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의를 행하는 것으로 나타내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받아주심으로 하늘의 복을 누리는 행복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은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상관없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습니다. 43절을 보면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거룩한 성도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 때문에 그 이름을 힘입어서 모든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님을 믿으로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고 인정을 받고 구원받은 성도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죄 사함과 구원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성도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은총을 누리고 하늘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2. 화평의 복음
베드로 사도는 고넬료의 가정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놀라운 일을 보고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방인인 고넬료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그동안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증거했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에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화평의 복음이라고 증거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증거하는 화평의 복음이신 예수님은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소개했습니다. 36절을 보면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여기서 ‘만유’는 ‘세계 만물’ 또는 ‘모든 사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모든 사람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주 되시는 또는 세상의 모든 것의 주 되신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따라서 이 세상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고 또한 모든 사람들의 주인이십니다. 모든 만물과 모든 사람들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방인인 고넬료는 유대인들과 같은 메시아 대망 사상은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전하는 것에 대해서 아직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이스라엘에 주둔하고 있던 백부장으로 그 시대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은 모든 만물과 사람들의 주인이시며 유대인들이 간절히 바라던 그리스도라고 소개한 것입니다.
 
만유의 주 되신 그리스도는 화평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전하려고 한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라는 장벽이 있어서 가까이 할 수 없는 관계였지만 예수님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장벽이 무너졌고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가 되게 하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복음은 화평의 복음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화평하게 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진실한 성도는 정죄하고 비판하기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화평을 이루어가는 사람입니다.
 
화평의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에게 하나님은 성령의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습니다. 38절을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베드로 사도는 성육신 예수님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을 기름 붓듯 부어주셨다고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완전한 인간이시기 때문에 공생애 사역을 하시는데 성령의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물 위로 올라오실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오늘 이시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시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성령 충만한 가운데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선한 일을 하셨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선한 일은 착한 일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선하고 착한 일입니다.
 
또한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이 물러가고 질병이 고침받고 삶을 묶고 있는 모든 어둠의 영들이 물러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런 모든 일들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이라고 증거했습니다. 38절을 다시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선한 일을 하게 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고치게 하셨는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신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성령의 임재하심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2023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시면서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심을 믿습니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3. 우리는 그의 증인이라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는 분이 아니라고 말한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신 일을 증거하게 하신 것이고 우리는 그의 증인 즉 예수님의 증인이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우리는 그의 증인이라고 하신 것은
 
그가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말했습니다. 39절을 보면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초기에 부름을 받아서 예수님의 사역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담대하게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실 때 그중에서 특별히 3명의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다니실 때가 있었는데 베드로는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항상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따라서 베드로 사도는 나는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증인 되어야 합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베드로 사도는 계속해서 부활의 증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39-41절을 보면
10: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10: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10: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베드로 사도는 우리는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것을 우리가 직접 보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을 직접 보았다고 증언하면서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음식을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공생애을 사셨고 또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내가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지막 날 재판장으로 정하셨다고 말했습니다. 42절을 보면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전도하라는 말에 대해서 현대어 성경에서 “예수께서는 이 기쁜 소식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라고 우리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전도는 기쁜 소식 즉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또 다른 내용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 재판장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날 심판의 주님으로 오신다는 것을 전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방인 고넬료에게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는 사람들을 받으셔서 예수님을 믿으므로 죄 사함과 구원을 받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다고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 즉 조건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주님 앞에 어떤 모습인가를 보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편견을 버리라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 외모 즉 편견 없이 지금의 믿음으로 보시듯 우리도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편견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를 위해 선한 일을 하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들과 환경을 고쳐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올 한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온전한 회복이 일어나고 진정한 하늘의 복을 누리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