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시는 하나님(9월 11일 낮 예배 설교)
누가복음 15:1-10(신약 121)
 
추석 명절 연휴 기간임에도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한편으로 하필이면 명절 연휴에 주일이 있어서 하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즐거운 명절이지만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기에 은혜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즐거운 명절 연휴 기간이지만 태풍 피해를 입은 분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태풍 피해 뿐만아니라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우리 주변에 있을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우리 주변에 힘들어 하는 분들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목자에게 양이 100마리가 있었는데 양을 치고 데리고 와서 세어보니까 한 마리의 양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목자는 양 한 마리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다른 양들은 들에 두고 잃는 양을 찾으러 가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들에 둔다는 것은 들에 방치해 둔다는 의미가 아니라 양을 칠 때 일정 기간 동안에는 들에 머물기 때문에 저녁 때가 되면 잠을 자기 좋은 곳을 찾아서 양을 데리고 가서 양들을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양을 치는 사람들은 혼자서 움직이기 보다는 여럿이 함께 다니기 때문에 양 99마리를 들에 둔 것은 다른 목자들이 있기 때문에 맡기고 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잃은 양을 찾으러 나선 목자는 양이 어디 쯤에 있을 것인가를 역추적해서 찾아다니고 결국은 잃은 양을 찾아서 데리고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비유는 한 여인이 열 드라크마를 가지고 있다가 하나를 잃어버렸는데 한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서 불을 켜고 구석구석을 쓸면서 찾아내기까지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 드라크마를 결국에 찾아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시는 분이고 잃은 영혼을 찾았을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기뻐하시는 하나님” 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수군거리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시게 된 것은 당시 예수님 주변에 두 부류의 사람들 때문인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 주변에 있던 두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1절을 보면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세리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세금을 징수하는 세금 공무원들로 유대인 사회에서는 로마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세금을 거두어서 로마에 바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세금을 징수하는데 있어서 정부에게 요구하는 액수에 추가해서 세금을 거두어 들이고 로마 정부에 바치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갖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세리들을 매국노이자 죄인으로 취급을 한 것입니다.
 
또한 여기 죄인들이라고 표현된 사람된 사람들은 비도덕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창녀라든지, 속이는 자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죄인 취급을 했습니다. 또한 불명예스러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죄인으로 취급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공민권인 박탈당한 사람들로 공직에 진출할 수 없고 심지어 법정 증언권도 박탈당한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는 세리, 목자, 행상인, 피혁공 등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예수님 주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그런 사람들을 죄인들로 취급을 했지만 다르게 보면 유대인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대 사회에서 왕따 당하던 사람들인데 예수님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예수님은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 받기 위해서 모인 것입니다.
 
반면에 문제를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절을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께 나온 것은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기 위해서라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에게 흠을 찾기 위해서 온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보는 관점이 다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목적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에서 문제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었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이 유대 장로들의 전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닌지를 자세하게 살펴보는 상황입니다. 마치 경찰이나 검찰처럼 예수님이 혹시 무슨 잘못을 범하지는 않는가 찾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문제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문제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보이게 마련입니다. 문제가 아닌 것도 문제로 보이는 것이 경우들이 있습니다.
 
같은 일을 보고 같은 상황을 보고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갖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은혜 받을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경에서 문제점을 찾으려하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문제가 뭔가를 찾으려고 하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결국 그들은 수군거렸습니다.(비판-불평) 2절을 다시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여기서 사용된 수군거리다는 단어의 의미는 불평하다. 원망하다. 는 의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바리새인들은 죄인이라고 상종도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모여서 열심히 말씀을 듣고 은혜받는 것을 보고 불평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용납하고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신 것에 대해서 비판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자신들은 상종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유대인 사회에서는 집단 왕따를 시키는 사람들을 예수님을 기쁘게 받아주셨습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기쁘게 받아주는 것입니다. 추석 명절인데 우리 주변에 명절을 즐기지 못하는 소외된 이웃은 없는가 둘러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기쁘게 받아주셨고 그런 분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은혜를 받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런 예수님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 사람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불평하는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회의 기득권들보다는 소외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돌보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소외된 사람들을 기쁘게 받아주실 때 기득권 세력들은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예수님을 향해 비판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2. 잃은 양을 찾은 목자
3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예수님께서 소외된 사람들을 받아주신 것을 보고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잃은 양을 찾은 목자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을 찾는 목자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절을 보면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예수님은 그 시대 유대인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목자와 양의 이야기를 하셨는데 목자가 양을 치는 중에 매일 자기 양들을 점검하는데 어느 날에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양들과 함께 쉬려고 들판에서 양들을 점검해 보니까 한 마리의 양이 없어졌습니다.
 
목자의 양은 100마리인데 아무리 세어봐다 99마리 밖에 없었습니다. 목자가 양들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까 한 마리의 양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목자는 양 100마리에 대해서 다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생긴 양이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목자는 다 파악하고 있었기에 한 마리 양이 없어졌을 때 없어진 양이 어떤 양인지를 알았습니다.
 
목자는 한 마리의 양이 없어진걸 알고는 다른 양들은 들에 다른 목자들에게 부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서 오던 길을 되돌아 갔습니다. 목자는 자기 잃어버린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닌다는 것입니다.
 
한 몇 시간 정도 찾다가 못찾겠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그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한 영혼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찾으십니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 온 산과 들을 헤매다가 결국은 잃어버린 양을 찾았습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았다는 것은 그 양에 대해서 알기 때문에 자기 양을 찾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어깨에 메고 갔습니다. 5절을 보면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양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그 양이 평소에도 목자의 인도를 잘 받지 않고 제멋대로 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자를 잘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하다가 길을 잃어버렸고 혼자서 헤매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목자는 말썽을 부렸던 양을 찾은 다음에는 너무나 기뻐서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어깨에 멧다는 것은 양이 길을 잃고 헤매다가 지쳐 있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목자는 지친 양을 어깨에 메고 양들이 있는 곳으로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론 우리가 길을 잃은 양처럼 내 멋대로 살려고 할 때가 있지만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으십니다. 그리고 지쳐 있던 우리들을 찾으신 주님은 우리를 어깨에 메고 쉬게 하십니다.
 
신 33:12 “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살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마치도록 보호하시고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
 
잃어버렸던 양을 찾은 목자는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6절을 보면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목자는 잃은 양을 찾아서 어깨에 메고 아마도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친구들을 이웃들을 초청을 해서 함께 먹고 즐기자고 말하면서 잔치를 열었습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을 찾은 것은 물질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셨습니다. 목자가 양을 찾고 나서 친구와 이웃을 초청해서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양 한 마리의 값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하면서까지 즐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잃은 것을 찾는 것은 물질적 가치를 뛰어넘는다는 의미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7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영혼이 돌아오는 것은 회개할 것 없는 아흔아홉의 의로운 사람들로 인해서 기뻐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기쁜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한 영혼이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사람들은 말썽부리던 양이 길을 잃어버렸을 것이고 그런 양은 못 찾으면 조금 아쉽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 번 목자의 말을 안들은 양은 또 다시 안 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못 찾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개할 것 없는 의로운 사람 99명보다 회개하고 돌아온 한 사람으로 인한 기쁨이 더 크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마치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언제나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한 영혼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돌아온 탕자를 기쁘게 맞이한 아버지처럼 언제나 두 팔을 벌리고 기쁘게 맞이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두 팔을 벌리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기쁘게 맞이해 주어야 합니다.
 
3. 한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
예수님은 두 번째 비유로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맞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여인이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8절을 보면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한 드라크마는 한 데나리온과 동일한 가치로서 오늘날의 일반 노동자 하루 품삯에 해당 되는 금액입니다. 그러나 유대 여인에게 있어서 열 드라크마는 결혼 증표에 해당하는 귀중한 물건입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때 결혼 지참금 형식으로 드라크마 열 개를 줄에 끼워서 주는데 여인은 그것으로 자신의 머리를 장식하곤 했습니다.
 
오늘날 근동지방에서 많은 여인들이 머리 장신구로서 걸치고 다니는 100개의 금화나 은화에 비하면 참으로 초라한 장신구이겠지만 열 드라크마는 여인의 지참금이기 때문에 귀중한 재산이며 비상금이 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 여인들은 잠을 잘 때에도 이를 결코 풀어 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열 드라크마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결코 장신구의 역할을 다할 수 없다고 합니다.
 
여인에게 있어서 한 드라크마는 돈의 가치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여인이 그렇게 귀중한 결혼 증표에 해당하는 열 드라크마 중에서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여인은 그것을 찾을 때까지 부지런히 찾습니다. 8절을 다시 보면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여인에게 있어서 한 드라크마는 단순히 노동자의 하루 품삯과 비교할 수 있는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찾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먼저 등불을 켭니다. 집안은 어둡기 때문에 동전 하나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은 등불을 켜서 바닥이 잘 보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집안 곳곳을 구석구석 쓸면서 찾을 때까지 찾았습니다.
 
동전 하나가 그 이상의 가치가 없다면 그렇게 애를 써서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럼 다른 드라크마로 대신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증표라는 측면에서 잃어버린 드라크마가 갖는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고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찾는 것입니다.
 
찾으매 이웃과 함께 즐깁니다. 9절을 보면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한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이웃 사람을 불러서 함께 즐기자고 하면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즐긴다는 것은 먹고 마시고 즐겁게 노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실제로는 한 드라크마보다 더 많은 돈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을 암시한 것입니다. 한 드라크마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더 많은 지출을 하더라고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10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은 물질적 가치를 뛰어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할 때 이렇게 기뻐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 중에 하나가 잃어버린 영혼 즉 예수님을 믿지 않는 영혼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 동안 믿지 않는 가족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친구와 이웃들이 우리를 통해서 주님께 돌아서는 역사가 일어나고 그러므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길 소망합니다.
 
참빛 모든 가족이 하나님의 어깨 위에 있는 사람들이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복을 누리는 모든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