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다.(7월 24일 주일 오후 예배)
성 경 : 마가복음 6:30-44(신약 63)

4주간에 걸쳐서 예배자로 세움받기 위한 훈련을 했습니다. 지난주에는 각자의 찬양시나 은혜받은 찬양을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은혜 넘치는 시간이었습니다. 찬양시를 지은 분들은 좋은 곡을 만들어서 찬양으로 불려 졌으면 좋겠습니다.

받은 은혜를 고백하고 기록하는 습관을 갖는 것도 믿음 생활하는데 있어서 좋은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매일 수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보고 하면서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기록해 보고 그중에서도 은혜받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나누어 보는 것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6월 12일 오후 시간에 마가복음 6:1-13절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14-29절까지는 13절까지의 말씀과 30절 사이에 삽입된 이야기입니다. 헤롯이 침례 요한을 죽인 이야기 즉 침례 요한의 순교 이야기를 삽입했는데 헤롯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죽인 침례 요한이 부활한 것 이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침례 요한의 순교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13절에 이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공통적으로 오병이어 이야기 앞에 요한의 순교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요한의 순교 이야기는 당시 예수님의 사역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그래서 공관복음에서는 요한의 순교 이야기에 이어서 오병이어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시대적 상황을 이야기 한 것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의 메시지를 듣고 위로를 받고 신앙적인 힘을 얻었던 많은 유대인들이 요한이 순교한 후에는 맘 붙일 곳이 예수님밖에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오병이어 기적에 대한 말씀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거두었더니 12 바구니에 찼습니다.

오늘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다.”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계속 바쁘게 지내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들어서 잠시 쉴 여유도 없으셨습니다.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고 기록할 정도로 바쁘게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사역하시던 예수님과 제자들이 잠시 한적한 곳에서 휴식을 갖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으로 가신 것에 대해서

먼저 사도들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30절을 보면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여기서 사도들이 예수님 앞에 모여서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했다는 것은 7-13절의 상황에 대한 설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둘씩 짝을 지어 보내시면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빈손으로 가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둘씩 짝을 지어 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병자를 고쳤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나가서 사역을 하면서 경험한 놀라운 일들을 예수님에게 보고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았고, 병자를 고치시는 것을 보았지만 자신들에게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보냄을 받고 가서 사역을 하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귀신이 물러가고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말씀 듣고 하는 신앙이 아닌 나가서 전하는 신앙이 될 때 실재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길 사모하면서 전도하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선포할 때 우리를 통해서도 귀신이 물러가고 질병이 치유되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나가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하길 원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해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 고침을 받는 삶이 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며 기도해서 기적을 행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또한 주중에 세상에서 살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주님 앞에 나와서 고백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주일 날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릴 때 주중에 우리가 경험했던 은혜를 나누고 고백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찬양할 때 기도할 때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해서 하신 일들을 증거하고 고백할 때 더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31절을 보면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파송을 받아서 사역을 하고 돌아왔는데 돌아와서도 잠시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을 정도로 계속 바쁜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하고 돌아온 제자들이 계속 바쁘게 할 수 없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너희는 잠시 한적한 곳에 가서 쉬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쉬라는 말은 “충분한 휴식 시간을 가져라”는 의미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이 쉬운 사역이 아니라 힘이 많이 드는 사역인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병자를 고치는 사역과 영적인 사역은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통해서 하는 사역이지만 육체적으로는 지치기 쉬운 사역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세상에서 매일 바쁘게 일하다가 지치기 쉽고 힘들어 하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쉴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천지창조를 하실 때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칠 일에 안식하시면서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쉬는 날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때론 우리 육체가 지칠 때가 있고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올 때 한적한 곳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적당한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고장 날 수 있습니다. 적절한 안식과 휴식을 잘하는 것도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32절을 보면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 가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고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으로 가시는 방법은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지나서 사람들이 모여있지 않은 곳으로 가신 것입니다. 배를 타고 건너가시면서 제자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셨고, 사람들이 모여있지 않은 곳을 찾아가서 휴식을 취하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와 똑같이 힘들고 지치고 배고프고 고통스러움을 느끼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종종 혼자 산에 올라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쉬시기 위해서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2. 큰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충분한 휴식 시간을 주고 예수님도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한적한 곳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의도하신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려고 하는 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33절을 보면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예수님은 배를 타고 이동하시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 한적한 곳으로 가시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타신 배가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알아채고 걸어서 예수님께서 가시고자 하는 곳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타신 배는 갈릴리 호수에서 급하게 노를 젓지 않고 천천히 노를 저어서 목적지로 갔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를 탄 채로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목적지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갈릴리 호수에 역풍이 불거나 기상 이변 상황으로 도착시간이 늦어졌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예수님께서 타신 배가 걸어서 온 사람들보다 늦게 도착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많은사람들이 그곳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침례 요한이 순교한 후라 예수님에게 더 많은사람들이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 외에 희망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고 제자들도 그런 사역을 한 후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나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가르치셨습니다. 34절을 보면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예수님께서 배로 이동하시는 상황에서 많은사람들이 여러 마을에서 예수님을 찾아서 모여들었습니다. 한적한 곳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려고 하셨지만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모여든 많은 사람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침례 요한이 와서 말씀을 선포하고 침례를 줌으로 많은사람들이 침례 요한을 통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침례 요한이 어이없이 헤롯에게 순교를 당하고 나서 많은 유대인들이 절망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 앞에 무기력하게 순교를 당한 영적 지도자를 보면서 절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상처받은 백성들을 위로하기 보다는 자신들을 비난했던 요한이 죽은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건재하지만 백성들은 영적으로 갈 곳을 잃었습니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절망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예수님에게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유대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지금 그들의 상황은 목자 없는 양같이 방황하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지도자를 잃고 방황하는 양 같은 처지인 유대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쉬시려고 그곳에 가셨지만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선포하셨을 것입니다. 절망하는 그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말씀을 전하셨을 것입니다.

교회는 절망하는 세상에, 힘들고 좌절한 사람들에게 율법적인 책망이 아닌 희망과 위로의 말씀을 주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게도 희망과 위로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목자 없는 양같이 절망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와 격려를 해 주는 것입니다.

3.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예수님에게 나온 무리들을 보시면서 목자 없는 양같이 방황하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는 무리들을 위해서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것은 날이 저물어가고 저녁 식사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35절을 보면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이곳에 도착한 시각이 언제쯤인지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 동안 예수님께서 가르쳤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시각은 일반적으로 저녁 먹을 시간 곧 초저녁 때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가르치느라고 시간이 지난 것을 못 느끼는 듯하셨는데 시간의 경과를 알리기 위해서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식사 문제에 대해서 제안을 했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가르치는 일을 중단하고 사람들을 해산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그곳이 “빈들” 곧 보통 때는 인적이 없는 한적한 광야이기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한적한 광야이기 때문에 인적이 드문 곳이고 가까운 곳에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식당이 있다고 해도 그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힘을 얻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어떤 일을 할 때 모든 일이 항상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많고 저녁 때는 되었고 먹을 것은 없고, 먹을 것을 구할 수도 없는 광야였습니다.

난감한 상황이라 제자들은 당황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면서 지금 너희에게 있는 것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36-38절까지를 보면
6: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6: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6: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제자들이 제시한 대안은 사람들을 보내서 마을에 가서 사 먹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답답하다는 듯이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가 먹이리이까? 즉 이백 데나리온의 돈이 있어야 하고 또한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을 양식을 지금 어디 가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도 안 되는 것을 시킨다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1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값에 해당하는 돈인데 제자들은 적어도 지금 200데나리온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런 돈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돈이 있어도 음식을 어디서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을 돌려보내서 스스로 저녁을 해결하라고 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는지 알아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지금 있는 것이라도 가져오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사실 자신들이 먹을 것도 준비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먹을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의하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도 한 아이가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제자들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상황이고 한 아이가 예수님에게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나누어 주시매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거두어 들이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오병이어를 가지고 차고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39-44절을 보면
6:39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6:40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6: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6:42 “다 배불리 먹고”
6: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6: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지금 먹을 것이 없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백 명씩, 오십 명씩 식사를 할 수 있는 대형을 이루어 앉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축사하셨다는 것은 감사 기도를 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손에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풍족하게 먹고 차고 넘치는 은혜를 채워주심을 감사하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다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리고 많이 남아서 남은 것을 거두었더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찼습니다.

오전 예배 시간에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는 말씀을 나누었는데 일용할 양식이란 필요한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이런 은혜가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오병이어 밖에 없지만 그것이 주님 손에 올려질 때 모두 풍족하게 먹고 남는 것이 열두 바구니에 차고 넘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병이어가 주님의 손에 올려져야 하는 것이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분명히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주님 손에 우리의 오병이어를 올려드리고, 주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하며 실망하지 말고 기도의 자리에 앉아서 기다립시다. 12제자가 남자가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나누어주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앞에 있는 사람들이 다 먹고 날 즈음에 떡과 물고기를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고 떼를 지어 앉고 기다렸더니 모두 충족하게 먹고 남았습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믿고 기다리면서 기도의 자리에 있을 때 늦을지는 몰라도 반드시 풍족하게 채워지고 남은 것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차고 넘치는 주님의 은혜가 참빛 교회 모든 가정과 사업체와 직장 위에 임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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