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7월 24일)
누가복음 11:1-13(신약 112)

기도는 영적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호흡을 하지 않으면 숨이 멈추게 되고 결국은 죽게 되는데 마찬가지로 성도가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 호흡이 멈춘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호흡은 우리가 호흡을 하겠다고 의지적으로 노력함으로 호흡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에 특별한 이상이 생기지 않는 한 누구나 자연스럽게 호흡을 합니다. 살기 위해서 호흡을 억지로 하면서 지금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몸의 기능이 이상이 생겨서 자가 호흡이 불가능한 경우에 산소호흡기를 착용해서 인공적인 방법으로 호흡을 해서 생명을 유지하게 합니다.

기도가 영접 호흡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영적 자가 호흡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영적 산소호흡기를 씌워줘야만 영적 호흡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몸이 스스로 호흡을 하듯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 앞에서 영적 호흡인 기도를 자연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인 호흡을 스스로 하지 못할 때 강제로 호흡을 하게 만드시려고 어려운 일을 만나게 하시거나 문제 거리를 만나게 하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몸이 자가 호흡을 하듯 기도의 자가 호흡을 합시다. 억지로 기도하게 만드실 때까지 영적 호흡을 멈추지 말고 스스로 늘 깨어 기도함으로 영적 산소호흡기를 사용하게 되는 일이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오늘 말씀은 제자 중에 하나가 예수님에게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주세요. 라고 말한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라고 요청을 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주기도문으로 마태복음은 조금 더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고 누가복음에서는 중요한 내용만 기록했습니다.

당시 어떤 종교 공동체에서나 지도자들이 기도를 가르치는 일은 일반적인 것이었습니다. 랍비들은 자기의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만들어 주었고, 일반 유대인들도 정시에 일정한 형태의 기도문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침례 요한도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만들어서 가르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그들의 공동체를 특징 지워줄 수 있는 기도를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후에 제자 중 하나가 다른 공동체 특히 요한 공동체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도를 요한이 가르쳐 준 것처럼 우리에게 그런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제자의 요구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응답받는 기도는 어떤 기도인지에 대해서 말씀하시면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게 주시는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 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1.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장 모범적인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는 주기도문의 전체를 기록했지만 누가는 중요한 핵심적인 내용만을 기록을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에 대해서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길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의 기도 중에 가장 먼저 해야 할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 되다는 뜻으로 하나님은 우리들과 구별 되어지는 분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존재가 아니시고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와 구별되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과 구별되는 창조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가 기도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하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삶 속에 임하기를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겨자씨가 자라나듯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그의 나라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길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주님 다시 오실 때 까지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더 확산되길 기도하고 마침내 주님의 재림 때에 그의 나라가 완성되기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해서 기도할 때 우리의 삶의 현장에 하나님 나라의 은총과 복이 임합니다. 어둠의 영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활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절을 보면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그날 그날의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용할 이란 말은 충분한 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날마다 충분한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있어 매일 매일 필요한 양식을 공급받는다는 것은 매우 절실하고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날그날의 삶에 필요한 양식이 절박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날그날 주님이 주실 풍성한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매일 매일 필요한 양식을 하나님께로부터 얻었다는 사실이 근거가 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간 매일매일의 일용할 양식을 충분하게 공급받은 것처럼 그날그날의 필요를 충분하게 채워주시기를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육체적인 양식이든 영적인 양식이든 그것을 공급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심을 믿는 신앙이 중요하고 그런 믿음으로 하나님께 매일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영적인 삶을 위한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4절을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 받은 것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잘못한 것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늘 아버지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내가 용서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하고 내가 용서할 때 나의 죄 사함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영적 삶을 위해서 시험에 들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언제나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는 것은 시험에 들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지만 시험에 빠져들지 않도록 도우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영적인 삶을 위해서 용서와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응답받는 기도)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에 대해서 즉 모범적인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신 다음에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두 가지 요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기도가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 즉 응답받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 두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첫째,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입니다. 5-6절을 보면
11: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11:6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주신 다음에 기도에 대한 예를 들어서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를 들어서 말씀하신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 밤 중에 찾아온 친구를 위해서 이웃집에 사는 친구에게 가서 구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집에는 갑자기 찾아온 친구를 대접할 양식이 없는 상황인데 옆에 사는 친구는 늘 양식이 풍족한 집안이고 먹을 것이 늘 준비된 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친구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겠는데 자기 집에는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옆집 친구에게 가서 먹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위해서 친구에게 가서 꾸어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집에 찾아온 친구를 위해서 꾸어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할 때 자기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보다 먼저 다른 사람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우선순위는 내 문제보다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가 먼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외면하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한 기도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중보하며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더 빨리 응답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는 것이 응답받는 기도의 중요한 비결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 간청하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7-8절을 보면
11: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11: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갑자기 찾아온 친구에게 먹을 것을 대접하기 위해서 옆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고 먹을 것을 빌려달라고 하는 상황에서 친구는 밤이 늦어서 문은 이미 닫았고 아이들과 함께 침실에 누어 있어서 빌려줄 수가 없다고 대답하겠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친구라서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한 밤 중에 내 집에 와서 간청하는 것을 보고 차마 그냥 잘 수가 없어서 너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말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간청하는 것 때문에 너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간청이란 단어에 대해서 현대어 성경은 “간곡히 조르는 것”이라고 표현했고, 공동번역은 “귀찮게 졸라대면” 이라고 표현했고, 우리말 성경은 “끈질기게 졸라 대는 것”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간청이란 단어의 헬라어의(아나이데이아) 의미는 “부끄러움이 없음” 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간청 즉 간곡하게 조르고, 귀찮게 졸라대고, 끈질기게 졸라 대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부끄러움 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남이 내 기도를 들으면 어떻게 하나, 이런 것도 기도해야 하나, 그런 생각하지 말고 염치 불구하고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간절하게 기도하면 하늘 아버지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귀찮아서라도 응답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 좋으신 아버지(좋은 것 – 성령을 주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늘 아버지는 좋으신 아버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 아버지는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고 좋은 것을 넘치도록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좋으신 아버지 앞에 우리는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9-10절을 보면
11: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1: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것은 앞에서 말씀하신 간청이란 단어에 포함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원하는 것을 간절하게 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구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찾는다는 것은 기도한 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의미도 있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또한 두드린다는 말의 의미는 끈질기게 열릴 때까지 두드린다는 의미로 기도의 계속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 집에 가서 한 밤중에 문을 두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기도의 문을 두드리라 라는 것입니다.

좋으신 아버지는 우리가 구하면 그것을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기도한 것이 이루어질 기대하면서 좋으신 아버지를 찾으면 우리가 간구한 것을 찾게 하십니다. 멈추지 않고 문을 두드리면 결국 응답의 문이 열리고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예수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의 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11-12절을 보면
11: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1: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예수님께서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라고 소개하시면서 이 세상의 아버지들이 아들이 와서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아버지가 있겠느냐?

또 알을 달라고 하는데 여기서 알은 계란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계란을 달라고 하는 아들에게 전갈을 줄 아버지가 세상에 있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아버지들도 자녀들에게 나쁜 것과 해가 될 것을 주지 않는 것처럼 하늘 아버지께서도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나쁜 것과 해가 될 것을 주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편적으로 아버지들의 마음이 나쁘고 해가 될 것을 주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아버지들도 그런데 하물며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까지 주신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가 기도한 것에 대해서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아버지이심을 믿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기에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에게 응답하십니다.

아버지이시기에 구하면 주시고, 찾는 자들이 찾게 하시고 두드리는 이들에게 문을 열어주십니다.

예수님은 기도에 대한 결론을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좋은 것을 주시는데 가장 좋은 것은 성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 즉 성령님을 주십니다.

13절을 보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같은 내용을 기록한 마태복음에서는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기록한 반면 누가는 하늘 아버지께서 성령을 주신다고 기록했습니다. 두 구절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아버지로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좋은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와 은사라는 말을 하는데 은혜는 좋은 것을 주신다는 의미이고 은사는 은혜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란 의미입니다.

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은사는 ‘카리스마’ 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두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값없이 주신 선물이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값없이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을 받고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은 물질적인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입니다.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할 때 예수님은 기도의 본이 되는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고, 우리의 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와 함께 간청하는 기도일 때 더 잘 응답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기도하는 성도들에게는 좋은 것을 주시고, 기도하는 성도들에게는 성령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언제나 아버지 앞에 마음을 모아 기도함으로 좋은 것을 응답으로 받고 성령 충만을 받는 참빛 교회 모든 가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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