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 나타나는 기도와 찬송(4월 6일 주일 오후 예배)
성 경 : 사도행전 16:25-40(신약 215)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귀신들려 점치는 여종을 고쳐줌으로 인해서 고난을 당했습니다. 빌립보 지역의 관리들과 상관들은 정당한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서 때리고 옥에 가두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재판도 받지 않고 매로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유대인들은 매를 때릴 때 40대를 넘지 못하게 율법에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을 때는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았습니다.
신 25:3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매를 지나치게 때리면 네가 네 형제를 경히 여기는 것이 될까 하노라”
고후 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빌립보는 유대인들이 아니기 때문에 매를 칠 때 상관이 멈추라고 할 때까지 때렸고 현대어 성경은 “사정없이 내리치는 채찍에 등이 벗겨지고 피가 흘러 내렸다. 치안관은 두 사람을 감옥에 처넣으면서 만약 그들을 놓쳐 버리는 날에는 목숨이 붙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간수에게 을러 댔다. 간수는” 고 번역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누명을 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죄가 없지만 억울한 누명을 쓴 채로 정당한 재판도 받지 않고 감옥에 갇힌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해서 받는 고난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빌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함으로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25절을 보면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현대어 성경의 번역으로 보면 등이 벗겨진 채로 채찍으로 사정없이 맞아서 피를 흘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깊은 감옥에 갇혔고 발에는 차꼬가 채워진 상태였습니다. 채찍에 맞아서 찢어진 상처에 약도 바리지 못함으로 인해서 밤이 되었을 때 고통과 통증으로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과 실라는 울부짖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고통을 이기는 방법을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임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 질병으로 인해서 심한 고통을 느낄 때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고 고통 속에서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 기도하고 찬송할 때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말씀을 중심으로 “기적이 나타나는 기도와 찬송” 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함으로 나타난 기적을 볼 수 있는데
- 옥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벗어졌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고통 속에서 기도하고 큰 소리로 찬양할 때 감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감옥을 지키는 간수와 감옥에 갇힌 죄수들은 바울과 실라가 채찍으로 맞아서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송할 때 너무나 고통스러우니까 고통을 하소연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났습니다. 26절을 보면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기도와 찬송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감옥의 터가 흔들렸습니다. 하나님은 지진이란 천재지변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일들이 종종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 지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왕상 19: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실 때 지진 현상과 불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연 만물을 다스리는 분으로 지진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응답을 나타내기도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진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사 29:6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은 지진은 종말에 때에 나타날 현상 가운데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지진이 있었습니다. 마 27: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도 지진이 있었습니다. 마 28: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성경에 지진을 기록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와 찬송을 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응답하시고 임재하셔서 바울과 실라가 갇힌 감옥의 터를 흔들리게 하신 것입니다.
지진으로 인해서 옥문이 열렸습니다. 26절을 다시 보면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하나님께서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송을 받으시고 지진으로 응답하심으로 옥터가 흔들리고 옥터가 심하게 흔들리자 모든 감옥의 문들이 열렸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감옥의 문만 열린 것이 아니라 여기 기록된 표현은 모든 감옥의 문이 다 열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진으로 옥터가 움직이게 하셨고 옥터가 움직이므로 감옥의 문들이 다 열리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 우리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영적인 옥문이 열릴 줄 믿습니다. 우리 앞으로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들이 무너지고 열리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벗어졌습니다. 26절을 다시 보면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바울과 실라만 매인 것이 풀어졌다고 기록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매인 것이 벗어졌다고 기록했습니다. 헬라어 “πάντων” (판톤)은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감옥에 갇혀있던 모든 사람들의 매인 것이 벗어졌다는 뜻입니다.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송이 바울과 실라에게만 기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날 그 감옥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났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도들 때문에 주변 사람들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야곱 때문에 외삼촌 라반이 복을 받았고 요셉 때문에 보디발이 복을 받았고 애굽이 기근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을 들은 사람들에도 같은 기적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참빛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복을 받게 하는 복을 흘려보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 간수를 살렸습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늘고 있습니다. 작년 경찰 잠정치로 1만4439명이 자살로 사망했습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만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이고 10만 명당 26명이 자살에 이른다고 합니다.
마음 아픈 것은 우리 사회가 어느샌가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터넷 매체나 SNS를 통해서 댓글 테러를 하면서 극심한 정신적 고통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제 페이스북을 보면서 어느 목사가 탄핵과 관련해서 헌재의 탄핵과 관련해서 유서를 미리 써놓았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알지 못하는데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지 않으면 죽음도 각오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탄핵을 반대하는 편에 있던 목사가 분신자살을 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목회자들까지도 극단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고난 속에서 죽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기도와 찬송으로 옥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풀어졌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간수를 살려주었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송으로 기적이 나타났지만 그 일로 인해서 간수가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27절을 보면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깊은 밤에 바울과 실라의 찬송으로 인해서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매인 것이 벗어지고 할 때 감옥을 지키는 간수를 자다가 깼습니다. 그런데 옥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러자 간수는 죄수들이 탈옥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자다가 깬 간수는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을 할 시간도 없이 죄수들이 탈옥 했을 것으로 짐작하고 칼을 들어서 자결을 하려고 했습니다. 로마의 법에 죄수를 도망하게 한 간수는 그 죄수가 받은 형량만큼 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죄수들 중에 사형수가 있다면 탈옥한 사형수를 대신해서 간수가 사형을 당하게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 있던 죄수들이 다 탈옥을 하면 간수는 죄수들이 받아야 할 모든 형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목숨을 끊은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감옥 안을 살펴볼 생각도 못한 채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 간수를 보면서 바울은 다급하게 간수를 향해서 네 몸을 상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28절을 보면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바울과 실라는 모든 매인 것이 풀린 상황에서 감옥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바울과 실라 뿐만 아니라 다른 죄수들도 감옥에서 나가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감옥이 열리고 매인 것이 벗어지면 도망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를 통해서 기적이 일어난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그들은 바울과 실라의 말을 들었을 것이고 바울과 실라가 나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로마 시민권자로서 자신들과 죄수들이 다 도망가면 간수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기 때문에 자신들로 인해서 간수가 어려움 겪지 않도록 했을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모든 것이 다 풀려진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통해서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사인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고 그러던 중에 간수가 자결을 하려고 하자 급히 말린 것입니다.
바울인 급하게 소리를 지르면서 네 몸을 상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다 여기 있다고 외쳤습니다. 바울과 실라에게 있어서 사람의 생명이 가장 귀한 것이기에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고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 모는 것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간수를 기도와 찬송으로 기적이 일어났고 그럼에도 감옥에서 나가지 않은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무서워 떨며 엎드렸습니다. 29절을 보면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간수는 밤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는데 갑자기 기도하고 찬송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지진이 나서 감옥의 터가 움직이고 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지는 것을 잠에서 깨어나면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서 목숨을 끊지 못하게 했습니다. 간수는 그런 상황 속에서 도망가지 않으므로 자신이 죽지 않게 지켜준 바울과 실라에게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무서워 떨며 엎드린 것입니다.
간수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특별한 상황이었기에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라고 믿었고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이 보내신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워서 엎드린 것입니다.
- 간수의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간수는 자신의 생명을 지켜준 바울과 실라를 데라고 나가서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30절을 보면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여기서 간수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라고 질문한 것은 이 간수가 귀신 들린 여종이 하는 말을 들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여종이 여러 날 그렇게 외쳤기 때문에 간수가 그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종이 한 말이 생각이 나서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을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구원의 길을 전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간수가 물은 구원은 분명히 바울이 전하는 구원과는 차원이 다른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간수가 질문한 것을 토대로 해서 이 사람에게 구원에 이르는 길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전했습니다. 31-32을 보면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16: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간수는 이미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가서 질문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간수의 가족이 모두 모인 상태에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 모두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했다는 것은 구원에 대해 질문한 것에 대해서 구원이 무엇인지를 설명했을 것이고 복음을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말을 들은 온 가족이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33-34절을 보면
16: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16: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앞에 기록 된 이야기를 볼 때 간수는 이미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갔다고 볼 수 있고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간수는 맞은 자리를 씻어 주었습니다. 채찍에 맞아서 찢어지고 피가 나서 옷이 달라 붙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처들을 다 물로 씻어주고 그 시대에 약을 상처에 발라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즉시 세례를 받았습니다. 간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었지만 죽음의 위기에서 건짐을 받았고 바울의 전도를 듣고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아서 구원 받은 가정이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고 나서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바울과 실라와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처럼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이 후에 이야기는 바울이 빌립보를 떠나게 된 이야기로 하나님은 간수의 가족을 구원하신 다음에 바울 일행이 빌립보를 떠나게 하셨습니다.
기도와 찬송은 오늘도 기적이 일어나게 하는 믿음의 도구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기적이 필요할 때 기도와 찬송으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하늘의 능력으로 채워지는 복된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