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3월 30일 낮 예배 설교)
성경 : 고후 5:11-21(신약 290)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나라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이 나라의 상황은 극과 극의 치열한 대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극한 대립의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하면 교회 역시 목회자의 성향에 따라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심을 기억하며 지내는 사순절에 교회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신 것과 주님의 죽음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묵상하면서 보내야 합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의 진정한 목적은 화목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죄 문제가 중요한가를 바울 사도께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친히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을 하셨고 죽으셨는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즉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아주시기 위해서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그리고 죽으신 것은 우리를 위한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 문제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것을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와 화목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손을 내밀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우리는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의미는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세상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목을 이루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쟁을 부추기거나 싸움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툼이 있는 곳에 화목을 이루게 하고, 싸움이 있는 곳에 화해가 있게 하는 직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나라의 상황에서 교회와 성도가 할 일은 어느 한쪽의 논리를 가지고 극한 대립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대립이 아닌 화해와 협력을 이루도록 하는 일이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이 나라의 극한 대립의 중심에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있다는 것이 마음 아픈 일 입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교회가 양쪽의 선두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것이 과연 그리스도께서 고난 당하심을 기억하는 사순절에 할 수 있는 일인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순절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의 고난은 화목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먼저 주님 앞에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미워하고 원수 대하듯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 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도다.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성도로 예배 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허물 많고 죄 많은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그 사랑으로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예배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고난 받으심을 기억하며 지내는 이 계절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 전하면서 이 글을 읽는 모든 성도들에게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1-12절을 보면
5: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5: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여러 지도자들을 따른다는 파벌이 있었고 초대 교회에 생긴 이단들이 와서 유혹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단들은 자신들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고 자신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예수님에게 배웠고, 영적인 능력이 있다는 식으로 자랑을 하면서 열심히 자신들을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그런 상황을 알고 있는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즉 나 스스로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자천이란 말은 나 스스로 나를 추천한다는 의미로 나를 내가 스스로 자랑한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나는 자천하지 않는다. 즉 나를 스스로 추천하고 자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그리스도를 위해서 한 일들을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자랑할 기회를 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현대 교회는 어느 순간부터 교회를 자랑하고 목회자를 자랑하는 것으로 전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며칠 전에 고등학교 동창으로 기장에서 목회하는 친구가 전화를 해 왔습니다.
몇 년 전에 우리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린 적도 있는 친구인데 현재 광명시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친구 목사인데 자기 교회 주변에 10 교회가 있는데 다 건물이 있고 자기 교회만 임대 교회라고 하면서 전도를 열심히 하면 자기 교회는 안 오고 건물이 있는 교회로 가버린다고 아무리 열심히 전도를 해도 임대 교회로는 오직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은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사순절에 주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음을 자랑합시다. 이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사랑이 우리를 강권 하신다고 고백한 바울은 그리스도 한 사람이 죽으신 것은 곧 우리 모두가 죽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3-14절을 보면
5: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바울은 미쳤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행 26: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그런데 바울은 우리가 미쳤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정신이 온전하다면 그것은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이 말은 내 삶은 오직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성도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주님을 위해서 일하고, 또한 온전하다고 하는 상황에서도 오직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신 그 사랑이 나를 강권하심으로 내가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고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하심을 받아서 주님의 일꾼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은 곧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인데 한 분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곧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리 모두는 죄에 대하여 같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살았던 모든 과거의 옛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에 함께 죽었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 죽으셨지만 결과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옛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분은 또한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15절을 보면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우리의 옛사람 즉 죄와 허물로 죽을 수 밖에 없던 나는 함께 죽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분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강권하시는데 우리는 오직 나에게 사랑을 주신 부활하신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오직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어야 하고, 우리의 삶의 목적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우리 위해 부활하신 주님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야 할 이유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나와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 나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므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 즉 새롭게 창조된 존재라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이제는 육신을 따라 알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그러므로 세상적인 생각이나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을 평가하는 일은 그만두십시오. 나 역시 과거에는 그런 생각으로 그리스도를 단순히 나와 똑같은 인간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예수님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세상적인 관점에서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에 대해서 평가를 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나름 지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식과 철학적인 사고를 가지고 예수님을 평가하려고 합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예수님을 인간 중에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고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눈으로 주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으로 믿고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합니다. 17절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즉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주님 안에 거하면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이전이나 믿음을 고백한 후에 나는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적인 모습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이 변화되었습니다. 나를 지배하던 죄와 사망이 내게서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고 나의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죄인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고 회개함으로 나는 죄인이 아닌 의롭다 인정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나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는 것입니다. 17절을 다시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삶을 벗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서의 새로운 믿음의 옷을 입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은 그대로 인 것 같습니다. 몸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그대로 이지만 우리의 영혼의 옷을 갈아 입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사람인데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신분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같은 내가 주님을 믿고 구원 받은 성도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신분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던 나는 지나갔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옷을 입은 새로운 내가 되었습니다.
- 새로운 직분(화목하게 하는)을 주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에게 새로운 직분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주어지지 않았던 것인데 주님을 만나고 나서 우리는 모두 새로운 직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직분은 화목하게 하는 직분입니다. 18절을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성육신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것과 예수님을 믿으므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난 것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화목의 관계를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하시려는 계획을 세우시고 실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기 때문에 화목을 가로막고 있는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이고 예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은 하나님과 우리와 화목하게 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하셨습니다. 19절을 보면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화목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너희가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화목하게 하는 직분과 함께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하셨다는 것입니다.
화목하게 하는 말씀은 복음이라고 정의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세상에 나가서 화목하게 하는 말씀인 복음을 전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또 한 편으로는 우리가 세상에 가서 해야 할 말은 화목하게 하는 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분쟁을 조장하거나 다툼을 일으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화목하게 만들어 가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서나 평화를 만들어 가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과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받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의 마지막 당부는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20-21절을 보면
5: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는데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를 계속 유지 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목을 이루는 직분을 잘 감당하고 우리가 하는 말이 화목을 위한 말이 되어서 우리가 가는 모든 곳에는 화목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가 파벌과 이단들로 인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는데 바울은 너희가 먼저 화목하고, 이단들의 가르침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너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이 분명한 진리를 잊지 말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교회 안에서 서로 화목하고,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잘 감당하고 그러므로 심한 갈등을 겪는 이 나라도 복음안에서 화목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참빛 교회가 화목의 직분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서 각 가정과 삶의 현장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평안과 위로가 가득한 복된 삶의 현장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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