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는 것이 힘이라(1월 26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성경 : 느헤미야 8:1-12(구약 738)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시대에 인물로는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유대인들에게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에스라도 아닥사스다의 호의로 예루살렘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도 아닥사스다 왕의 배려로 예루살렘에 와서 성벽 재건 작업을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스룹바벨에 의해서 완성되었지만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지 못함으로 인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이 사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이 불타고 무너진 채로 방치되었다는 말을 듣고 금식하며 기도했고 아닥사스다 왕의 배려로 예루살렘을 와서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와서 성벽 재건 작업을 할 때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비웃고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와 함께 성벽 재건 작업을 시작한 사람들은 모든 방해와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 수 있었던 것도 성벽 재건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셔서 감당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성벽 재건 작업을 끝내고 느헤미야는 에스라와 함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수문 앞 광장으로 모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깨닫게 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성일을 지키면서 함께 즐겁게 절기를 지켰습니다.

시기적으로 이 때는 초막절 절기에 해당하는 시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셨지만 광야 생활을 거쳐서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해야 했고, 사사시대와 왕정 시대를 거치면서도 초막절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는데 느헤미야에 의해서 제대로 된 초막절을 지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7절을 보면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수문 앞 광장에 모인 때가 칠월이라고 기록했는데 여기서 칠월은 태양력으로 9-10월에 해당하는 달이고 초막절을 지키는 달이기도 합니다.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가 중심이 돼서 말씀 사경회가 열렸습니다.

스룹바벨이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고 이제는 신앙 회복을 위해서 말씀 사경회를 열어서 말씀으로 믿음을 회복하고 하나님 앞에 즐겁게 축제를 열고 계속해서 초막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말씀을 통해서 진정한 회복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고 이렇게 진정한 회복이 이루어지게 됨으로 인해서 느헤미야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말씀을 기뻐하는 것이 힘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철저하게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말씀이 없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고대 시대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손으로 기록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이 누구든지 성경을 가질 수가 없었고 제사장들과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 또는 특별한 사람들만 성경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루살렘 파괴되고 성전이 파괴되고 바벨론 포로고 끌려갔기 때문에 성경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열왕기나 역대기를 보더라고 성경이 귀하기 때문에 성전을 보수하던 중에 성경을 발견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완공하고 난 다음에 수문 앞 광장에 모였을 때 그들은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말씀을 들음으로 시작됩니다. 1-4절을 보면

8: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8: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8: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8:4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누구나 성경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에스라가 성경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에서 정오까지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서 오직 말씀을 듣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나무로 강단을 만들었고 에스라가 강단에 섰고 좌우에 사람들이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에스라가 읽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면 6시간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6시간 동안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말씀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게 되자 마음을 다해 귀를 열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곳에 모였던 사람들이 말씀을 들으므로 믿음의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말씀을 읽고 들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듣고 하면서 우리의 믿음은 점점 자라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7-8절을 보면

8: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8: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에스라가 중앙에서 말씀을 읽으면 사람들 속에서 지도자들이 중간 중간에서 에스라가 읽은 말씀을 설명해서 깨닫게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즉시 그 말씀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로 하면 설교하듯이 에스라가 읽어준 말씀을 설명해 주었고 사람들은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말씀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깨닫는 것도 중요합니다. 내가 읽은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면 올바른 믿음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읽은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기도하고, 성령의 도움을 간구해야 하고, 또한 예배를 통해서 전해지는 말씀을 집중해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의 마음에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말씀을 깨달을 때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고 말씀을 깨달을 때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는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쉬운성경으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습니다. 양쪽에 날이 선 칼보다도 더 날카로워서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며,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감정까지 알아 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에는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그 말씀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힘과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행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주님의 말씀은 힘이 있어 흥왕하게 하십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깨달아 알고 말씀을 의지할 때 우리에게 말씀의 힘과 능력이 임합니다.

  1. 말씀을 적용할 때 힘이 있습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말씀을 듣고 말씀을 깨닫고 그것으로 끝났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모여서 말씀을 듣고 깨닫고 깨달은 말씀을 삶에 적용할 때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레마의 말씀이란 표현을 합니다. 말씀은 로고스와 레마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레마라고 할 때 레마는 “말하다”라는 동사(렐마)의 파생어로, 특정 순간에 개인적으로 주어진 말씀이나 하나님의 음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레마의 말씀이라고 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성령을 통해 개인에게 구체적으로 적용되거나 깨달아지는 말씀이라는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고 그 말씀이 나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믿을 때 그 말씀을 적용해야 하고 말씀이 적용될 때 힘과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적용하는 것은 회개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말씀을 듣고 울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말씀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므로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이 없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자 감격해서 울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울었다는 것은 회개하면 울었다. 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지 못해서 내 맘대로 살았는데 말씀을 들으니까 내가 얼마나 죄악 가운데 살았는지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말씀에 비추어서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울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깨달았을 때 먼저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회개가 없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 그런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과 힘이 임하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6절을 보면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10-12절까지를 보면

8: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8: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8: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에스라가 말씀을 봉독하기 위해서 서서 말씀을 펴니 모든 백성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에스리가 하나님을 송축하자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고 응답으로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우리가 주일 예배 때에 예배로 나아갈 때 일어나서 찬양을 하는 것은 에스라가 사경회 때 한 것과 같이 일어서서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말씀을 듣고 깨닫고 죄를 자복하며 회개하며 울고 있을 때 느헤미야가 말합니다. 오늘은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라고 말하고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들에게 오늘은 성일이나 근심하지 말라고 말하자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즐거운 성일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주일날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할 때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고 즐겁게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찬양할 때 기도할 때 말씀을 들을 때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지루하게 느껴지거나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이 힘들에 느껴져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언제나 즐거움과 기쁨의 예배와 섬김과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기쁘고 즐겁게 예배하는 가운데 온전한 예배 회복이 이루어지고 진정한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이고 예배가 기쁘고 즐거울 때 그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예배는 나눔이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합니다. 10절에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그리고 12절을 보면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준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했고 기쁘고 즐겁게 성일을 보내면서 서로 나누어 주면서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도 나눔 공동체였습니다. 서로 나누고 베푸는 가운데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히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1.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힘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성일이니 울지 말라고 말하면서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말한 것의 의미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은 근심하지 않습니다. 10-11절을 다시 보면

8: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8: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여기서 근심하지 말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차브(עָצַב) 인데 이 단어는 ‘몹시 슬퍼하다, 마음이나 가슴 아파하다, (감정을) 상하게 하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서 울고 있던 백성들에게는 너희는 슬퍼하지 말고 마음 아파하지 말라는 의미로 말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고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신앙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신다는 믿음으로 항상 기뻐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 개역 개정의 번역처럼 근심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일부 쉬운 번역에서는 걱정하고 근심하지 말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고 하나님이 내 편이십니다. 시 118: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근심하지 말고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여기서 사용된 힘이란 단어는 보호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힘이란 단어의 히브리어는 마우제크(מָעֻזְּכֶם) 인데 이 단어는 마오즈가 원형입니다.(מָעוֹז) 마오즈는 “안전한 장소나 방편, 보호(자)” 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나의 힘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기뻐하므로 나의 보호자가 되고 방패자가 되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시편에 많이 나오는 나의 반석이란 말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므로 하나님은 내 편이 되시고, 나의 보호자가 되시고 반석이 되십니다.

또한 이 단어는 산꼭대기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구절을 해석할 때 성일을 지키는 것은 여호와를 기뻐함으로 높이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로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 제1번을 보면 ‘사람의 제일 되고 가장 높은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주님만을 영원토록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즐겁게 성일을 보내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이것이 곧 힘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 이라는 말씀은 결론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이 영적 힘의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기뻐하고, 기쁘고 즐겁게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힘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보호자이시기에 우리가 근심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과 즐거움으로 주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