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찬양하라(12월 15일 오전 예배 설교)

성경 : 이사야 12:1-6(구약 983)

오늘은 대림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 세 번째 주일의 주제는 ‘나눔’ 입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심을 기억하면서 감사하면서 우리가 받은 은혜를 세상에 나누면서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일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와 사랑을 주님의 이름으로 나누길 원하십니다. 2024년 성탄절을 준비하면서 나는 무엇을 나눌 수 있고 어떤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작은 것이라고 나눔을 실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사야 12장은 이사야 11장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메시아 시대의 회복과 평화로운 통치가 성취된 후에 하나님의 백성이 드릴 찬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1장에 예언된 메시아의 통치와 구원은 정치적 해방이 아니라, 영적이고 완전한 구원을 의미합니다.

11장에서 메시아로 인해서 누리게 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서 예언하였고 12장은 메시아의 오심으로 누리게 될 구원의 은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대해 감격하면서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해 가는 상황이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해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사야 12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멸망당하게 되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메시아의 통치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이 예언의 말씀은 구약 시대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셨기에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 된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찬양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모든 사람들에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12장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말에는 세 가지 의미가 담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감사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구원에 대한 감격과 찬양은 성도의 삶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구원의 은혜와 하나님께서 하실 구원 소식을 열방에 전해야 하는 사명감을 다시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셋째는,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구원의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쁨과 찬송으로 그분께 나아가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사야 12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11장에서 메시아의 강림에 대해서 예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12장에서는 메시아가 오심으로 인해서 누리게 될 은혜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은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습니다. 1절을 보면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전에는 내게 노하셨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고 이방신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재앙을 누리신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언급한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그리고 우리가 이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노하셨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고 외면하시고 진노하신 것은 우리의 죄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라는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이사야 64장의 말씀을 나누었는데 이사야 64장에서 우리가 고난 당한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고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64:6-7절을 보면

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64: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 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스라엘이 멸망해 가는 것에 대해서 잎사귀가 시든 것과 우리가 소멸 된다. 는 표현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잎사귀가 시들고 소멸 되게 된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전에는 우리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노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습니다. 1절을 다시 보면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노하셨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고 회개함으로 이제는 진노가 돌아섰다. 즉 진노가 끝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4:8-9절을 보면

64: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64:9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왜 끝났는가 하면 우리가 의롭고 거룩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진흙인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가 주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무 분노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죄를 회개함으로 영원히 기억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가 없고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한없이 부족한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의 왕이시기에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기억도 않으시고 우리에게 내리시려던 진노를 거두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해서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라고 고백했습니다. 1절을 다시 보면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안위라는 히브리어는(나함) נָחַם 이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위로하다.’ 는 의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보내주셔서 진노를 거두시고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해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보내주셔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사 40: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여기서 위로하라는 단어가 1절의 안위라고 번역한 “나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께서 노하셨지만 이제는 진노를 거두셨고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 주시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노하시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죄를 사해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아버지시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1.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이사야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이전에는 내게 노하셨으나 이제는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고 나를 안위하심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린다고 고백한 다음에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기에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라고 고백했습니다. 2절을 보면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는 고백은 하나님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실 신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 그 이름 외에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실 이름이 없습니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하나님 나의 나의 유일한 구원이십니다. 라고 선포한 이사야는 그 하나님을 내가 신뢰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신뢰라는 단어는 믿다. 안심하다. 는 의미가 있습니다. 신뢰라는 말은 하나님이 나의 유일한 구원이심을 믿고 안심한다는 의미입니다.

신뢰함으로 인해서 즉 믿고 안심함으로 인해서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시기에 이 세상에 내가 두려워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시기에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고 나의 노래이십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시 2절을 보면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이사야는 하나님은 나의 유일한 구원이시라고 고백하면서 나의 구원이신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라고 말하는데 이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출애굽 하게 하실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이루셨고 홍해를 가르시는 기적을 통해서 출애굽과 홍해를 건너게 하신 일을 상기 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신데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강한 손과 능하신 팔로 구원하시는 분이시고, 그 하나님은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되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힘 이시고 능력이십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의지함으로 부활의 능력을 덧입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다음에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나의 구원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이 되시는 분이시고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하나님은 영원토록 나의 찬송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출 15: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하나님이 구원이시기에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3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생수가 솟아나는 샘물처럼 넘치고 있다고 고백입니다.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라고 고백한 것은 풍성한 구원을 상징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생명과 기쁨의 근원 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의 우물들”은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이 언급하신 “생수”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구원의 우물들에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충만한 것이고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물에 오는 모든 사람이 물을 길을 수 있듯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문이 열려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닫힌 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습니다.

  1. 여호와를 찬양하라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믿으므로 안심하고 두려움이 없이 살아갈 수 있고, 힘 이시고 노래 이시고,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라고 선포한 이사야는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찬양한다는 것은

행하신 일을 만국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4절을 보면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구원 받은 백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가 연속되는 4개의 명령문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의 최초의 언어는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행하심을 즉 행하신 일을 만국 중에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 전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기가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불신자에게 전해야 합니다.

넷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모든 일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높이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인다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과 찬양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일들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행하신 모든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 즉 복음 전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극히 아름다운 일을 세상에 알리라고 선포했습니다. 5절을 보면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은 극히 아름다운 일이기에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아름다운 일이란 단어의 히브리어의 의미는 솟아오른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큰 일, 위대하신 일, 엄청난 일, 위엄있게 하신 일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은 크고 놀라운 일이고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이 모든 일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아름다운 일, 즉 크고 놀라운 일을 세상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리 높여 부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절을 보면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여기서 사용된 소리 높여 부르라는 말의 의미는 ‘큰 소리로 부르다, 기뻐 소리치다.’ 라는 의미입니다. 소리를 높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 크고 위대하시기에 기쁨으로 큰 소리로 찬양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찬양하는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고, 세상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찬양하고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심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대림과 성탄의 계절이 우리만 즐겁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전하고, 나누며 주님 오심을 전하며 지내는 복된 성탄의 계절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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