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은(9월 15일 오전 예배 설교)

시편 19:1-14(구약 815)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근거로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신비주의적인 현상을 따르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가 나타날 때 성령의 역사는 성경에 근거한 역사여야 합니다. 성경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예언이나 비성경적 환상이나 꿈을 따르는 것은 진정한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철저하게 성경에 근거한 신앙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총 66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을 정경(正經, canon)이라고 말하는데 정경이란 단어인 캐논(canon)은 라틴어 칸나(canna)에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갈대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카논(kanon)에서 유래했다고도 합니다.

카논은 자(ruler) 또는 측량 막대기(measuring stick)를 의미했는데, 길이를 재는 정확한 자가 없었을 때에는 갈대를 측정기구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자(ruler)는 후에 인증된 권위(recognized authority)라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정경은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기준이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서 기준이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신앙 생활해야 하는가 하면 성경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경의 또 다른 의미는 많은 책들 중에서 공식적으로 성경으로 인정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공적으로 인정된 정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은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라고 되어 있는데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노래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누리게 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서 노래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성경은 크게 보면 두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6절까지는 자연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7-14절까지는 우리의 영혼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노래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기록된 시로 보이지만 계시와 말씀이란 측면으로 보면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다윗의 노래를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자연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

다윗은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에 대해서 노래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고 노래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하나님이 하신 일을 나타냅니다. 1절을 보면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라고 선포하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의 창조는 위대하신 것이고 그 위대하심을 하늘이 노래하고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는 노래했는데 궁창은 대부분의 성경이 창공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하늘이란 표현과 궁창이란 표현은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같은 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은 하나님이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고 노래했는데 이것은 창공은 하나님께서 손으로 하신 일 즉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나타낸다는 히브리어의 의미는 말하다. 선포하다. 알리다. 라는 의미입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고 했는데 선포한다는 히브리어의 의미는 자세히 말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자세히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영광을 받으실 분이라고 자세히 말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궁창은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것들을 즉 창조하신 것에 대해서 온 우주 만물이 알 수 있도록 알리고 전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선포와 알리는 것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습니다. 2-3절을 보면

19: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19: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전한다는 말은 낮은 낮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밤은 밤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2절을 우리말 성경으로 보면 “날이면 날마다 말씀을 쏟아 붓고 밤이면 밤마다 지식을 나타냅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말씀을 쏟아 붓고 밤이면 밤마다 지식을 나타내는데 하늘과 궁창인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은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다고 말씀하는데 이 말씀은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자연 만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전하고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일들을 서로 선포하고 전하지만 인간의 언어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소리를 인간은 들을 수가 없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환경에서 피할 사람은 없습니다. 4-6절을 보면

19: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19: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19: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다윗은 자연을 의인화해서 마치 사람이 행동하는 것처럼 묘사했다고 할 수 있는데 해는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이 그의 길을 달리기를 기뻐하는 장사 같다고 묘사했습니다.

이 말은 해가 매일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을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이 달리는 것과 같다고 묘사한 것이고 해가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운행하는데 그의 열기 즉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피할 자가 없다고 노래한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태양이 매일 아침에 떠서 지고 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고 아무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에서 피할 수가 없다는 말이고 이 말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물들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피할 수 없고 모두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하늘과 궁창이 선포하고 누구도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노래한 다윗은

  1. 여호와의 율법은(말씀은)

다윗은 하늘과 궁창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와 하나님이 영광을 선포하고 전하지만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전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을 주셨는데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킵니다. 7절을 보면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기서 사용된 ‘완전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밈’ 은 제사 용어로서 흠 없고 점 없는 제물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 율법은 완전하기에 인간의 영혼을 소성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소성이란 말은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는 의미로서 회복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영혼이 원래 상태로 회복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소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혼을 소성하게 하는 능력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의지할 때 우리의 영혼이 소성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우리의 영혼이 소성할 수 없습니다.

소성이란 말의 또 다른 의미는 ‘생기가 돋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할 때 우리의 내면에 생기가 돌아서 소성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함으로 생기가 돋아나고 생기가 돋아남으로 새 힘을 얻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십니다. 7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기서 ‘우둔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페티’ 는 일반적으로 무엇이든 믿는 경향이 있는 순진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울러 ‘우둔한 자’는 율법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한 자. 또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성향의 사람들이 율법의 지혜를 배우지 않으면 시험에 빠지게 되고 죄를 저지르게 되지만 이런 사람들이 율법의 지혜를 배우게 되면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지혜를 배우지 않으면 사탄의 유혹과 이단의 유혹이 쉽게 넘어게 됩니다.

‘증거’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에두트’ 로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데, 범죄한 자에게는 형벌의 증거가 되며 의를 행하는 자에게는 상급의 증거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둔한 자는 이 증거를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 형벌을 피하고 상급을 얻는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8절을 보면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하다는 것은 거짓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정직한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은 영생 복락을 누리게 하고 이 말씀을 의지하면 말씀하신 대로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인터넷 쇼핑을 하다 보면 최저가격이란 말을 듣고 들어가 보면 최저가에 옵션을 달아서 가격이 점점 높아지게 되고 결국은 결코 싼 가격이 아닌 것을 알게 될 때 화가 납니다. 거짓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쁨은 진실한 곳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옵션이 없습니다. 그 말씀 그대로 순수하게 믿으면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직한 말씀이고 정직한 말씀을 붙잡고 의지할 때 참된 기쁨이 우리 안에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의지할 때 말씀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합니다. 8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기서 ‘순결하여’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라’ 는 주로 ‘깨끗한’ 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때로는 이 단어가 ‘빛나게 하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깨끗하고 또한 빛나게 하는 말씀입니다.

‘눈을 밝게 하시도다.’ 라는 구절은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는 의미와,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만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선악을 알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눈이 밝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영의 눈이 열려서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는 세상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은 사람들은 선악을 구분할 뿐만 아니라 영의 눈이 열려서 비전을 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순결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 눈이 밝아져서 진리를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보게 되고 꿈을 꾸는 믿음의 눈이 열린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받는 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말씀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 것이고, 말씀을 통해서 지혜를 얻게 되고, 말씀을 통해서 참된 기쁨을 회복하고, 말씀을 통해서 영의 눈이 밝게 되므로 꿈을 꾸고 비전을 품고 사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다윗은 9-10절에서

19: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9: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9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는 진실하여 다 의롭기에 우리는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고 노래하는데 세상에 가장 귀한 것이 말씀이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세상 무엇보다 더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11절을 보면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라고 노래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고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받을 상이 크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킴으로 받는 상에 대해서

허물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12절을 보면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2-14절까지는 기도문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내용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은혜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다윗은 먼저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자신의 허물을 깨닫기 전에 누구도 자신의 허물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허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기아’는 ‘길을 잃다.’, ‘잘못하다.’, ‘정도에서 벗어나다.’ 라는 동사 ‘솨가’의 명사형입니다. 그런데 ‘솨가’는 비고의적인 범죄라는 즉 부지중에 범한 비고의적 행동, 또는 무의식적인 범죄를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허물’이라는 말은 모르고 지은죄, 또는 비고의적인 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르고 지은 죄 또는 고의성이 없는 죄는 우리가 죄라고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죄입니다. 다윗은 이런 허물은 우리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허물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므로 허물을 고백하고 사함을 받게 됨으로 허물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죄가 주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13절에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2절에서 허물은 모르고 지은 죄를 의미한다면 여기서는 고의로 지은 죄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전에는 죄가 죄인 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지만 말씀으로 나를 비추어서 죄가 죄인 줄 알게 되고 그러므로 고의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하게 되고 또한 말씀을 붙잡고 살아감으로 인해서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묵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붙잡고 살아감으로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다르게 말하면 말씀이 없으면 죄가 나를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 때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주장하게 됩니다.

허물에서 벗어나고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함으로 인하여 우리는 죄와 허물로 인한 사망이 아닌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도가 응답 됩니다. 다윗은 말씀을 경고를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12-13절을 노래했습니다. 말씀의 경고를 통해서 허물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죄가 주장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지킴으로 상을 받는다고 말하는데 우리가 받을 상에는 기도의 응답이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 되기를 원하나이다.” 여기서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 되기를 원하다.” 는 말은 입으로 하는 기도와 말로 선포하는 것과 마음으로 생각하고 소망하는 모든 것이 주님 앞에 열납 되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면 그 말씀이 기도 응답의 비결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기도가 되어서 입으로 고백하는 기도가 이루어지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소원들이 이루어지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소성하게 하시고, 지혜롭게 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하시며, 허물에서 벗어나고 죄가 주장하지 못하게 함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모든 기도가 열납 되어 하늘을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감으로 약속한 하늘의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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