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따르라(2024년 4월 14일 오후 예배)
성 경 : 요한복음 21:15-25(신약 185)
 
지난주에는 같은 말씀 중에 17절까지를 중심으로 해서 “내 양을 먹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질문하셨고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 라고 대답을 했고 예수님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의 말씀과 연결되는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내 양을 치라고 하시면서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베드로는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고, 그날도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고, 예수님께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 하시매 그물을 던져서 두 배에 가득 차게 고기를 잡았고 그런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오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도 밤새 고기잡이에 실패했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서 153마리의 고기를 잡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을 부름을 받았을 때와 지금의 상황은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처음 부름을 받았을 때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막 시작한 때이고, 오늘 본문의 상황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의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지만 예수님은 곧 하나님 나라로 올라가실 것이고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이 땅에 남아서 주님이 주신 지상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 베드로와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부재 상황이 되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심으로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여전히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고, 이끌어 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육안으로는 예수님을 볼 수 없지만 예수님은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 편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도와주십니다.
 
베드로 사도에게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하신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너는 나를 따르라” 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시면서 주님을 따르는 삶의 결론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갈 베드로의 미래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젊어서는 네가 원하는 대로 다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8절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예수님은 앞으로 베드로가 걸어갈 삶의 여정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사도로서 교회의 지도자로서 베드로가 사역의 초반에는 자신의 의지대로 사역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사역을 감당하게 되는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사역을 하지만 자신의 개인적인 의지도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할 때, 우리의 의지를 완전히 무시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이끌어가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를 인정해 주시면서 성령 안에서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가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가겠지만 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의 의지를 인정 하시지만 우리가 우리의 의지대로만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의 의지를 인정해 주셨고 바울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사역을 했지만 종종 자신의 의지대로 하려고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즉 원하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을 막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늙어서는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8절을 다시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젊었을 때는 혈기왕성해서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았지만 늙어서는 자신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나이를 먹으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맡기면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너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은총을 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복된 삶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죽음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절을 보면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베드로가 정상적인 죽음이 아닌 순교를 당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베드로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순교를 당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외의 초기 문헌들에는 베드로의 최후 생적에 대한 기록이 어느 정도 보존되어 있는데 로마의 감독 클레멘트(Clement, 88-97)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낸 서신(클레멘트1서)에는 베드로가 바울과 함께 로마에서 순교 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터툴리안(Tertullian)은 베드로가 네로(Nero) 황제의 통치하에서 바울과 같은 십자가에 처형되어 순교했다고 말했으며 그는 베드로의 십자가 죽음에서 ‘남이 네게 띠 띠우고’라는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유세비우스(Eusebius)는 베드로의 십자가 처형과 관련하여 그가 자청하여 머리를 아래로 두는 형태로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었다고 기록했습니다(HE, III, i. 2).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진술의 배경에는 ‘주님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바른 자세로 처형되었는데 내가 어찌 주님처럼 바로 매달릴 수 있겠는가’ 라는 의미에서 베드로의 겸손하고도 철저한 순종의 모습으로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또한 신약 외경인 ‘베드로 행전’ 에는 비록 사실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에 의하면 베드로는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길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는데 베드로는 그리스도에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가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 하니 내가 다시 십자가를 지려고 로마로 간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로마로 되돌아가 사역을 계속하다 체포당한 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채 처형당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해서 만든 것이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라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성경의 기록이 아닌 외경의 이야기와 초기 저술가들이 기록한 문서들을 토대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사실일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그 순간 베드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순교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 너는 나를 따르라
예수님은 베드로의 미래에 대한 말씀하신 다음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게서 너는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다른 사람과 상관없이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22절을 보면
21: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1: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하시자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라고 묻고 있습니다. 특별히 베드로의 관심은 요한에게 있었습니다. 자신은 순교하게 될 것이라고 암시하셨는데 그럼 요한은 어떻게 될까요? 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베드로도 보이지 않게 요한과 자신을 비교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요한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나처럼 순교하게 되나요? 그런 의미로 질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한을 내가 올 때까지 세상에 머물게 할지라도 네게 그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그런 일에 상관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따라 살아 가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각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이고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과 은사와 달란트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면서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3. 이 책을 기록한 사람에 대하여
이 책 즉 요한복음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이 글을 기록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이 글을 기록한 사람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라고 묘사했습니다. 20절을 보면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요한복음에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표현이 여러번 나옵니다.
 
요 13: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요 19: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요 20: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요 21: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요한은 자신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제자라고 묘사를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왜 요한을 사랑하시는 제자였는지에 대한 설명을 되어 있지 않고, 예수님의 사랑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도 기록하지 않고,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묘사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지 않았다는 의미라기보다 아마도 요한 자신이 예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고 느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과 같은 믿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는 주님의 사랑하시는 그 성도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복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은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주님의 품에 의지하여 있었고 주님을 팔자가 누구입니까? 라고 묻던 사람이라고 기록했는데 이런 표현들은 자신은 다른 제자들보다 더 사랑받는 제자였다는 의미라고 말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일들을 증언하고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23-24절을 보면
21: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21:24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베드로가 사랑하시는 그 제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내가 올 때까지 즉 재림하실 때까지 그를 세상에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고 말씀하신 것이 와전이 되어서 요한은 죽지 않겠다고 소문이 돌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 아니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에 대해서 증언을 하고 기록한 사람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그 제자였다고 말함으로 자신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그 제자였고 자신이 이 글을 기록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특이하게도 24절 마지막 부분에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안다고 말했는데 그런 여기서 우리라고 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요한은 이 글을 쓰면서 이 글에 대해서 증언해 줄 증인들을 세운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요한과 함께 사역을 한 동역자 그룹이거나 요한과 함께 하는 신앙 공동체 사람들일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기록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증인들을 세운 것 같습니다.
 
행하신 모든 일을 다 기록할 수 없다고 요한은 끝맺음을 했습니다. 25절을 보면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제가 좋아하고 자주 부르는 찬송가 304장 3절 가사를 보면 “하늘은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 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이 가사는 요한복음 마지막 절에 대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3년 6개월 정도라고 보고 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다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많고 크고 놀라운 것이었다고 말하면서 그 중에 중요한 내용만 기록한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시작한 것은 2023년 2월 12일 이었습니다. 1년 조금 넘게 요한복음을 살펴보았는데 요한복음을 오늘로 끝내고 다음 주부터는 사도행전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을 끝내면서 찬송가 304장을 부르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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