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수 목사 / 누가복음 3:7-20

능력이 많으신 분이 오신다.(12월 12일 대림절 세 번째 주일)

누가복음 3:7-20(신약 91)

오늘은 대림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 세 번째 주일의 주제는 ‘나눔’ 입니다. 2019년 대림절에는 동전 모으기 해서 필리핀 어린이들 성탄 선물 보내기를 했고, 작년에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겨울 신발 보내기 프로젝트에 참여 했었습니다.

금 년 성탄절에는 특별히 어떤 나눔을 한 것인지 아직 정하지 못했는데 가능하면 2022년이 시작되기 전에 의미 있는 나눔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꼭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나는 곳 있으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림절 세 번째 주일에 함께 살펴볼 말씀은 침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한 내용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메시아의 길을 준비할 사람이 먼저 와서 주님의 길을 예비한다는 예언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주의 길을 예비할 자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와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을 했고 복음서들은 요한을 소개하면서 이사야 선지자와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했던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라고 소개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 대망사상으로 살았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요한이 요단강에서 침례를 주면서 주님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면서 성탄을 준비하는 우리들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했던 침례 요한과 같이 주님 오심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고, 예수님의 복음이 세상에 증거되도록 복음의 길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 계절을 보내야 합니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가 “종교계(천주교 서울대교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교회총연합), 지상파 라디오방송사, 음악서비스 사업자와 함께 12월 1일부터 25일까지 캐럴 활성화 캠페인을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캠페인 구호도 ‘12월엔, 캐럴이 위로가 되었으면 해’로 정했다고 합니다.

이 캠페인은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이 캐럴을 통해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고 연말 따뜻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자고 제안함에 따라 시작됐다고 하는데 사실, 2018년 7월 저작권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도심 거리나 대형 매장에서 흘러나오던 캐럴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정부는 염 추기경의 제안에 호응해 정부 예산 10억 원을 지원하는 등 전국 대형마트 등에도 ‘많은 캐럴 재생’을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11월 말부터 곳곳에서 캐럴을 들을 수 있습니다.

불교계에서 반발을 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종교를 떠나서 많은 사람들이 캐롤이 울려퍼지는 것을 반가워하고 있습니다. 캐롤이 코로나로 지친 이 나라와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삶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침례 요한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능력이 많은 분이 오신다.” 고 소개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침례 요한이 메시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런 사람들에게 침례 요한은 나는 메시아가 아니고 내 뒤에 나보다 능력이 많은 분이 오시는데 그분이 메시아 즉 그리스도라고 소개했습니다.

대림절 세 번째 주일인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능력이 많으신 분이 오신다.”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침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침례를 줄 때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가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요한의 침례는 회개의 침례였습니다. 따라서 요한은 침례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선포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구원받은 성도의 상징으로 침례를 받았는데 침례는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나는 물속에 떠내려 보내고 물에서 나오는 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침례를 받기 위해 물에 들어갈 때 나의 모든 것을 떠내려 보낸다는 것은 나의 모든 죄를 회개한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입니다. 대림절을 보내면서 성탄을 기다리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 중에는 한 해를 돌아보면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단순히 죄를 깨닫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돌아서는 것이고 또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7-9절까지를 보면

3: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3: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요한은 침례를 받으러 오는 무리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선포하고 있는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에 대해서

나누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0-11절을 보면

3: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3: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선포하자 사람들이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러자 침례 요한은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하라고 선포했습니다.

팔레스틴 지역은 낮에는 덥지만 해가 지면 서늘해지고 추위를 느끼게 되는 상황들이 오기 때문에 밤에 기온에 떨어질 때를 대비해서 여벌 옷을 가지고 다니거나 껴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침례 요한은 그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로 너희가 평소에 추위를 대비해서 두 벌 옷을 가지고 다닌다는 그 한 벌의 옷을 옷이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은 많이 가진 것 중에 일부를 주라는 것이 아니라 밤이 되면 필요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주라는 것입니다. 한 벌의 옷을 주면 밤에 내가 추워질 수 있지만 진정한 회개는 있는 것을 나누어 줌으로 실현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옷만이 아니라 먹을 것이 있다면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풍성한 중에 주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너에게 있는 작은 것을 진심으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옷 한 벌과 먹을 것까지도 나눌 수 있는 것이 회개의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탄은 나눔의 계절입니다. 많은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작은 것을 나누는 성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2-13절을 보면

3: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3: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세리들은 유대인들의 미움의 대상이었으며 심지어 ‘죄인들’이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로마 정부로부터 관세나 통과세 등 각종 세금을 징수하는 권한을 위탁받고 같은 동족인 유대인의 주머니를 털어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로마에서 요구하는 금액보다 더 많은 액수를 징수하였고 그 일을 위해 직접 세금을 징수하는 하급 세리를 고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그들은 세금 관계 등의 일로 그들의 압제자인 로마 사람들과 접촉하였고 이로 인해 그들은 ‘부정한 사람들’로 간주되었습니다.

요한은 세리들에게 너희는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은 사회 제도 자체를 전복시키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사회적인 폐단을 시정할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사회적 폐단은 개인의 탐욕스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세리들은 그들의 행위가 근본적으로 변화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세리들에게 그들의 직업을 포기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요한은 그들이 지위를 남용하거나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지나친 과세를 하지 말고 공평하고 정의롭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현대에 있어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공정하고 정직하게 법을 지키며 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힘들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위해서 과도하게 세금을 부과하고 거두어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요한은 군인들에게 강탈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14절을 보면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본문에서 ‘군인’을 나타내는 헬라어 ‘스트라튜오메노이’은 아마도 로마 군인이 아니라 국내 정세를 담당하는 유대인 군인들을 언급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군인들은 업무상 특정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소지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세리들의 징세 업무를 도와 수탈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강탈’을 나타내는 ‘디아세이오’은 ‘맹렬히 흔들다’, ‘협박하다’, ‘강탈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또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는 ‘쉬코판테오’인데 ‘억압하다’, ‘착취하다’라는 뜻입니다. 군인들은 강압적 수단으로 백성들에게 돈을 강탈해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웠던 것입니다.

당시 군인들은 월급이 매우 적어 생계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따라서 그들의 부정은 갈수록 심화되었다고 합니다. 군인들은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같은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침례 요한은 너희가 받는 월급이 비록 작을 지라도 그것으로 만족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의 것을 강탈하거나 거짓으로 고발해서 억압하고 착취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욕심을 버리고 나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죄는 욕심에서 오는 것입니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나보다 능력 많으신 분이 오신다.
침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선포하자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오실 그리스도이신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 대망 사상이 강하던 때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이고 침례를 주는 요한을 오실 메시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15절에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많은 사람들이 요한이 그리스도이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을 요한이 알았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이 사람을 보내서 요한에게 당신이 오실 그리스도냐고 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요한을 그리스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침례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16절을 보면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그리스도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요한은 나는 그분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고대 근동과 그리스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맨발로 다니거나 샌달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실내로 들어가거나 혹은 예배나 애곡, 금식 등을 할 때는 보통 샌달을 벗었습니다. 이때 노예들은 주인들의 샌달을 묶거나 풀어주며 또 필요하지 않을 때는 샌달을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주인이나 주인의 방문객들의 신발을 풀고 묶어주며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은 가장 낮은 노예의 의무였습니다. 요한은 능력있고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발에 신기운 하찮은 신발끈조차 풀어드릴 수 없을 정도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그분 앞에서 나는 신발끈을 푸는 일조차 할 수 없는 낮고 천한 존재라는 것이고 그리스도는 자신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분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16절을 다시 보면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성령 침례와 불 침례는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원문을 보면 헬라어 전치사 ‘엔’(‘ … 안에’ 혹은 ‘ … 로써’)이 ‘성령’과 ‘불’을 동시에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회개의 상징으로 물 침례를 주었지만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 오시는데 그분은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오순절날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행2:3-4절을 보면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날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고 기적을 행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도 성령을 기름 붓듯하셨고 예수님은 두루 다니면 선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십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 능력 있는 참빛교회 성도가 됩시다.

능력이 많으신 주님은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십니다. 17절을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성령과 불의 연관성을 설명하기 위해 요한은 농사 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를 들었습니다. 농부들은 키를 가지고 곡식의 열매를 키질합니다. 그러면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이 구별됩니다.

무거운 것(알곡)은 키에 남게 되어 타작마당에 쌓이게 되고 가벼운 것(쭉정이)은 모아져 불살라지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신자와 불신자를 이렇게 구분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듯이 심판의 마당을 정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이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의 심판은 자신들과는 무관하며 오로지 이방인들에게만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유대인들의 왜곡된 특권 의식을 지적하면서 유대인들도 회개를 통하여 타작마당의 심판에 대비하도록 경고한 것입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셔서 세상을 불로 심판하시는 날에 성취될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악인과 선인을 구별하시고 악인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옥에 갇히게 된 요한
요한은 나보다 능력 많으신 분이 오신다고 선포했는데 헤롯에 의해서 옥에 갇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요한은 옥에 갇히게 되는데 이것은 주님의 길을 준비한 요한의 사역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이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 오신다고 선포한 대로 그리스도께 오셔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게 되고 주님의 길을 준비하던 요한은 사역을 마무리 하게 되는데 요한의 사역은 옥에 갇히면서 마무리 하게 된 것입니다.

요한은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했으나 옥에 갇혔습니다. 19절을 보면 “또 그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요한은 침례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권하여 좋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누가는 요한이 옥에 갇힐 만한 일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람들을 권면해서 회개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게 만들었고 좋은 소식을 전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좋은 소식은 복음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기 뒤에 오실 능력이 많으신 분이 그리스도라고 소개하면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 선포했고 이것이 좋은 소식이자 복음입니다.

요한이 좋은 소식을 전했으나 옥에 갇힌 것은 헤롯을 책망했기 때문입니다. 19절에 “분봉 왕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요한은 일반 백성들은 여러 가지로 권하고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지만 헤롯에게는 엄격하게 그의 죄에 대해서 지적을 했습니다. 여기 헤롯은 헤롯 안디바스인데 그는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이런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헤롯과 헤로디아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부정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요한은 그것에 대해서 책망을 했고 또한 기록에 의하면 헤롯 안디바스는 난잡한 생활을 즐겼고 유대인들의 지탄의 대상이었습니다. 요한은 그런 헤롯을 공개적으로 비판을 하고 책망을 했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20절을 보면 “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더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티데미’은 ‘더하다’, ‘첨가하다’등의 뜻 외에도 ‘같은 종류의 또 다른 행동을 하다’, ‘계속해서 하다’등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죄악을 뉘우칠 줄 모르고 더욱 큰 죄악으로 빠져들어 갔던 헤롯의 타락된 심성을 잘 표현해주는 말입니다. 침례 요한의 활동이 백성들 가운데서 계속되는 한 자신의 행동에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를 것이고 나아가 자신의 권위마저 땅에 떨어질 것을 염려한 헤롯은 악한 권력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침례 요한은 헤롯의 탄압으로 옥에 갇히게 되고 결국에는 헤로디아의 농간에 의해 참수형을 당하게 됨으로써 헤롯 정권의 윤리적, 도덕적 상황은 참담할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성탄의 계절에 주님의 길을 준비한 침례 요한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자기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라고 소개하면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고 선포했습니다.

대림절을 보내면서 우리가 다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덧입어서 힘들어하는 세상에 희망을 전하고 회개 합당한 열매를 맺는, 즉 나눔을 실천하는 성탄의 계절과 대림의 계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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