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두려워하지 말라(4월 6일 낮 예배 설교)

성경 : 이사야 43:1-13(구약 1019)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늘 두려움과 염려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들이 우리가 항상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두려움과 염려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찾게 되고, 그 중에 하나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을 극복하기 위해서 하는 신앙생활에도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 무속 신앙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고, 조상 신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고,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속 신앙과 조상신을 따르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점점 더 많은 신들을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따르는 신앙을 통해서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할 수 없고 염려와 근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신을 찾고 더 많은 종교적인 행위들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믿는 수많은 종교와 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종교와 그 어떤 신들도 진정한 평안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신을 찾게 되는 것이 대부분의 종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수 많은 신들 중에 한 분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더 많은 귀신과 더 많은 우상과 더 많은 신들을 섬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섬기고 의지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당시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해서 그리고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이 말씀을 주실 때의 상황은 나라가 완전히 멸망해 가는 상황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했고, 남 유다는 BC 587년에 바벨론에게 멸망당했습니다. 이사야 43장이 주어진 때의 상황은 유다가 바벨론 포로가 되어 끌려간 뒤의 상황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선민이라고 자부하던 이스라엘은 완전히 망한 상황입니다. 망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나라를 다시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희망을 선포하셨습니다. 희망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민족에게 하나님은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이 세상적인 관점으로 보면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들이 절망적일 수 있습니다. 또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가장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에게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하신 이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지금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왜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 대해서

  1. 너는 내 것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첫 번째 이유는 너는 내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예수님을 향해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이란 말은 주인님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라고 하신 이유에 대해서

너를 만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절을 보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그리고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해서 내가 너를 창조하였고, 내가 너를 지었다.(만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우리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창조하였고, 너를 지었다(만들었다)고 말씀하시면서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화가가 그린 그림에 대한 소유권은 그림을 그린 사람에게 있는 것이고, 조각가가 만든 조각의 소유권은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물론 소유권을 넘긴다면 소유권이 바뀔 수 있지만 무엇이든 만든 사람이 그 물건이나 예술작품의 원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기에 온 우주 만물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인 우리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에 대해서 7절에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창조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된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시고 두려움에 떨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사람들을 하나님께 지켜주십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만들었다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내가 너를 구속하였다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1절을 다시 보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구속이란 히브리어 단어는 ‘가알’ 이란 단어인데 이 단어의 의미는 대가를 지불하고 무엇을 살 때 사용되는 단어이고 ‘근친 역할(권리, 의무)을 행하다.’ 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자기 친족을 어려움이나 위험에서 구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가까운 친척으로서 해야 할 의무과 권리가 있기에 어려움이나 위험을 당하는 친족을 구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구속하셨다는 말은 친족을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고 건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가가 예언을 할 때의 시대적 상황에서는 죄로 멸망 당한 이스라엘에게 적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죄 때문에 포로라는 징벌을 받고 있는데, 하나님은 징벌을 받아서 포로가 된 유다를 포로에서 건져내시겠다는 것이고, 그렇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대가를 지불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여기셔서 우리를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를 건져내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우리를 위해서 지불한 대가에 대해서 이사야 53장에서 오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고난에 대해 예언했는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셨고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대가로 지불하고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절을 다시 보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지명하여’ 라는 말의 의미는 ‘이름을 불렀다.’는 의미와 함께 ‘너에게 이름을 주었고 그 이름으로 불렀다.’ 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성도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도라는 이름을 주셨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되었기에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지명하여 부름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호와 인도하심 속에 살아가기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만들었고 너를 구속하였고 지명하여 불렀다고 말씀 하셨고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고 말씀하시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고 하신 말씀을 보면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절을 보면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보배롭다는 말은 ‘귀중하다, 귀중히 여기다, 존중하다, 값비싸다, 가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배롭다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구속하셨고, 지명하여 부르셨기 때문에 귀중하고 값비싸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존귀하다는 말은 무겁다는 의미와 함께 존경하다. 영화롭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보배롭고 존귀하다는 말을 현대식으로 표현한다면

공동 번역의 번역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 그러니 어찌 해안 지방을 주고라도 너를 찾지 않으며 부족들을 내주고라도 너의 목숨을 건져내지 않으랴!”

보배롭고 존귀하다는 표현을 공동 번역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마치 부모가 사랑스런 자녀에게 말하듯 하나님께서 너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자녀이고 너무나 사랑스런 자녀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즉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염둥이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두려워하고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배롭고 존귀하게 즉 귀염둥이로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네 대신 다른 사람을 내어주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4절을 다시 보면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대신 내어 주었다는 말은 앞에서 구속하여 주셨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담긴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백성들을 대신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 대신 예수님을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를 사랑하사 돌아오게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7절까지를 보면

43: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43: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이 구절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한 북 이스라엘과 바벨론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남 유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단순히 어느 한 지역이 아니라 사방에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쪽에서 서쪽에서 북쪽에서 남쪽에서 흩어졌던 이스라엘이 돌아오게 되는데 갇혀있고 고통 당하던 이스라엘이 자유함을 얻어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고 온 세상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두지 말고 내어놓으라고 명령하실 권세가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매 가두었던 곳에서 풀려 자유하게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오늘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 우리를 묶고 있던 모든 저주와 절망에서 놓임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질병으로 묶여 있던 성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질병에서 놓임을 받게 됩니다.

물질의 어려움에 묶여 있던 성도들이 물질의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정신적인 고통에 묶여 있던 성도들에게 자유와 평안이 임하게 됩니다. 모든 묶여 있던 것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풀려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를 가두고 있고 묶고 있던 모든 사슬이 풀어지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유를 얻을지어다.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이스라엘과 유다가 사방에 돌아오듯 잃어버린 것들과 흩어진 것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돌아오는 역사 즉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1. 나의 종으로 택하였다.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주님 되신 하나님과 예수님의 종입니다. 종은 주인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너는 나의 종으로 택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종으로 택하셨는데 특별히 나의 증인으로 택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증인은 본 것을 증언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인데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일들을 증언하는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일과 우리를 사랑하사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복을 주시고, 질병을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우리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옮겨주신 것에 대한 증인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종으로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눅 24: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우리는 증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일에 증인이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므로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증인이 되는 일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주님이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행 18: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나 외는 구원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1-12절을 보면

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43:12 “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증인으로 삼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특별히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증언할 증인으로 세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이외에는 우리를 구원할 신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언할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13절을 보면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여기서 행하리니 라는 말은 어떤 일을 하다는 의미와 만들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데 아무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사랑하셔서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대가로 지불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의 증인으로 세우셨고,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그 사랑 안에서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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