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와 우리를 도우라(3월 23일 주일 오후 예배)

성 경 : 사도행전 16:6-15(신약 215)

어느 목사님이 설교 약속이 있어 급히 가야 하는데 그날따라 길이 무척 막혔습니다. 앞에 늘어선 차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참다못한 목사님이 불법으로 차를 유턴하는데, ‘호루룩’하고 경찰관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차를 세우자 다가온 경찰관이 말했습니다. “아니 목사님 아니십니까?” 거수경례를 하고 서있는 경찰관을 보니 자기 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아 자넨가. 시간이 바쁜데 하도 길이 막혀서 그만.” 목사님은 사정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 싼 것으로 하나 떼어 드리겠습니다.”, “고맙네” 그날 시간에 늦지 않게 무사히 설교를 끝내고 돌아온 목사님은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한 달쯤 지난 뒤 어느 날 여사무원이 목사님 앞에 와서 우물쭈물 하고 서 있었습니다.

 “목사님 벌칙금 통지서가 하나 왔습니다.” “아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런데 그게 좀” 무심코 여직원에게서 통지서를 받아 든 목사님 순식간에 얼굴이 벌레씹은 표정이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경범죄(노상방뇨죄)

바울 일행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나게 됩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만남으로 인해서 바울의 사역은 더 큰 역사를 이루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이 선교 여행을 하려고 하면서 개인적으로 아시아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아시아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므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무시아 앞으로 지나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어쩔 수 없어서 드로아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밤에 환상을 보게 되는데 마게도냐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말하는 환상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환상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믿고 마게도냐로 가기로 작정하고 마게도냐 지역으로 가서 마게도냐 첫 번째 성인 빌립보에 이르게 됩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준비한 사람 루디아를 만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 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길을 막으신 하나님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서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베와 루스드라를 떠나서 다른 지역으로 가려고 할 때 자신이 원하는 곳이 아닌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길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6-7절을 보면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바울은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기를 원했지만 성령이 못하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고 또한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는데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이 못하게 하시고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다는 말에 대해서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알게 하시는 방법에는 두가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성령이 또는 예수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이런 방법을 통해서 직접적인 계시를 통해서 알게 하십니다. 기도 가운데 직접 성령의 말씀이나 환상과 꿈을 통해서 알게 하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또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따라서 바울 사도가 아시아로 가지 못하게 하시고 비두니아로 가지 못하게 하신 방법은 성령께서 직접 말씀하셨거나 환상을 통해서 보았거나 꿈을 통해서 깨달았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바울에게 이런 일은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었기에 가능성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론 상황을 통해서 알게 하십니다. 바울이 가려고 했지만 갈 수 없는 상황이었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기를 원하는데 하나님께서 이런저런 상황들을 통해서 그의 길을 막으시는 것을 깨닫고 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살아갈 때 성령의 직접적인 감동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을 때가 있고 또한 주변 상황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민 22:21-23

민 22:21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가니”

민 22:22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민 22:23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발람이 발락의 부름을 받고 가려고 할 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의 길을 가로막았고 나귀는 발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이상한 곳으로 갔습니다.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발람에게 발락에게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었지만 발람은 발락에게 갔고 나중에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의해 죽고 말았습니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하고 그것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는데 이상하게 일이 꼬이고 그 일을 할 수 없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께서 막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막는 일을 자신의 생각대로 하려고 밀어붙이다 보면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상황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뭔가 자꾸 막힐 때는 하나님께서 그 길을 막고 있다는 것을 빨리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을 아는 믿음의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 멈추라는 사인을 보낼 때 그 사인을 알고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멈춤 신호를 빨리 발견하고 빨리 멈추는 것도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하시는데 자기 고집대로 계속 가는 사람은 실패하게 됩니다.

야구를 보면 감독의 지시가 상당히 중요하고, 선수는 감독이 지시하는 작전을 잘 수행하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지시하는 유능하고 실패가 없으신 감독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사인을 주면 멈추고 가라고 하면 가고 하나님의 작전 지시를 잘 들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인을 이해하고 사인대로 할 때 그 사람의 인생은 성공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가라면 가고 멈추라면 멈추고 누구보다 하나님의 작전 지시를 잘 수행하는 유능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작전 지시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바울 사역의 전환점

바울의 사역의 일대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오늘 말씀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울의 사역에 일대 전환을 이룬 사건은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본 것입니다. 9절을 보면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은 아시아로 가지 못하게 하고 비두니아로 가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의 작전 지시를 듣고 그 지시에 순종하면서도 마음으로 왜?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하신 것일까? 하나님께서 주실 다음 작전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도하던 중에 밤에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본 환상은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서 바울 일행을 초청하면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이 초청하는 환상을 보고 나서 그의 사역지가 아시아권 중심에서 유럽권으로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환상의 사건은 단순히 바울이 본 환상 가운데 하나가 아닌 유럽 선교의 장을 여는 새로운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중요한 때마다 하나님께서 전환점을 주십니다. 그 전환점은 대부분 특별한 방법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평범한 사건이 아니라 특별한 어떤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전환점을 주십니다.

그 특별한 사건이 환상일수도 있고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는 실패일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바울이 로마로 가게 되는 것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사건이 계기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하면 하나님은 전환점을 영적인 방법으로 제시하시는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환상을 본다든지 꿈을 꾼다든지 예언을 듣게 한다든지 하는 방법을 통해서 전환점을 깨닫게 하십니다.

바울은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는 것을 보고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인정을 했습니다. 10절을 보면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우리는 종종 우리가 하고 싶은대로 해야 직정이 풀릴 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려고 마음먹은 곳으로 가지 못하게 하시고,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도우시는 환상을 볼 때 그래도 일단은 내가 가려고 했던 곳을 거쳐서 가면 되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이 아닌 마게도냐로 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환의 때를 주실 때가 있는데 우리는 그 전환의 때를 알고 전환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실 새로운 일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나아갈 때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1. 마게도냐 첫 성 빌립보

바울이 환상을 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8-10절을 다시 보면

16: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6: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이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의 사역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그렇게 마게도냐에 도착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서 준비해 놓으신 것을 만나게 됩니다.

마게도냐는 고대 그리스 북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마게도냐의 위치는 그리스 북부, 발칸반도에 위치해 있으며, 알렉산더 대왕의 출신지로 유명하며, 헬레니즘 문화를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곳입니다.

이 지역은 로마의 지배를 받았으며, 중요한 교통로였던 에그나티아 가도가 지나가는 지역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 드로아에서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로 건너갔는데

바울이 방문한 도시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레아 등입니다. 이 지역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으며, 그곳의 성도들에게 편지(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후서)를 보냈습니다. 마게도냐는 기독교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지역으로, 바울의 전도 여정에서 의미 있는 장소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마게도냐로 와서 도우라는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 도착했습니다. 11-12절을 보면

16: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6: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빌립보는 B.C. 360년경 마게도냐의 필립 2세에 의해 이름이 크레니데스(’샘’이라는 뜻)에서 빌립보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줄리어스 시이저를 살해했던 부루투스와 캐시우스가 B.C. 42년 안토니아 옥타비안(나중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됨)에 의해 패배한 장소로 알려졌습니다.

이 지역은 바로 그때 이후 승리의 기념으로 로마의 식민지로 지정되어 황제에게 직접 배속됨으로써 주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를 누렸으며 공물과 세금을 면제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이탈리아 도시의 시민들이 누렸던 것과 동일한 권리를 누렸으며 이곳은 바다와 육지 양쪽 통로상의 전략적인 위치에 있어서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특히 금광과 비옥한 평야로 유명하고 이 밖에도 이곳에는 유명한 의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빌립보에는 퇴역 군인들이 거주하는 로마풍의 도시였다고 합니다.

바울은 선교지에서 가장 먼저 회당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에 도착을 해서 회당을 찾았지만 회당은 없었고 기도할 처소가 있었습니다. 13절을 보면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바울이 지금까지 사역을 감당한 지역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있어서 유대인의 회당에서 말씀을 전했는데 마게도냐의 빌립보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도처가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의 회당은 남자 유대인 10명 이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기도처를 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빌립보에 있는 기도처는 회당을 구성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전 단계인 기도처를 정해서 기도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비록 회당은 아니지만 바울이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의 삶의 전환점을 맞이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역사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것을 발견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루디아를 만났습니다. 14-15절을 보면

16: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6: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바울이 빌립보에 있는 기도처에서 말씀을 전파하던 중에 빌립보에서 바울의 사역을 위해 준비된 루디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루디아’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는데 루디아는 개인의 이름이 분명하다고 이야기 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많은 신학자들은 ‘루디아’ 가 이름이 아니라 고대 루디아 왕국의 영토였던 지방에 살던 사람 즉 ‘루디아(출신의) 여인’ 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루디아는 직조와 자색 염료 사용 기술로 유명했는데 루디아가 빌립보에 온 것은 계속 그 사업을 확장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한편 그녀는 두아디라에 있을 때 이미 회당에서 유대교의 가르침을 받았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위해서 장소도 준비하셨고 사람도 준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새로운 길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장소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일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동역자들과 돕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리라 믿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기 보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는 삶이 되고, 주님이 준비하신 것과 준비한 사람들을 만나서 새로운 일을 이루어 가는 복된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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